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총리·PK 대선 후보 조합 가능성…김경수·김두관·유시민 영남 주자들 행보 주목
사실상 마지막 승부수를 꺼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순장조’ 국무총리로 대구·경북(TK) 출신의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명했다. ‘마지막 총리=비정치인’ 공식을 깬 문 대통령은 김부겸 카드를 통해 국민통합에 매진하겠다는 시그널을 보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김부겸 카드 이면엔 대통령선거 올인 전략의 포석이 깔렸다. 부산·울산·경남(PK)을 핵심으로 하는 동남풍 전략은 여권 대선 승리 방정식의 핵심으로 꼽힌다. 다만 ‘호남 죽이기’와 맞닿아있는 영남 패권주의 딜레마는 여권이 넘어야 할 산이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가 4월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발언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여권 미래권력 퍼즐의 조합.’
여권 인사들에게 물었다. ‘영남 대선 후보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느냐’고. 돌아온 답은 “미래권력의 조합을 눈여겨보라”였다. 핵심은 여권 미래권력 간 시너지효과다. 국회 인사 청문 절차가 남았지만, 전·현직 국회의원 프리 패스권을 감안하면 국정 투톱은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김부겸 후보자는 TK(경북 상주) 출신이다. 2000년 제16대 총선을 계기로 원내 진입한 김 후보자는 경기 군포에서 내리 3선을 한 뒤 19대 총선 때 대구 수성갑으로 내려갔다. 총선 성적은 1승 2패. 19대 총선 당시 40.4%로 낙선한 그는 4년 뒤인 20대 총선에서 62.3%로 이변을 연출했다. 지난해 21대 총선에선 39.3%로 지역주의 벽에 다시 무릎을 꿇었다. 2014년(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시장 선거까지 포함하면, TK에서 1승 3패 전적이다.
그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바보 김부겸’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당 한 의원은 문 대통령의 김부겸 카드에 대해 “통합을 앞세워 국정 안정을 꾀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후보자도 총리직 지명 직후 “협치와 포용, 국민통합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4월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여권으로선 김부겸 카드가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을 방지할 일종의 방패막이 역할이라고 판단하는 셈이다.
비문(비문재인)계인 이철희 전 의원을 청와대 정무수석에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신임 수석은 임명 직전에야 청와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이철희 카드는 청와대 내 고위 인사들만 공유한 극비였던 셈이다. 이 수석은 청와대 입성 후 첫 작품으로 4월 2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4·7 지방자치단체장 당선인 초청 오찬을 총기획하며 변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주목할 대목은 당 권력이다. 당 원내사령탑에는 강경파 친문(친문재인) 윤호중 의원이 당선됐다. 여당 원내대표 경선 직후 ‘도로 친문당’이라는 비판이 나왔던 이유다. 이뿐만이 아니다. 포스트 이낙연 체제를 노리는 당권주자 3인 중 홍영표 의원은 친문 직계다. 친문 직계들이 대거 합류한 ‘민주주의4.0연구원’은 홍 의원의 지원군이다. 86(80년대 학번·60년대 생)그룹인 송영길 의원은 범친문계로 분류된다. 우원식 의원은 김근태(GT) 전 의원 계열인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이다. 비문계에 속하지만, 이념적으로는 송영길·홍영표 의원보다 왼쪽에 있다. 이들이 쇄신 경쟁보다는 친문 구애에 사력을 쏟는 만큼, 포스트 이낙연 체제 역시 친문계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트리플(총리·개각·청와대) 인적 쇄신과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이 같은 날(4월 9일) 이뤄진 게 우연의 일치인가.” 진보진영 한 관계의 말이다. 임기 말 인적 쇄신을 통해 국면전환은 하더라도 당 권력만큼은 친문계가 틀어쥐겠다는 시그널을 드러냈다는 얘기다. 박완주 의원과 맞붙은 윤 원내대표는 경선 초반부터 줄곧 앞선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이 4월 22일 오전 원내대표단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방문, 현충탑을 참배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분석하면, 차기 대선 주자를 제외한 여권 내 미래권력은 ‘TK 총리·친문 내지 운동권 당대표’로 귀결된다. 민주당 당권 주자들의 면면을 보면, ‘PK 영역 확장’에도 힘을 싣고 있다. 송 의원은 민주당의 비영남 출신 중 가덕도 신공항 추진에 가장 공을 들인 인사다. 그는 부산 명예시민으로도 위촉됐다. 홍 의원은 ‘PK 친문’ 핵심인 전재수·최인호 의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민주당 당권 경선 후 영남권, 특히 PK 주자들의 공간이 넓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부겸 효과도 PK 공간을 넓히는 요인이다. 민주당은 이미 가덕도 신공항이란 영남 공략을 위한 실탄을 장착했다. TK 총리도 지명했다. 김부겸 후보자를 빼면 민주당 내 TK 대선 주자는 없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총리를 택한 김 후보자가 차기 대선에 나설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그가 순장조 내각에 포함되자, “차기가 아닌 차차기를 염두에 둔 포석”이란 전망이 쏟아졌다. 문 대통령의 TK 총리 지명이 PK 대권잠룡의 길을 터주는 효과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배경이다. ‘TK 총리·PK 대선 후보’ 간 시너지효과도 누릴 것으로 전망된다.
