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오스카 MC감” 시드니모닝헤럴드 “인격의 힘” 보그 “뜻밖의 강장제” 등 찬사 쏟아져
“매우 딱딱했던 시상식에서 윤여정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뉴욕타임스’는 2021 오스카에서 최고의 수상소감을 한 수상자로 윤여정을 꼽았다.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윤여정. 사진=EPA/연합뉴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2021 오스카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고의 수상소감을 한 수상자로 윤여정을 꼽기도 했다. 그러면서 먼저 영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고상한 척(snobbish)’하는 영국인들에게서 받은 상이라 더욱 뜻깊다”는 수상 소감을 소개하면서 “윤여정은 아카데미에서도 이와 비슷하지만 좀 더 많은 코미디적인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매우 딱딱했던 시상식에서 윤여정은 뜻밖의 선물이었다”고도 덧붙였다. 이와 관련, ‘뉴욕타임스’ 카일 뷰캐넌 기자는 심지어 트위터를 통해 “내년 오스카 진행은 윤여정에게 맡기자”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여우조연상을 시상한 브래드 피트를 향해 장난 섞인 핀잔을 한 장면은 시상식이 끝난 후에도 두고두고 회자됐다. ‘미나리’의 제작자인 피트를 향해 윤여정은 “브래드 피트, 드디어 만나게 됐네요. 우리가 털사에서 영화를 찍고 있을 때 당신은 어디 있었나요?”라고 농담을 건넸다. 그러면서 또한 윤여정은 “저는 한국 배우인 윤여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 분들은 저를 가리켜 ‘여영’ 또는 ‘유정’이라고 잘못 부르신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여러분 모두를 용서해드리겠다”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윤여정의 수상 소감은 위트에서 끝나지 않았다. 윤여정은 “우리 사회에서 경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후보에 오른 다섯 명 모두 저마다 다른 영화에서 다른 역할을 해냈다. 우리 모두 승자다”라고 치켜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한 윤여정은 “오늘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은 단지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다. 어쩌면 한국 배우를 환영하는 미국식 인사는 아닐까 생각해본다”라고 전했다. 윤여정은 가족에 대한 감사함도 표현했다. “저를 밖에 나가 열심히 일하게 만든 제 두 아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이게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라고 소감을 마쳤다.
이런 윤여정을 두고 ‘로이터’는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라 수상까지 거머쥐었다”고 소개하면서 “수십 년 동안 한국 영화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윤여정이 재치 넘치면서 의미 있는 역할을 연기했다”고 칭찬했다.
영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윤여정은 “고상한 척(snobbish)하는 영국인들에게서 받은 상이라 더욱 뜻깊다”는 수상 소감을 전했다.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캡처
‘뉴욕타임스’가 바라본 윤여정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원로 스타인 윤여정은 50년 동안 눈부신 경력을 지니고 있는 배우다”라고 소개하면서 “수십 년 동안 제한적인 선택과 트라우마에서 피어난 말년의 철학이 그를 ‘미나리’로 데려왔다”고 언급했다.
화상으로 ‘뉴욕타임스’와 통화를 나누는 윤여정의 모습에 대해서는 “얌전한 검정색 상의에 긴 목걸이를 두른 그의 침착한 모습에는 자연스러운 우아함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윤여정은 느긋하면서도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의 생각은 확고하게 전달했다”거나 “때때로 카메라 밖에 서있는 친구에게 특정 영어단어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면서 각각의 포인트를 더 정확하게 전달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윤여정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인 ‘윤식당’과 ‘윤스테이’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50년 연기 경력인 윤여정에게 있어 가장 근래 생긴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했다.
국제적 배우로서의 큰 전환점이 된 ‘미나리’에 대해서는 “미나리는 한국에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파슬리 같은 채소다. 습기가 많은 습지와 버려진 논 등 어느 곳에서나 자란다”고 말하면서 “한국 영화계에 미나리 같은 사람이 있다면 바로 윤여정이다”라고 빗대었다. 그러면서 또한 “오스카상을 받기 훨씬 전부터 한국인들은 종종 뛰어난 재치를 지닌 지극히 독립적인 여성 이미지인 윤여정을 사랑했다”고도 말했다.
