천기누설 주식타짜 알고보니 ‘신용불량 주식루저’
▲ 영화 <작전>의 한 장면. |
11월 12일 기준 유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만들어진 주식 관련 카페는 무려 1만여 개나 된다. 또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도 현재 4000여 개가 개설돼 성황리에 운영 중이다. 인기 카페는 회원이 10만 명이 넘기도 했다. 이들 카페들은 주식 투자자들이 순수하게 투자 정보를 교환하는 창구로 활용되고 있지만 최근엔 투기 심리를 이용한 사기행각도 급증하고 있다. 카페 운영자(일명 영자)들이 증시를 휘젓고 다니며 ‘개미투자자들’에게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돈을 욹아내고 있다. 고액의 가입비·자문료 챙기기, 과장·허위 광고, 주가 조작, 사기 등 영자들이 개미투자자들을 엮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영자’들의 기상천외한 주식 사기 실태를 들여다봤다.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는 개미투자자 송 아무개 씨(37). 그는 2006년 12월 주식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회사동료를 따라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가 2007년 5월까지 연일 손해만 보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34세였다. 두 달 동안 2000만 원을 잃고 분해서 주식에 매달리게 됐고, 통장 잔고는 점점 줄어들어 갔다. 절박한 심정으로 가입한 것이 윈○○이라는 주식 카페였다. 현재 11만여 명의 회원 수를 자랑하는 해당 카페는 당시에도 회원수가 많았고, ‘이익을 봤다’는 댓글도 많이 올라와 있었다.
송 씨는 ‘천기누설’ ‘1년 사이에 1000% 수익 보장’ 등등의 문구에 잃어버린 원금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 달에 36만 원인 가입비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앞으로 벌어들일 수익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고 6개월 가입비(150만 원)를 냈다. 하지만 영자들이 추천해 주는 종목을 산 후에도 또 다시 손해의 연속이었다. 결국 송 씨는 3개월 만에 탈퇴하겠다고 했지만 영자들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가입비를 환불해 줄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결국 송 씨는 돈도 잃고, 꿈도 잃어버렸다.
다음은 지난 10월 말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형사5부의 적발 사례다. 무료 회원 수천 명과 유료 회원 50여 명을 둔 카페 운영자 표 아무개 씨(27)는 “자신이 명동 주가조작 세력과 연계돼 주식 투자의 기밀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소개하며 카페 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또 표 씨는 유료 회원을 상대로 일대일 실시간 투자 상담을 해주고 가입비와 자문료 명목으로 4100만 원을 받아 챙겼다. 하지만 검찰 조사 결과 표 씨는 주식 실패로 17억 원을 날린 경험이 있는 신용불량자로 드러났다. 또 그는 ‘무등록’ 유사투자 자문을 했는데 표 씨를 믿고 그가 추천한 종목에 투자한 개미투자자 50여 명은 3개월 만에 6000만여 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주식카페 운영자 하 아무개 씨(29)는 올해 7월부터 3개월 동안 기자 출신의 애널리스트와 주식투자대회 수상경력이 있는 전문가가 카페를 공동 운영하는 것처럼 속여 유료 회원을 모집했고, 이들에게 가입비와 자문료 명목으로 1억 300만 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영자들이 개미투자자들의 주머니를 터는 방법도 교묘했다. 먼저 이들은 투자자들이 많이 모이거나 카페 회원수가 많은 인터넷 게시판을 돌아다니며 ‘91억 원 벌었던 비법’ ‘천기누설 대박 정보’ 등의 자극적인 문구와 자신들의 카페주소를 남겨 유료 회원 ‘낚시질’을 했다. 기자가 윈○○, S○○ 등 11곳의 주식 카페에 가입해 조사한 결과 이들은 하나같이 과장된 문구로 개미투자자를 유혹하고 있었다. 또 영자들은 ‘손석희가 극찬한 주식 카페’ ‘삼성투자자문이 엄선한 주식’이라며 유명 인사를 팔거나 대기업 상호를 가져다 붙이기도 했다.
▲ 온라인 주식카페 캡처. |
S○○ 카페 유료 회원인 박 아무개 씨(44)는 “처음에 주식 카페의 광고 문구가 너무 허황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혼자 주식투자를 하다 실패한 후에는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믿어보기로 했다”며 “그래서 결국 회원으로 가입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박 씨처럼 주식 카페에 무료 회원으로 가입한다고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자들은 신입 회원이 들어오면 처음 며칠간 무료 서비스로 인터넷 게시판이나 문자메시지 등으로 종목 정보를 알려준 뒤 “유료 회원이 되면 대박날 수 있는 고급 정보를 알 수 있다”고 꼬드긴다. 그리고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문자 메시지 서비스 등이 공급되지 않을 것”이라며 무료 회원들의 마음을 급하게 만들기도 했다. 주식카페의 유료 회원 가입비는 15만 원에서 60만 원까지 다양했고, 카페들은 저마다 ‘3개월 가입은 -30%, 6개월은 -40%’ ‘할인된 가격에 가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등 할인율을 적용해 장기간 가입을 유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카페가 제공하는 정보가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다. 영자들은 유료 회원을 가입시키기 위해 자기 계좌 및 주식카페 회원을 이용해 시세 상승이 용이한 중·소형주를 적극 추천한다. 이는 비전문가도 주가 상승을 예측할 수 있는 종목들이었다.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영자들은 카페 회원들의 매수와 동시에 주가가 오르자 자기 소유 주식을 되팔거나 시·종가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통정매매를 하기도 했다. 물론 ‘작전’에 희생되는 사람은 개미투자자들이었다. 개미투자자들은 손해를 보고 나서도 가입비를 돌려받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영자들은 과연 ‘투자 전문가’였을까. 금융감독원이 11월 초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10만 명이 넘는 카페 9곳 중 단 2곳의 운영자만이 ‘투자의 달인’이었고, 나머지는 ‘투자 실패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박선철 금융감독원 자산운용 총괄팀 부국장은 “11월 금융감독원이 두 번의 자체조사를 벌인 결과는 ‘무등록’ 유사투자자문업체가 크게 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회비 환불 불가, 과장·허위 광고를 처벌할 계획이고 더불어 주가조작, 사기 혐의 등에 대해서도 각각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선미 기자 wihts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