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충격 사건 대화 형식으로 풀어…자극적이고 가벼운 공포마케팅 지적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와 ‘당신이 혹하는 사이’는 여기에 “가능하다”고 답한다. 이 프로그램들에서 화자와 청자가 주고받는 이야기는 익히 알려진 대한민국의 슬프고 아픈 자화상이다.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은 혹할 수밖에 없다. 실화이기 때문이다. 케이블채널 tvN ‘알쓸신잡’ 역시 이번에는 범죄를 테마로 잡고 ‘알쓸범잡’(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으로 변주되고 있다. 왜 TV는 이 시점에 범죄를 이야기할까.
범죄심리학자 박지선, 법학박사 정재민 등 범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알쓸범잡’은 억울한 피해자를 낳은 엄궁동 사건을 비롯해 형제복지원 사건 등을 시청자들이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는 동시에 그 이면의 의미를 짚는다. 사진=tvN ‘알쓸신잡’ 방송 화면 캡처
#현실이 더 무섭다(?)
시즌1의 성공에 힘입어 올해 3월 시즌2를 시작한 ‘꼬꼬무’는 ‘1979 서울점령 : 운명의 레이스’를 주제로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 사건이 발생하고 두 달 뒤 대한민국을 뒤흔든 12·12 군사반란을 조명했다. 이 외에도 여대생 공기총 살인사건과 정남규 연쇄 살인사건, 지존파 사건을 비롯해 1992년 휴거,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 오대양 집단 자살 등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사건들을 짚으며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신이 혹하는 사이’ 역시 코로나19 창궐을 둘러싼 미스터리와 1986년 발생했던 배우 윤영실의 실종 사건 등을 다뤘다.
범죄심리학자 박지선, 법학박사 정재민 등 범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알쓸범잡’는 억울한 피해자를 낳은 엄궁동 사건을 비롯해 형제복지원 사건 등을 시청자들이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는 동시에 그 이면의 의미를 짚는다. 또한 전문가들의 식견을 곁들여 범죄자들의 심리를 분석하며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이런 프로그램의 성공은 SBS 간판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가 보여준 범죄 내러티브의 연장선상이라 볼 수 있다. 미스터리한 강력 사건을 묵직하게 파헤쳐 가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 비해 ‘꼬꼬무’나 ‘당신이 혹하는 사이’ 등은 조금 더 쉽고 대중적으로 접근하며 ‘순한 맛’ 버전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최근 인기를 얻는 것은 사회적으로 강력 사건이 늘어나는 분위기와도 무관치 않다. 아직도 진실을 밝히지 못한 구미 3세 여아 살인사건을 비롯해 N번방 사건, 고유정 사건 등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접하는 이야기보다 더 소름끼치는 사건이 벌어지는 현실 속에서 이런 강력 범죄와 그 뒷이야기를 파헤치는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오감을 강하게 사로잡고 있는 셈이다.
SBS 관계자는 “발생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줬던 사건들이 시간이 흘러 기억에서 잊히거나 젊은 세대들에게는 완전히 생소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며 “이런 프로그램들의 공통된 특징은 ‘실화’를 다룬다는 것이다. 픽션이라 하더라도 ‘과도한 설정’이라 할 만한 사건이 현실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에 시청자들이 새삼 놀라고, 그런 반응이 높은 시청률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꼬꼬무’는 입담꾼으로 유명한 장항준(사진) 감독을 비롯해 방송인 장도연, 장성규가 스토리텔러로 나선다. 이야기를 듣는 청자의 리얼한 리액션을 보여주는 것이 ‘꼬꼬무’의 포인트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 화면 캡처
#내러티브의 힘!
‘그것이 알고 싶다’와 ‘꼬꼬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 답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배우 김상중이 시종일관 진지하고 무게감 있게 진행한다. 감정의 진폭도 크지 않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실을 전달하며 시청자들이 판단하라 권한다.
하지만 ‘꼬꼬무’나 ‘당신이 혹하는 사이’는 다르다. 청자와 화자가 있다. ‘꼬꼬무’는 입담꾼으로 유명한 장항준 감독을 비롯해 방송인 장도연, 장성규가 스토리텔러로 나선다. 그들에게 이야기를 듣는 이들은 다양하다. 모델 송경아와 이현이, 가수 카이 등이 청자로 참여했다. 이야기를 듣는 청자의 리얼한 리액션을 보여주는 것이 ‘꼬꼬무’의 포인트다.
그리고 그들은 반말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는 TV 속 대담을 듣기보다는, 친구들 간의 은밀한 대화를 곁에서 엿듣는 느낌이다. 시청자들을 이야기의 또 다른 청자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그러니 몰입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장도연은 제작발표회에서 “알고 있던 이야기라도 개인의 시점에서 이야기하니 해석이 달라지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당신이 혹하는 사이’ 역시 가수 윤종신과 영화감독 변영주, 배우 봉태규와 개그우먼 송은이, 프로파일러 권일용 등이 출연해 이야기를 대화 형식으로 풀어간다. 대중에게 친숙한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이 참여한 내러티브 방식은 강력 사건이라는 소재를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풀며 대중이 ‘시사’보다는 ‘예능’ 패턴으로 느끼게 만드는 요령이다.
하지만 살인이나 폭행, 사회를 흔들었던 사건들을 다소 가볍게 다룬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공포 마케팅’의 일환으로 자극적 소재를 이용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단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지나치게 사건을 상세히 묘사하며 사건과 피해 사실을 부각시킨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에 대해 ‘꼬꼬무’를 연출하는 유혜승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제작진도 (그런 지적을) 당연히 알고 있다. 너무 자극적이지 않나 생각도 한다”면서도 “해당 사건을 다루는 이유는 확실하다. 왜 오늘날 이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내서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 사건을 다루는 거다. 당연히 그런 비판이 있을 수 있고 우리도 조심스러워하지만, 그 사건의 이면, 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지 그 의미를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