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전 의혹 기사, 소신과 다른 소속사 보도자료, 누드 관련 발언 등 발목…언론사에 ‘삭제’ 요청까지
신문 기사는 생명력이 짧은 생산물이지만 보존력이 길다는 특징이 있다. 대부분의 기사는 보도된 직후에 소비되지만 한 번 보도된 기사는 반영구적으로 보존된다. 국립중앙도서관에 가면 마이크로필름 형태로 과거 신문이 다 보관돼 있는데 디지털화가 진행된 이후에는 보다 손쉽게 과거 기사를 찾아볼 수 있다. 당장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들어가면 1920년대 기사부터 찾아볼 수 있다. 아주 오래된 기사가 아닌 20여 년 이내의 기사는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서도 손쉽게 검색할 수 있다.
그리 흔한 일은 아니지만 종종 연예인이나 연예기획사에서 언론사로 과거 기사를 삭제해 달라고 전화를 걸어오곤 한다. 감추고 싶은 과거, 내지는 번복하고 싶은 과거 발언을 지우기 위한 몸짓이다. 그래픽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하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자신의 과거를 누구나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는 부분이 연예인 입장에선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오래 전 일이지만 한 신인 연예인 A의 매니저가 과거 기사가 실린 언론사를 찾아다니며 삭제를 부탁했던 일이 있다. 신인이라는 의미는 연예계 활동 이력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인데 어떤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는 것일까. A는 데뷔 이전 모종의 사건에 연루돼 기사가 보도됐는데 당시 제기된 여러 의혹은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에만 관련 보도가 나왔지, 의혹이 사실 무근으로 밝혀졌다는 기사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수사 과정에서는 엄청난 기사가 쏟아지고 1면 톱까지 장식하지만 그 결과물인 법원 판결 기사는 보도되지 않거나 단신으로 처리되곤 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이후 상당수의 매체에서는 의혹을 벗은 A와 관련된 기사를 삭제해줬다. 지금은 당시 기사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다행히 전국민이 기억할 만큼 대형 사건은 아니었던 터라 보도된 기사도 그리 많지 않아 관련 기사들이 삭제됐다는 사실도 대중은 모르고 지나갔다. 당시 A의 매니저는 그가 연예인으로 새 출발을 하고 싶은데 과거 기사가 발목을 잡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부탁을 해왔다. 의혹만 불거졌던 사안이 현재까지 이어져 A의 새 출발을 힘겹게 하고 있는 상황이라 언론사들이 관련 기사를 삭제해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깔끔하게 지워지진 않았다. 언론사 기사는 삭제됐지만 당시 기사를 퍼날라 작성된 블로그는 남아 있기 때문이다. A의 매니저는 블로그 운영자들에게도 일일이 연락을 취해 다 삭제할 계획이라고 말했었다.
요즘 보면 정치인들의 과거 발언이 화제가 되곤 한다. 과거에 상대 정당이나 진영을 비판했던 발언이 되살아나 현재의 자신의 행위를 옭아매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네티즌들이 그들이 과거 언론 인터뷰나 SNS에 남긴 발언을 찾아내 현재 상황과 대비시켜 화제를 양산하기도 한다. 연예인들 역시 이런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몇 년 전 남자 연예인 B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분명한 자신의 생각을 밝혀 화제가 된 바 있다. 대국민 약속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내용으로 이 발언이 B의 이미지 제고에 상당히 좋은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B는 이후 자신의 당시 발언과는 정반대 행보를 보였다. 이를 문제삼는 기사가 하나둘 나오기 시작할 즈음 B의 소속사와 변호사는 각 언론사에 당시 기사를 삭제해 줄 것을 부탁하고 나섰다. B가 실제로 한 발언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당시 B의 발언은 소속사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에만 나올 뿐이다. 소속사가 바뀐 뒤 B는 전 소속사가 이미지 제고를 위해 자신이 하지도 않은 말로 보도자료를 만들어 뿌린 것이라며 억울해했다. 그렇다면 그때 바로잡았어야 하는데 B는 침묵하며 그로 인한 이미지 상승 효과를 누렸다. 이런 까닭에 과거 발언이 담긴 기사는 대부분 삭제되지 않았지만 언론사들을 상대로 과거 발언이 보도자료에 실린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널리 알리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 후 과거 발언과 정반대의 행보를 보인 부분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기사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요즘 여자 연예인 C는 과거 자신이 인터뷰에서 했던 발언을 지우려고 하고 있다. 그래픽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하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요즘 여자 연예인 C는 과거 자신이 인터뷰했던 발언을 지우려고 하고 있다. 연예인 누드 열풍이 한창이던 시절 누드 촬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 인터뷰인데 일부 네티즌들이 과거 인터뷰 발언을 거론하며 악플을 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렇지만 완전 삭제가 과연 가능한 일일지는 의문이 든다. 워낙 관련 기사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C는 불과 몇 년 전에도 방송에서 직접 누드를 찍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얘기했으며 자신의 누드가 많은 화제를 양산하며 엄청난 매출을 올렸다는 말까지 했다. 당연히 C가 방송에서 했던 발언 역시 기사화됐었다. 자신의 분명한 생각을 인터뷰와 방송 등에서 당당히 밝힌 것이 지금에 와선 악플로 악용되고 있다는 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그렇지만 C가 거듭해서 누드로 화제를 양산하며 연예계 활동에 유용하게 활용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까닭에 C의 당시 발언들도 지워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