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전 그룹 주력 계열사 주총선 차남 승, 본선격인 지주사 표대결은 장남 승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한국타이어가(家)의 장남과 차남이 30일 잇따라 열린 지주사와 주력 계열사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서로 한 번씩 승리했다. 장남 조현식 부회장(왼쪽)과 차남 조현범 사장(오른쪽). 사진=연합뉴스
한국앤컴퍼니는 30일 오후 경기도 판교 본사에서 정기 주총을 주총을 개최했다. 장남 조 부회장은 주총에 참석했지만 차남 조 사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주총의 최대 관심사는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두고 장남과 차남이 벌이는 표 대결이었다. 앞서 회사 경영의 실권을 쥐고 있는 차남 조현범 사장 측은 김혜경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를 추천했고, 장남 조현식 부회장은 경영권 분쟁 논란에 책임을 지고 대표이사 사임 의사를 밝히며 직을 걸고 이한상 고려대 교수를 추천했다.
그룹 지주사 한국앤컴퍼니의 최대주주는 차남인 조 사장이다. 42.9% 지분으로 장남인 조 부회장의 지분(19.32%)를 압도한다. 그러나 지난해 개정된 상법 개정안에 따라 대주주가 의결권 있는 주식의 최대 3%만 행사할 수 있는 ‘3%룰’이 처음으로 적용됐고 조 사장과 조 부회장, 국민연금 등의 의결권이 각각 같아졌다. 이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표 대결을 펼치게 되면서 결과를 예측이 불가능했다.
주총 표 대결 결과 조 부회장이 제안한 이한상 교수가 선임됐다. 조 사장 측 후보인 김혜경 전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은 고배를 마셨다. 득표율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조 부회장 측이 캐스팅보트인 소액주주의 표심을 잡았다. 주총에 앞서 국민연금과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 국내 의결권 자문회사 서스틴베스트 등이 조 부회장 측에게 힘을 실어줬는데, 이를 따라 소액주주 표심도 움직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한국앤컴퍼니 주총은 ‘3% 룰’의 첫 효과가 나온 주총으로 평가된다.
이 교수가 선임되면 대표이사직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조 부회장은 이날 사임 및 부회장직·의장직 유지 여부 등에 대한 질문에는 말을 아꼈다.
반면 같은날 오전 먼저 열린 계열사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주총에서는 조 사장 측 감사위원 후보인 이미라 제너럴일렉트릭(GE) 한국 인사 총괄이 득표율 선임됐다. 조 부회장과 조 이사장은 이혜웅 비알비 코리아 어드바이저스 대표이사를 감사위원으로 주주 제안을했지만, 무산됐다. 득표율은 각각 84%, 16%로 조 사장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조 사장은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내이사 연임에도 성공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지분 8.66%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조 부회장의 감사위원 선임안에 찬성하고 조 사장의 이사 재선임안에는 반대했지만, 결과는 뒤집히지 않았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지분율은 한국앤컴퍼니 30.67%, 조양래 회장 5.67%, 조 이사장 2.72%, 조 사장 2.07%, 조희원씨 0.71%, 조 부회장 0.65% 등이다.
표면상 장남과 차남이 1대1 무승부를 거뒀지만, 업계에선 조 부회장의 판정승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지주사 감사위원 선임에 성공한 만큼 조 부회장이 그룹 내 영향력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주총 표 대결이 무승부로 끝나면서 경영권 분쟁의 불씨도 꺼지지 않게 됐다.
향후 조 부회장과 장녀 조 이사장이 ‘연합 전선’을 형성해 경영권 분쟁 2라운드를 개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 이사장은 그동안 회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주총에서 조 부회장과 함께 주주 제안을 했다. 조 사장에게 지분을 모두 넘긴 조양래 회장에 대한 법원의 한정후견 판결도 향후 형제간 분쟁에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타이어가의 경영권 분쟁은 지난해 조 사장이 시간외 대량매매로 아버지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회장 지분 23.59%를 모두 인수해 한국앤컴퍼니 최대 주주로 올라서면서 수면 위로 부상했다.
형제간 표 대결이 벌어진 감사위원 선임 외 다른 사내·사외이사 선임 건은 모두 이사회 원안대로 가결됐다. 한국앤컴퍼니 주총에서는 원종필 한국앤컴퍼니 전략기획실장이 사내이사로, 전병준 SK이노베이션 상근 고문 등 2명이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주총에서는 이수일 대표, 박종호 사장 등의 사내이사 선임과 표현명 케이티 사외이사 등 3명의 사외이사 선임이 가결됐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