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만 명 중 1700명 수혜…대상 너무 적고 휴가 쓰기 어려운 노동자에겐 그림의 떡
경기도가 비정규직 노동자 대상 휴가비 지원 사업을 추진하지만 수혜자가 너무 적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경기도청 전경. 사진=경기도 제공
[일요신문] 경기도가 택배노동자, 학습지 교사, 용역 노동자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휴가비를 지원한다. 정규직보다 열악한 처우를 받는 비정규직을 위한 배려다. 다만 너무 적은 예산으로 수혜 대상이 한정적인 점과 사실상 휴가를 쓰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가 관련 기관 50곳의 상여금 지급 기준 및 현황을 조사한 결과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받는 명절휴가비에 절반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2020년 공공운수노조의 명절 상여금 조사 결과에 의하면 간접고용 노동자의 경우는 정규직의 20% 수준의 상여금밖에 받지 못한다는 응답이 나오기도 했다.
경기도는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조금이나마 줄이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휴가권을 보장하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 휴가비 지원 사업을 추진한다고 4월 26일 밝혔다. 지원 대상은 연간 총소득 3600만 원 이하(월 소득 300만 원 이하)인 만 19세 이상 도민 중 대리운전기사, 퀵‧배달 등 플랫폼 노동자,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기간제노동자, 시간제노동자, 파견‧용역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다.
지원 방식은 노동자가 15만 원을 자부담하면 경기도가 25만 원을 추가로 지원해 총 40만 원 상당의 적립금을 온라인 몰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경기도 노동복지팀은 “지난해는 숙박권과 입장권을 주로 판매했지만 올해는 국내 여행 상품, 휴가 활동에 필요한 캠핑‧등산‧스포츠용품, 캘리그라피, 프랑스 자수, 통기타 등 온라인 취미 클래스 그리고 집에서 즐기는 집콕 여가상품도 구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는 “지역 관광경기 활성화 차원에서 도내 박물관, 미술관, 공연, 전시, 지역행사, 맛집 등 경기도의 특색 있는 문화예술 콘텐츠를 중심으로 개발한 경기도형 문화 여가상품도 판매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휴가비 지원을 원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5월 10일부터 21일까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도 노동국장은 사업의 목적을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여가 기회를 확대하고 노동과 휴식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라고 밝혔다.
본지가 만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휴가비 25만 원 지원에 대체로 반색했다. 휴가비 자체가 없는 배달노동자는 “25만 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1700명이라는 지원 대상이다. 경기도는 도내 비정규직 노동자를 약 19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1700명은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10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월 소득 300만 원 이하로 좁혀도 노동자들은 대부분의 비정규직이 포함될 것으로 내다봤다.
경기도가 휴가비 지원을 처음 시작한 지난해는 1600명에게 휴가비를 지원했었다. 사업 첫해임에도 5000여 명이 넘는 신청이 몰려 3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예산을 대폭 늘려 더 많은 노동자에 휴가비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올해는 고작 100명 더하는 데 그쳤다. 총예산도 지난해보다 고작 7500만 원밖에 증액하지 못했다. 도는 “신청자가 많으면 추첨을 통해 선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 배달노동자는 추첨으로 1700명을 추린다는 얘기에 “사실상 로또”라고 했다. 올해는 얼마나 신청할지 알 수 없지만 “200만 명 가까운 비정규직 중 고작 1700명을 주면서 비정규직 배려 운운하는 건 너무 속 보이는 거 아닌가. 누구 코에 붙이나”고 그는 말했다.
수혜 대상이 너무 적다는 질문에 도 담당자는 “코로나로 인해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앞으로 지원을 더 늘리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올해 예산서에 따르면 도 취약노동자 휴가비 지원사업에는 5억 7500만 원이 편성됐다. 이 중 1700명에 25만 원을 지원하면 4억 2500만 원이다. 나머지 1억 5000만 원은 인건비 약 1억 원, 성과 분석 1500만 원, 대행 수수료 1150만 원, 일반운영비, 홍보비, 자문위원회 등에 2400만 원이 사용된다. 6억 원이 안 되는 적은 예산임에도 4분의 1 이상이 대행 사업비로 나가는 셈이다.
한편 적은 수혜 대상 못지않게 사실상 휴가를 쓰지 못하는 노동자에 대한 배려도 아쉽다는 의견도 있다. 택배노동자의 경우 주 6일 근무가 통상적이다. 6일 근무 후 일요일 단 하루를 쉬며 일주일간 쌓인 피로를 겨우 푼다. 경비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24시간 격일제로 근무하느라 명절에도 연달아 쉬지 못한다. 휴가 자체가 없는 노동자들도 상당수다. 이런 상황에서 휴가나 여가를 즐기기는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도 담당자는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온라인 취미 클래스와 집에서 즐기는 상품을 준비했다. 잠시나마 산에 가시는 분을 위한 등산용품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