또한 윤여정의 성공에 대해서는 “얼굴은 너무 평범하고, 목소리도 거칠고 매력적이지 않다고 말해왔던 남성 프로듀서들의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윤여정이 한국의 한 케이블 채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 제작자들은 내가 배우로 성공한다면 자신들의 모자를 먹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지금 모두 세상을 떠났다”라고 말하는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윤여정의 삶을 소개하면서 “오스카상을 받기 훨씬 전부터 한국인들은 종종 뛰어난 재치를 지닌 지극히 독립적인 여성 이미지인 윤여정을 사랑했다”고 말했다. 사진=영화 ‘미나리’ 스틸컷
윤여정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1970년대 중반 점점 유명세를 타기 시작할 무렵 결혼해 남편이 대학을 다니고 있던 플로리다로 이주했다”면서 “윤여정은 미국에서 태어난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로서 거의 10년을 보냈다. 하지만 결국 이혼하고 싱글맘으로 한국에 돌아왔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그녀의 명성은 사라져 있었고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로 인해 잔인하게도 복귀는 힘들었다. 윤여정은 이에 대해서 “시청자들은 전화를 걸어서 ‘윤여정은 이혼녀다. 그러니 TV에 나와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고 회상하면서 “하지만 이제 그들은 나를 매우 좋아한다. 참 이상한 일이지만, 그게 사람이다”라고 재치 있게 대답했다.
두 아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역할을 맡았지만, 더 이상 가족을 부양할 의무가 없게 된 60세가 되고 나서야 윤여정은 자신이 믿는 사람들에게만 투자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너무 많은 걸 요구하면서도 때로는 윤여정을 힘들게 만들었던 홍상수 감독이나, 60대 한국 여배우로서는 전례가 없는 매춘부 역할로 그를 캐스팅한 임상수 감독 등이다.
영국판 ‘보그’는 윤여정의 레드카펫 의상에 대해 “이집트 디자이너 마르마르 할림의 포켓 디테일이 돋보이는 박시한 블루 원피스와 쇼파드 오트 조아일리에의 장신구는 시상식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었다”고 칭찬했다. 사진=EPA/연합뉴스
또한 ‘뉴욕타임스’는 ‘미나리’가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기생충‘은 개봉 두 달 만에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미나리’가 한국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1980년대의 미국 이민 경험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요컨대 오늘날에는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한국인들이 훨씬 줄었고, 미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대개 넉넉한 환경에서 자란 유학생 자녀들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덧붙여서 ‘뉴욕타임스’는 “팬들은 윤여정을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어떤 한국 배우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 ‘기생충’이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배우는 한 명도 없었다”라고 말하면서 윤여정의 수상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빗대어 소개했다.
이 밖에도 외신을 통해 쏟아진 찬사는 끝이 없었다. CNN은 “윤여정이 쇼를 훔쳤다”고 평했는가 하면, ‘애틀랜틱’은 “올해 쇼의 스타는 윤여정이었다. 그의 수상 장면을 지켜보는 게 왜 그렇게 즐거운지를 보여줬다”고 소개했다.
‘시드니모닝헤럴드’ 역시 “그의 수상 소감은 오스카 시상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었다. 세계는 ‘가디언’이 그를 가리켜 ‘밤의 영웅’이라고 불렀다는 데 동의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 또한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아카데미 수상자가 되었을까?”라고 질문을 던진 후 “이는 순전히 윤여정의 인격의 힘 덕분이었다”라고 평했다.
윤여정의 레드카펫 의상을 높이 칭찬한 영국판 ‘보그’는 “이집트 디자이너 마르마르 할림의 포켓 디테일이 돋보이는 박시한 블루 원피스와 쇼파드 오트 조아일리에의 장신구는 시상식에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었다”고 칭찬했다. 또한 덧붙여서 “윤여정과 한예리는 절제된 레드 카펫 의상이 프릴 많이 달린 의상만큼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면서 “윤여정의 사려 깊은 스타일과 거침없는 유머 감각은 새로운 스타일이 소개되는 시상식 시즌 동안 예상치 못한 강장제가 되었다. 매우 신선했다”고 평했다.
