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임시숙소’ 24시간 단기보호만 가능, 홀로 머물다 극단적 선택도…“심리 케어 지원돼야”
가정 내 성범죄 피해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법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친족 간 성범죄는 2016년 500건, 2017년 535건, 2018년 578건으로 늘었다. 친족 성폭력이 전체 성폭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를 웃돈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친족 성범죄 매년 증가
A 씨 같은 가정 내 성범죄 피해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법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친족 간 성범죄는 2016년 500건, 2017년 535건, 2018년 578건으로 늘었다. 친족 성폭력이 전체 성폭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0%를 웃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9년도 ‘성폭력 피해 상담소·보호시설 운영 실적’에 의하면 성폭력 가해자 유형에서 친족, 친인척, 배우자에 의한 성폭력이 3519건으로 전체 가해자 유형 가운데 13.1%를 차지한다.
가정 내 성폭력 피해자의 경우 가해자가 있는 가정으로부터 즉각 분리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가정 내 성폭력의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가 즉시 분리되어야 한다”며 “외국의 경우 가해자 퇴거가 우선이지만 현재 한국의 제도로는 그것이 어려워 피해자를 빠르게 분리하는 조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피해자보호명령을 통해 가해자를 퇴거할 수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 가정법원에 신청해 처리되는 형식이라 피해 신고 직후 격리가 필요한 피해자들이 이용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현장에선 수사 초기 단계에 피해자를 임시 거처에 단기간 머물게 하는 긴급 보호 제도가 활용된다. 이 기간 동안 피해자들은 자립을 모색하거나 중·장기 시설로 연계될 수 있다. 경찰 관계자와 성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에 따르면 신고 직후 피해자를 단기 보호할 수 있는 제도는 경찰의 ‘임시안전숙소’와 ‘CARE 센터’, 1366 여성긴급전화의 ‘긴급피난처’ 등이 있다.
경찰의 ‘임시안전숙소’는 경찰서에서 피해자에게 숙박업소 등 임시 숙소를 마련하여 머무르게 하는 제도다. 최대 5일 동안 머무를 수 있으며, 이후 피해자는 중·장기 보호시설로 연계되거나 자립하게 된다. ‘CARE 센터’ 역시 경찰이 마련한 곳으로 서울 강서, 서초 두 곳에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서울경찰청은 “해당 시설은 심리치료 위주 시설이며, 임시 숙소는 24시간 정도의 단기 보호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여성폭력피해자 인권보호를 위해 운영하는 1366의 긴급피난처는 성폭력, 가정폭력 피해자의 경우 최대 7일까지 이용할 수 있다. 다만 경찰의 임시안전숙소와는 달리 시설 상황에 따라 이용이 제한될 수 있다. 1366이 자체 운영하는 시설의 정원 등에 따라 입소가 거절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366 중앙센터 남정임 팀장은 “인원 제한으로 인해 입소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도 가까운 센터에 최대한 배치해 피해자를 수용한다”고 밝혔다. 1366 긴급 피난처에 머무르는 피해자는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 받는다.
#긴급 보호, 문제와 보완점
피해자가 세 곳의 보호 시설 가운데 어디로 갈지는 ‘피해자의 의사’가 중시됐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어떤 곳을 가는지에 대한) 정해진 매뉴얼은 없다”며 “긴급 보호가 필요한 피해자들의 의사를 우선해 1366과 같은 시설인지, 경찰 임시숙소를 택할 것인지가 갈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 홀로 숙박업소에 머무는 경찰의 임시안전숙소에 대한 우려가 있다. 피해자의 정신적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피해자 의사’만 우선하는 입소 방식이 갖는 한계 때문이다. 2017년 임시 숙소로 연계된 2명의 가정폭력 피해자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있었고, 지난 3월에도 친족 성폭력 피해자 A 씨가 임시 숙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1366 중앙센터 남정임 팀장은 “경찰 임시안전숙소에 머무는 피해자에게 경찰 측에서 먼저 연락하지 않는 한 1366 상담이 의무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혼자 두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경찰 실무진이 극단적 선택 우려가 있는 피해자의 정신적 취약성까지 판별할 만큼의 전문성까지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사고 발생을 막으려면 여럿이 지내고 상담이 제공되는 시설에서 보호하는 게 더 적합하다”고했다.
피해자가 공동생활 시설을 기피할 경우, 경찰 측에서 임시안전거처에 있는 피해자에게 전문 상담 인력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그럼에도 피해자가 공동생활 시설을 기피할 경우, 경찰 측에서 임시안전거처에 있는 피해자에게 전문 상담 인력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역사회의 상담 인력을 활용하거나 ‘정신적 치료’를 할 수 있는 전문가들과 연결하는 식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특히 “급성 증상 완화가 중요하다”며 “심리학이나 정신과 전문가들이 투입되어 (급성 증상 완화를) 신경 쓸 수 있게 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 시설 관계자들은 ‘공동생활’이라는 보호시설의 한계를 짚기도 했다. 쉼터를 운영하는 여성민우회 관계자는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시설을 꺼린다”며 “공동생활 규칙, 한 방에 여럿이 머무는 것 등 생활의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시설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낙인을 우려하는 피해자들도 있다. 경찰 관계자 역시 피해자가 공동생활로 인한 불편함을 우려해 임시안전숙소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의 ‘혼자 있기’에 대해서도 위험만 제거할 수 있다면 막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경찰 임시안전숙소에 피해자의 정신건강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시설에서는 예산이나 지원의 부족으로 공동생활이 불가피한 것일 뿐, 피해자의 혼자 있고 싶다는 의사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민우회 관계자는 “피해자는 혼자 심리적 상처를 케어할 공간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긴급 보호 장소를 막론하고 ‘임시 보호 기간’이 너무 짧다는 의견도 있다. 성폭력 피해자는 경찰 임시안전숙소의 경우 최대 5일, 1366 긴급피난처의 경우 최대 7일까지 머무를 수 있는데, 피해자가 자립을 도모하거나 새로 머무를 시설로 연계되기까지 충분치 않다는 반응이다. 이소희 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일반 사람들도 일주일 만에 집을 구하는 건 어렵다”며 “해당 기간들은 정말 ‘최소한’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영원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