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감독 김기영 언급하며 감사…“살아 계신다면 굉장히 행복해 하셨을 것”
배우 윤여정이 26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 스테이션과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개최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사진=연합뉴스
시상식에 앞선 레드카펫 인터뷰에서 윤여정은 “한국 배우로서 처음으로 오스카 연기상 후보에 올랐고, 한국인이자 아시아 여성으로서 우리에게 이것은 매우 역사적인 순간”이라며 “제게도 정말 신나면서도 무척 이상한 일”이라고 전했다.
드디어 아카데미 무대에 오른 그는 ‘미나리’의 제작사 플랜B의 수장이자 이번에 시상자로 나선 브래드 피트를 향해 “드디어 만나서 영광이다, 감사하다. 영화 찍을 때 어디에 계셨나”라고 농담을 던지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아시아권에서 살면서 서양 방송을 많이 봤는데 직접 이 자리에 오게 되다니 믿을 수가 없다. 아카데미 관계자분들에게 감사하고 ‘미나리’ 가족들에게도 감사하다. 무엇보다 정이삭 감독님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제가 없었을 것이다.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제가 사실 경쟁을 믿지는 않는다. (함께 후보에 오른) 글렌 클로즈와 같은 대배우와 어떻게 경쟁을 하겠나. 그의 훌륭한 연기를 많이 봐 왔다. 우리 모두 다른 역할을 다른 영화에서 해냈다. 우리 사회에 사실 경쟁이란 있을 수 없다”며 “오늘 이 자리에서 (수상한 것은) 그냥 운이 좀 더 좋아서인 것 같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윤여정과 첫 영화를 함께 한 고 김기영 감독과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일하러 나가라고 잔소리한 아들에게도 감사하다”면서 “김기영 감독님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나의 첫 영화를 함께 한, 나의 첫 감독님이었다. 살아계셨다면 굉장히 행복해 하셨을 것 같다”고 전했다. 고 김기영 감독은 윤여정의 데뷔작 ‘화녀’(1971)를 맡았으며 이듬해 ‘충녀’에서도 윤여정과 함께 했다.
이날 윤여정은 자신의 영화 데뷔작인 ‘화녀’의 고 김기영 감독을 언급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사진=판씨네마 제공
1966년 TBC 공채 3기 탤런트로 발탁된 윤여정은 이듬해 같은 방송사의 드라마 ‘미스터곰’으로 데뷔 후 MBC로 이적, 1969년 MBC 드라마 ‘장희빈’에서 악녀 장희빈 연기로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다.
1971년에는 거장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로 스크린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윤여정이 배우로서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으로 꼽은 이 영화로 그는 대종상영화제 신인여우상과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김기영 감독도 윤여정에 대해 “내 말을 이해한 유일한 배우”라고 평한 바 있다.
이후 윤여정은 1974년 27세의 나이로 2살 연상의 가수 조영남과 결혼한 뒤 미국에서 13년을 살았으나 그의 바람기와 한량 기질 탓에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이혼 후 다시 배우로 돌아온 뒤에는 김수현 작가의 MBC 드라마 ‘사랑과 야망’(1987)으로 완벽하게 복귀하며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200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는 임상수 감독의 영화 ‘바람난 가족’(2003)을 시작으로 ‘꽃 피는 봄이 오면’(2004) ‘가루지기’(2008) ‘하녀’(2010) ‘계춘할망’(2016) ‘죽여주는 여자’(2016) 등 성별과 나이의 고정관념을 넘나드는 강렬한 캐릭터부터 어디에나 있을 포근한 노년 여성의 캐릭터까지 자유자재로 변신해 왔다. ‘충무로의 대모’라는 별칭이 붙게 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여기에 영화 ‘미나리’로 아시아 배우 최초 미국배우조합상 여우조연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동시 석권하는 한편, 대한민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수상이라는 커리어의 정점을 찍게 됐다.
한편, 윤여정이 출연한 ‘미나리’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음악상, 총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리 아이삭 정) 감독이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고 연출한 작품으로 1980년대 미국 남부 아칸소주 농장으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그렸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