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 스트립·르네 젤위거·케이트 블란쳇처럼…작품 고르는 눈 뛰어나 허황된 꿈은 아냐
올해 83세로 역대 최고령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된 안소니 홉킨스는 영국 웨일스의 집에서 자다가 한밤중에 수상 소식을 접했다. 그리곤 새벽녘 웨일스의 들판을 배경으로 소감을 담은 영상을 찍어 SNS에 올렸다. 사진=안소니 홉킨스 인스타그램 동영상 캡처
4월 26일 새벽(현지시간) 영국 웨일스에서 한참 깊은 잠에 빠져 있는 80대 노신사가 있었다. 1937년생으로 83세인 이 노신사는 한밤중에 잠에서 깼다. 희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인데, 깜짝 놀라 잠에서 깬 그는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노신사는 이른 아침 웨일스의 들판을 배경으로 영상을 찍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저는 고향인 웨일스에 있습니다. 83세의 나이에 이 상을 받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정말로요. 아카데미에게 감사하고,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영화 ‘더 파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안소니 홉킨스는 역대 최고령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됐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상황에서 고령임을 감안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은 안소니 홉킨스는 집에서 잠을 자다 수상의 영광을 누리게 됐다. 미국 LA에서 4월 25일 오후 5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시작됐는데, 안소니 홉킨스가 있던 영국 웨일스는 미국 LA보다 8시간이 빨라 26일 새벽 1시였다.
1947년생 윤여정이 안소니 홉킨스보다 열 살 어린 73세임을 감안하면, 그도 안소니 홉킨스처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을 가능성이 분명 존재한다. 이미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강렬하게 각인됐으며 연기력은 이미 충분히 검증됐다.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력 역시 1992년 6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양들의 침묵’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을 당시, 아니 그 이전에 이미 검증은 끝나 있었다. 애플TV플러스의 드라마 ‘파친코’의 캐나다 촬영을 마친 윤여정은 거듭 해외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앞으로 윤여정의 행보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더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아카데미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은 사례는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기록상으로는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는 얘기다. 젊은 시절 전성기 당시 ‘가스등’(17회)과 ‘아나스타샤’(29회)로 두 번이나 여우주연상을 받고 20여 년 뒤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47회)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잉그리드 버그만의 사례는 번외로 치더라도 먼저 여우조연상을 받고 나중에 여우주연상까지 받은 배우들이 여럿 된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52회)로 여우조연상을 받고 ‘소피의 선택’(55회)과 ‘철의 여인’(84회)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메릴 스트립을 비롯해 ‘콜드 마운틴’(76회)으로 여우조연상을 받고 ‘주디’(92회)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르네 젤위거, ‘에비에이터’(77회)로 여우조연상을 받고 ‘블루 재스민’(86회)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케이트 블란쳇 등이 그 주인공이다.
윤여정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은 영국 배우 대니얼 컬루야, 여우주연상을 받은 미국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와 함께 수상을 기뻐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물론 73세의 나이가 조금은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만 안소니 홉킨스의 사례로 알 수 있듯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도전에 나이는 결정적 장벽이 아니다. 다만 그만큼 좋은 영화를 만나야 하며, 주연으로 캐스팅돼야 한다. 이미 윤여정은 ‘죽여주는 여자’ ‘계춘할망’ ‘장수상회’ 등의 영화를 통해 주연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갈 힘도 충분히 검증해냈다. 좋은 작품을 만나야 한다는 가장 중요한 조건만 남아 있는 셈인데 윤여정이 평소 작품 고르는 눈이 뛰어난 배우로 정평이 나 있다.
다만 출연 제의가 들어오는 작품이 다 고만고만하면 혜안도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정말 좋은 작품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오는 게 중요한데 이 부분에선 ‘운’이 중요하다. 윤여정은 수상소감에서 “아카데미 후보들은 모두 각자 다른 역할을 충분히 연기해낸 대배우들이라, 서로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상을 받기까지 더 좋은 작품과 캐릭터를 만날 수 있는, 단지 조금 더 운이 필요할 뿐이다. 다행히 윤여정은 ‘경쟁을 믿지 않고, 조금 더 운이 좋은’ 배우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