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상금 3000만 원, 타이틀전 도입…베일 속 후원자 아마 강자 출신이라는데…
그런데 이 기전이 프로가 출전하는 대회가 아니라 아마추어 기전이라면? 그렇다. 이 대회가 아마추어들만 출전이 가능한 대회여서 더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대회를 후원하는 이는 자신의 정체를 절대 밝히지 말아달라고 하니 이보다 더 흥미로울 수 있을까. 이 대회를 주관하고 있는 아마바둑사랑회 홍시범 대표를 만나 신생 기전 ‘기룡전’에 대해 들어봤다.
타이틀전 제도 도입, 익명의 후원자, 최고 상금 등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기룡전은 국내 최대 규모의 아마바둑대회가 될 전망이다. 사진=사이버오로 제공
―상금이 세다. 아마대회로는 최고 아닌가?
“그렇다. 그동안 우승상금 1000만 원 대회는 몇 번 있었지만 2000만 원도 아니고, 3000만 원은 처음으로 안다.”
우승상금 3000만 원이면 어느 정도 규모인지 궁금해서 한국기원 홈페이지에서 현재 치러지고 있는 프로 기전들을 조사해봤다. 용성전(전기 우승자 신진서)의 우승상금이 3000만 원이고(준우승은 1200만 원) 여류기성전의 우승상금도 3000만 원(준우승 1000만 원)이다. 프로기전을 능가하는 아마 바둑대회가 탄생한 셈이다.
―후원자가 정체를 밝히기 싫어한다고 들었다. 무엇 때문인가.
“본인이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하니 나도 밝힐 수가 없다(웃음). 다만 바둑이 뭔지도 모르고 공부를 했는데 운이 없어 프로로 가지 못한 친구들, 프로기사의 길을 꿈꿨지만 나이가 들면서 기회와 적성이 맞지 않은 친구, 가정형편 상 다른 길을 걷고 있거나 이무기로 불리게 된 많은 친구들에게 바둑 공부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하려는 후원자의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상금보다는 장학금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후배들, 바둑공부 열심히 해보라고 만들어준 대회다. 아, 후원자가 아마추어 강자 출신이라는 건 이야기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잘 안다.”
―홍 대표가 이 대회를 주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후원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아마바둑사랑회(아바사)에 많은 기부를 해오고 있었다. 우리가 진행하는 ‘여명의 검’(아바사가 주최하는 오래된 아마바둑대회로 신진서 9단도 아마 시절 이 대회에 참가했었다. 기룡전도 여명의 검 대회 중 하나라고 한다)이나 아바사가 주최하는 각종 이벤트엔 항상 그분의 후원이 함께하고 있었다. 나는 행사를 거창하게 하지 않는다. 참가 선수들에게 최대한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고 있다. 이번 대회에도 행사비를 상금의 10분의 1인 680만 원만 달라고 그랬다. 그것으로 일주일간 대회를 치른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바둑대회가 사라져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의 의기가 통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회를 주관하는 아마바둑사랑회 홍시범 대표. 사진=사이버오로 제공
―대회 방식이 파격적이라고 들었다. 어떻게 치러지는가.
“파격적이지 않다. 예전 프로 바둑에서 있어왔던 것인데 사라져버린 것을 부활시켜 봤다. 기룡전은 타이틀전으로 치러진다. 올해 우승자가 타이틀 보유자가 되는 것이고, 내년 대회 32강 토너먼트 우승자가 도전자가 되어 타이틀 보유자와 5번 승부를 벌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첫 회 우승자는 1년에 세 번만 이기면 타이틀을 방어하는 것이다. 설령 내년에 진다해도 준우승 상금 1400만 원이 있으니 첫 회 우승자는 4400만 원을 확보하는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후원자가 우승자에게는 특별히 1년 동안 바둑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매달 따로 연구비를 지원한다. 큰 힘이 되지 않을까 한다. 또 기룡전은 대국 기회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예선에서 한번 졌다고 해서 바로 탈락하는 것이 아닌 리그제를 도입했고, 본선도 토너먼트로 운영하지만 패자조를 만들어서 한 번의 실수가 아픔으로 남지 않도록 배려했다.”
지금은 프로 기전들이 매년 우승자를 가리고 마는 선수권전 제도로 운영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대부분의 기전이 타이틀전으로 운영됐었다.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국수전, 명인전, 왕위전, 기왕전 등이 그런 기전들. 조남철 9단, 김인 9단, 조훈현 9단 등이 국수 타이틀을 오래 보유했기에 그들은 조국수, 김국수 등으로 불렸고, 서봉수는 서명인, 유창혁은 유왕위, 김희중은 기왕전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일본은 지금도 과거와 변함없이 타이틀전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최고 타이틀인 기성전, 명인전, 본인방전을 5회 이상 제패할 경우 9단이라는 칭호 대신 타이틀 명을 이름 뒤에 붙여준다. 예를 들어 본인방전 10연패를 달성한 조치훈 9단에게는 ‘조치훈 혼인보(본인방)’라고 예우해준다. 격식을 갖춰주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또 선수권전은 우승 상금을 지급하면 그만이지만, 타이틀전은 대국료 외에 우승, 준우승 상금도 따로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주최 측 부담이 크다는 어려움이 있다. 프로도 아닌 아마추어 바둑에서 타이틀전을 채택한 것은 그래서 파격적이라는 것이다. 제1회 기룡전은 5월 1일부터 7일까지 아마바둑사랑회에서 열린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