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나리’ 아카데미 6개부문 노미네이트…“여우조연상 유력” 한국배우 첫 수상 기대감
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부문에는 ‘보랏 속편’의 마리아 바칼로바,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즈,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맨, ‘맹크’의 아만다 사이프리드 그리고 ‘미나리’의 윤여정이 후보에 올랐다. 사진=아카데미 시상식 공식 유튜브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외화를 개봉할 때 가장 강력한 홍보 문구가 ‘아카데미 몇 개 부분 노미네이트’였다. 아카데미 수상작은 물론이고 여러 부문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은 검증된 영화라 여겼다. 이제는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그래도 ‘미나리’는 이제 ‘아카데미 6개 부분 노미네이트’라는 홍보 문구를 쓸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윤여정은 한국 배우 최초의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배우가 됐고, 스티브 연은 한국계 배우 최초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노미네이트 배우가 됐다.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로도 최초다.
우선 큰 고비는 하나 넘었다. 윤여정이 후보로 선정될 경우 수상 가능성도 높다고 본 영화관계자들이 많았던 만큼 한국 배우 최초 아카데미 수상도 이젠 꿈의 영역이 아니다.
‘미나리’가 93회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는 기염을 토한 가운데 윤여정이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한국 배우 최초의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영화 ‘미나리’ 홍보 스틸 컷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손꼽히던 골든글로브 수상자 조디 포스터가 후보에 오르지 못한 점도 호재다. 일부 영화 관계자들은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즈가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산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힐빌리의 노래’가 그리 좋은 평을 받고 있거나 거기서 선보인 글렌 클로즈의 연기가 탁월했던 것은 아니다. 이번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여우조연상과 분장상 2개 부문에만 후보를 냈을 뿐이다. 대신 최악의 영화를 선정하는 제41회 골든라즈베리 시상식에선 최악의 감독상, 최악의 여우조연상, 최악의 각본상 등 3개 부문 후보가 됐다. 글렌 클로즈는 같은 영화로 아카데미와 골든라즈베리에서 동시에 후보가 된 매우 드문 케이스의 배우가 됐다.
글렌 클로즈가 골든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최악의 여우조연상을 수상할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만큼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을 가능성이 낮아 보이는 건 사실이다. 다만 변수가 있다. 이미 7번이나 아카데미 후보로 선정됐지만 단 한 번도 수상의 영광을 누리지 못한 74세의 노배우의 여덟 번째 도전에 동정표가 몰릴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같은 1947년생 노배우인 윤여정과 글렌 클로즈의 대결구도인데 한 명은 최초로 후보가 된 한국 배우이며 또 한 명은 8번째 도전하는 미국 배우다.
골든글로브를 앞두고 조디 포스터보다 더 유력한 후보로 여겨졌던 ‘맹크’의 아만다 사이프리드도 쟁쟁한 경쟁 상대다. 좋은 평을 받고 있는 영화 ‘맹크’는 이번에 무려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그중 주요부문인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에서는 수상 가능성이 높지 않아 아만다 사이프리드에게 여우조연상 행운이 돌아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글렌 클로즈(왼쪽)는 ‘힐빌리의 노래’를 통해 아카데미와 골든라즈베리에서 동시에 후보가 된 매우 드문 케이스의 배우가 됐다. 사진=영화 ‘힐빌리의 노래’ 홍보 스틸 컷
한국계 미국인 배우 스티브 연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도 기대 이상의 성과다. 윤여정이 유력한 여우조연상 후보로 언급됐던데 반해 스티브 연은 기대감은 있었지만 가능성이 크지는 않은 것으로 점쳐졌다. ‘사운드 오브 메탈’의 리즈 아메드,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의 채드윅 보스만, ‘더 파더’의 안소니 홉킨스, ‘맹크’의 게리 올드만 등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들이 대거 아카데미에서도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그렇지만 ‘마우리타리안’의 타하르 라힘이 아카데미 후보 발표에서 호명되지 못했고 그 자리를 ‘미나리’의 스티브 연이 채웠다. 후보에 오르며 아시아계 미국인 배우 최초라는 의미를 갖게 됐지만 수상까지는 힘겨울 것으로 보인다. 현지에선 골든글로브 수상자인 고 채드윅 보스만의 수상이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8월 대장암 투병 끝에 사망한 채드윅 보스만이 골든글로브에 이어 아카데미까지 사후 수상을 할 가능성이 크다.
‘미나리’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음악상 등에도 후보로 올랐다. 이같이 주요부문 후보에 오르며 다시 한 번 영화의 작품성이 입증됐지만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싹쓸이했던 지난해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영광을 재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현지에서는 주요부문에서 ‘노매드랜드’가 가장 앞서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노매드랜드’가 2020년 ‘기생충’의 싹쓸이 영광 재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맹크’와 ‘미나리’ 등의 경쟁작들이 얼마나 많은 트로피를 가져갈 수 있느냐가 올해 아카데미의 가장 큰 볼거리가 될 전망이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