앞으로 할리우드에서의 윤여정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이를 나타내듯 한 팬은 “그는 아직 봉준호 감독과 호흡을 맞추지 못했다. 앞으로 윤여정과 봉 감독이 함께 작품을 만들길 바란다”고 기대하기도 했다.
[아카데미 최초 기록들] 아시안 대세, 이게 다 ‘기생충’ 덕? 9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아카데미에서도 여전히 많은 ‘최초’라는 기록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수 있지만, 올해에도 어김없이 ‘최초’라는 기록은 나왔다. 우선 한국 배우 최초로, 그리고 아시아 여성으로는 1957년 ‘사요나라’의 우메키 미요시 이후 63년 만에 아카데미를 수상한 윤여정이 있다. 그리고 스티븐 연과 리즈 아흐메드는 각각 아시아계 미국인, 그리고 이슬람교도로서 처음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아시아계 배우가 남우주연상 후보에 두 명이나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영화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은 중국계 미국인이다. ‘노매드랜드’는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3관왕을 차지했다. 사진=EPA/연합뉴스 이 밖에도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는 감독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아시아 여성이었으며, 정이삭 감독과 함께 감독상 후보에 아시아계 인물이 두 명이나 오른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었다. 특히 이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인종 차별적 공격의 표적이 된 지 1년여가 지난 시점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이런 ‘최초’라는 타이틀에 대해 윤여정은 복잡한 심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데드라인’ 인터뷰에서 윤여정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올림픽에 나가 한국을 대표하는 건 아니지만 나라를 위해 경쟁하는 것만 같다”고 털어놓았는가 하면, 후보 발표 전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는 “전례를 남기거나 천장을 깨는 순간의 일부가 되면 훌륭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순간까지 속박당하고 싶지 않다”라고 속내를 밝혔다. 이러한 변화가 시작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소속 회원들의 다양화 노력 때문일 수 있다. 실제 2015년과 2016년 관련 해시태그(#oscarssowhite)가 주목을 받은 후, 협회는 2020년까지 투표 기관 내 여성과 유색인종의 수를 두 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협회 회원들 가운데 81%는 백인이며, 67%는 남성인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이런 아시아계 영화의 쾌거를 이루는 데 기여한 영화가 바로 ‘기생충’이라고 소개한 언론도 있다. ‘바이스닷컴’은 “이런 아시아 공동체의 이정표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4개 부문을 수상한 지 약 1년 후에 나왔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미국 영화 전문가이자 싱가포르 라살레 예술대학의 미술 및 미디어, 창조산업학부 학장인 아담 니는 “기생충의 급격한 성공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시아 대표들을 더 잘 어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고 평했다. 요컨대 기생충의 성공으로 이전에는 없었던 아시아계 영화에 대한 엄청난 홍보와 인지도가 창출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계속해서 미국인들의 의식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어갔다.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63세의 프랜시스 맥도먼드(왼쪽)와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73세의 윤여정. 사진=EPA/연합뉴스 그런가 하면 ‘하퍼스바자’는 윤여정이 고령의 여배우란 점에 대해 주목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부문에서 지난 93년간 60세 이상 여성이 수상한 횟수는 단 10회에 불과했다. 40~59세 사이의 배우들 가운데서는 18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이런 배경에 대해 ‘하퍼스바자’는 “아마도 노화에 대해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노화에 대한 충분한 주류적 묘사를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중년 혹은 그 이후의 여성들의 활기참, 탄력성, 복잡성을 거의 보지 못했다. 나이든 여자들의 이야기를 숨김으로써 우리는 그들에게 수치심을 주었다”라고 촌평했다. 그러면서 63세의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노매드랜드’로 여우주연상을, 그리고 윤여정이 73세의 나이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데 대해서는 “어젯밤 오스카 시상식은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왔다. 그것이 선지적이길 바란다”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