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현장서 맥주 마시며 사흘 머물러 ‘아리송’…학교 친구 “장난치다가도 격분, 무서웠다”
서울경찰청은 4월 5일 오후 신상 공개 심의위원회를 열고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 피의자 김태현의 신상 공개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1996년생으로 만 24세다. 사진=서울경찰청 제공
김태현의 신상이 공개된 이후 그의 평소 행적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경찰은 김태현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별다른 직업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군복무를 마친 뒤 비정기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고 한다. 서울 강남구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는데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이 발생한 뒤 가족은 이사를 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현의 최근 거주지 인근을 취재한 중앙일보는 “조용한 성격에 직업은 없어 보였고, 배달 알바를 하는 듯했다” “얼굴에 수심이 있어 보이기는 했다” “평소 소형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등의 이웃 주민들 얘기를 전했다. 온라인 게임을 통해 피해자를 알게 됐다는 김태현은 평소 게임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평소에도 집 인근 PC방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김태현의 학창시절 친구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착한 친구였지만, 장난을 치다가도 갑자기 욕을 하고 화를 냈다. 그런 부분이 무서웠다”고 밝혔다. 이어 “연락이 끊긴 친구들에게 ‘잘 지내냐’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며 “실제 만나면 ‘오늘 너희 집에서 잘 수 있냐’, ‘오늘 너희 집 가도 되냐’고 물어 친구들을 부담스럽게 했다”고 말했다.
#참혹한 연쇄 살인과 비정상적 행동들
갑자기 화를 내고 얼굴에 수심이 있어 보였다는 주위의 증언도 있었지만 사건이 벌어지기 전의 김태현은 대체적으로 평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김태현이 저지른 범죄는 결코 평범하지 않고 우발적인 연속살인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3월 23일 오후 5시 35분 무렵 김태현은 배송 기사로 위장해 피해자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집에 있던 작은딸이 문을 열자 들어가 먼저 죽이고 집에서 기다리다 밤 10시 30분 무렵 귀가한 엄마와 11시 30분 무렵 귀가한 큰딸을 연이어 살해했다. 사전에 흉기를 미리 준비하고 살해 방법도 연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게임을 통해 알게 된 큰딸이 범죄 대상이었다. 김태현은 오후 5시 무렵 먼저 큰딸이 평소 자주 가던 PC방에 들렀다가 그의 집으로 향했다. 평소 스토킹을 할 때의 동선을 따라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김태현은 큰딸뿐 아니라 그의 동생과 엄마까지 살해했다. 게다가 그는 3월 25일 경찰에 검거될 때까지 사흘 동안 범행 현장에 그대로 머물렀으며 냉장고 안에 있는 맥주와 음식을 먹고 마시기도 했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해자 모두 경동맥 부근에 치명상을 입고 사망했는데 이건 ‘업자’들이나 쓰는 방법이다. 어떻게 하면 가장 쉽게 빠르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준비해온 것으로 봐야 한다”며 “경동맥 부근을 칼로 긋게 되면 피가 최소 2ℓ 이상은 쏟아져 나오는데 6ℓ의 피가 쏟아진 집에서 며칠 동안 있었다는 것도 비정상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태현이 범행 현장을 떠나지 않고 사흘간 머무른 것도 의문으로 남는다. 2일 유치장으로 이송되기 위해 차에 타고 있는 김태현. 사진=연합뉴스
김태현이 왜 현장을 떠나지 않고 집에 머물렀는지도 의문으로 남는다. 범죄 흔적을 지워 완전범죄를 시도하기 위해 범행현장에 머문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갔으며 실제 갈아입은 것으로 볼 때 완전범죄를 시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흘이나 범행현장을 떠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곳에서 자해를 시도했다.
김태현은 범죄 현장에서 ‘마포대교’ 등을 검색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한 방법을 알아 본 정황이 포착됐다. 경찰에 검거됐을 당시에도 김태현은 자신의 목 등을 수차례 자해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의식이 있었고 상처도 생명에 지장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기 전에 흉기를 챙기고 휴대전화로 ‘사람을 빨리 죽이는 방법’ ‘급소’ 등을 검색한 김태현은 실제로 피해자들 모두에게 경동맥이 지나가는 목 부근에 치명상을 입혀 살해했다. 이처럼 김태현은 피해자들을 살해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자해할 때는 소극적으로 칼을 사용했다.
이에 대해 승재현 위원은 “자해 목적은 여러 가지다. 살인 후 고조된 흥분상태를 잠재우기 위해 할 수도 있고 배타적 소유욕이 강했던 김태현이 살해 후 모든 목적을 이뤘다는 심리에 취해 그랬을 수도 있다”며 “범행 후 현실감각을 되찾은 뒤 양형 등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자해를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사이코패스라기엔 과시욕 표출 없어
다만 김태현에게는 사이코패스의 일반적인 특징인 과시욕 표출이 보이지 않는다. 4월 5일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정말 반성하고 있다. 죄송하다”고 말했으며 경찰 조사에선 “큰딸을 살해하려고 집에 갔다. 처음부터 동생과 어머니까지 살해하려던 건 아니었다”라고 우발적인 범행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의 시선은 다르다. 만약 우발적 범행이었다면 계획에 없던 동생을 죽인 시점에 현장을 벗어나거나 범행을 중단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과시욕이 보이지 않는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승재현 연구위원은 “사이코패스 여부는 검사 결과에 따라 판단되기 때문에 제3자가 예측할 순 없지만 김태현에게 사이코패스 검사가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라며 “과시하는 행위가 없었다고 해서 사이코패스가 아닌 것은 아니다. 사이코패스도 지배자형, 소극형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고 설명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