여의도 안팎에선 여권의 이 시나리오를 두고 ‘영남 공략을 위한 쌍끌이 전략’이라는 말이 나온다. 마지막 총리=비정치인 공식을 깬 것도 마찬가지다. 여권 수뇌부가 TK 출신 정치인을 마지막 국무총리로 지명한 것은 차기 대선에 올인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얘기다. 이 경우 친문계가 장악한 당은 ‘TK 총리·PK 대선 후보’의 뒷배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 11월 6일 오후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 사건과 선거법위반 항소심에서 일부 유죄판결을 받은 뒤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관전 포인트는 여권 PK를 비롯한 영남권 주자의 파괴력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안갯속이거나 존재감이 미미하다. 당내 PK 주자는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김두관 지사 등에 불과하다. 이들의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는 1∼2% 수준에 불과하다. 더구나 2018년 지방선거 당시 포스트 문재인으로 지목받던 김 지사는 이른바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으로 1·2심에서 유죄를 받았다. 앞서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함상훈·김민기·하태한)는 지난해 11월 6일 김 지사에게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법조계에선 김 지사의 대법원 선고가 오는 6월께 나올 것으로 본다. 법조계 의견을 종합하면, 대법원 선고에서 김 지사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낮지만, 친문계 핵심 인사들은 일말의 기대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대법원에서 만의 하나 김 지사의 판결이 뒤집힌다면, 대선 판은 새 국면을 맞을 것”이라고 전했다. 친문계가 무죄를 선고받은 김 지사에게 급속히 쏠릴 수 있다는 얘기다.
김두관 지사는 노무현 정부에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을 거쳐 2010년 6·2 지방선거 때 경남도지사에 당선됐다. 21대 총선 땐 문 대통령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을에 출마, 48.9%의 득표율로 재선 고지를 밟았다. 하지만 김 의원은 친노 주류와는 거리가 멀다. 2012년 대선 때도 문 대통령에 맞서 친노 패권주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국회 한 보좌관은 “친문계 일부 인사들에겐 그때의 앙금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대선 출마설이 돌았던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친문계가 띄울 ‘히든카드’로 통한다. 진보진영 내부에선 유 이사장의 강점으로 △영남권 주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 △친노·친문 지지층을 모두 포섭하는 높은 대중성 △보건복지부 장관 등 행정 경험 등을 꼽는다.
하지만 유 이사장은 4월 16일 노무현재단 유튜브 ‘알릴레오’ 방송에서 여권의 제3후보론 가능성에 대해 “근거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언론을 향해 “남의 인생을 장난감 취급하는 것”, “친문 후보 옹립론은 모욕적 표현”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제 이름을 넣어 대선후보 여론조사를 할까봐 겁난다”라며 “장난삼아서 돌을 던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다만 유 이사장의 불출마 역시 예단하기 어렵다. 한때 유 이사장이 몸담았던 정의당 일부 인사들은 유 이사장의 출마 가능성을 타진하고 현실화할 경우 차기 대선 전략을 다시 짤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당 한 관계자는 “유 이사장의 의지와 관계없이 친문계의 카드로 계속 거론될 것”이라며 “사견임을 전제로 (유 이사장의 대선 출마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친문계의 ‘영남 후보 옹립’ 움직임은 대선 막판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 경우 호남 대권 잠룡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나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입지는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호남 필패론이 수면 위로 부상할 경우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다소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경북 안동 출신인 이 지사는 출신지로만 보면 영남권에 포함된다. 민주당 호남 한 인사는 “친문계의 영남 주자 옹립이니, 호남 필패론이니 하는 것은 신분열주의”라고 평가 절하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