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포스코 시민단체·검찰 압박 속 리스크 대응 차원…덩치 커진 IT·플랫폼 기업도 인력 영입 열기
포스코 제철소에서 ‘직업성 암’으로 추정되는 질병에 걸린 노동자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정부가 제철업에 대한 역학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2월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 청문회’에 참석한 최정우 포스코 회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포스코는 대관, KT는 법무 강화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연임하자마자 홍보·대관 강화에 나섰다. 4월 26일 포스코는 경영지원본부 산하에 있던 커뮤니케이션실과 정책지원실을 분리해 커뮤니케이션본부를 신설했다. 커뮤니케이션실(홍보)과 정책지원실(대관)을 합쳐 커뮤니케이션본부로 격상해 조직 규모를 키웠다. 여야 국회의원 보좌진 출신 인사를 임원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커뮤니케이션본부 수장은 아직 공석이며 외부에서 수혈할 방침이다.
시민단체와 정치권 등의 잇따른 압박이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으로 꼽힌다. 최근 미얀마 군부 쿠데타로 유혈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외 시민단체들은 포스코 자회사들이 군부의 ‘돈줄’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결국 4월 16일 포스코강판은 ‘미얀마경제지주(MEHL)’와 합작 사업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앞서 3월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취득했다며 최정우 회장 등 포스코 임원 64명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정치권은 산업재해 관련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2월 최정우 회장은 국회 산재 청문회에 출석해 산재가 잇따라 발생하고, 심각한 지역 환경오염과 직업성 암 등을 해결하지 못했다며 청문회 위원들에게 집중포화를 맞았다. 4월 25일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은 포스코 공장에서 발생한 집단 암 관련해서 작업 환경에 문제가 없는지를 규명하고자 집단 역학조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 정경유착 문제 때문에 대관 확대에 조심스러운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인 행보”라고 평가했다.
KT는 대관보다는 ‘준법경영’을 택하면서 법무 라인을 강화했다. 지난해 취임한 구현모 KT 대표는 검찰 수사 대상인 대관 조직(CR)을 ‘부문’에서 ‘부서’ 단위로 축소했다. 대신 법무실의 컴플라이언스사무국과 윤리경영실의 컴플라이언스 리스크 진단 등 비상설 운영 조직을 컴플라이언스위원회로 합쳐 상설화했다. 위원장에는 김희관 전 법무연수원장을, 법무실장엔 안상돈 전 검사장을 영입했다.
지난 4월 초 검찰은 KT의 국회의원 ‘쪼개기’ 불법 후원 의혹에 대한 수사를 1년여 만에 재개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도 KT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관련 회계조사 등을 진행 중이다. 황창규 전 회장 등은 2014년 5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KT 대관을 통해 제19·20대 국회의원 99명에게 4억 3790만 원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2019년 1월 경찰은 황 전 회장과 함께 구현모 대표 등 전·현직 임원들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에 대해 재계 다른 관계자는 “대관으로 법적 쟁점을 해소할 수는 없다”며 “실질적으로 송사 관련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서 법무 라인을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특별시 송파구 송파대로 570에 위치한 쿠팡 본사 전경. 사진=박정훈 기자
#인력 수혈 나선 IT·플랫폼 기업들
IT·플랫폼 기업들도 각종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대관·법무 관련 인력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영향으로 IT·플랫폼 기업들이 큰 폭으로 성장했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제정과 전자상거래법 개정 등 신산업에 대한 규제를 속속 내놓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플랫폼 노동자 사망, 수수료 논란 등이 불거지고 있다. 사업이 궤도에 오른 만큼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서 관련 인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4월 22일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은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를 부회장으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김상헌 부회장은 2009년부터 8년간 네이버에서의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공정위의 인수합병(M&A) 등을 포함한 경영 전반을 담당한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김앤장법률사무소 출신 함윤식 전 부장판사를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함 부사장은 대관·홍보·법무 등 대외협력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국회 보좌관 출신 인사를 3명 연달아 영입하기도 했다. 홍보팀은 대부분 언론인 출신으로 구성했다.
쿠팡은 홍보·대관을 강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강한승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 △정한모 전 청와대 일자리기획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추경민 전 서울시 정무수석 △국회 보좌관 출신 인사 5명 등이 쿠팡 대관 관련 직무에 영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의 홍보·대관 관련 인력만 30여 명에 이른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법무법인 지평지성 대표를 지낸 강성 변호사를 수석부사장으로, 엔씨소프트는 김앤장 출신 정진수 변호사를 수석부사장으로 선임했다.
대기업 대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플랫폼·IT 기업들이 성장과 동시에 규제 안으로 들어오면서 리스크를 관리할 인력 수혈이 활발해졌다. 규제 핸들링은 기업의 존폐를 가르는 핵심”이라며 “입법이 원하는 방향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서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IT·플랫폼 대관들의 목표라면, 기존 대기업 대관들은 신사업 관련 지원을 받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형 법무법인들도 기업들의 수요에 발맞춰 관련 조직을 확대·개편하고 있다. 광장은 한진현 전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 3선 국회의원 출신인 우윤근 변호사를 고문으로 영입했다. 입법컨설팅 그룹을 이끄는 정진섭 변호사는 재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세종은 30명 규모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문팀을 확대하고 있다. 율촌은 박영만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담당 국장과 이민호 전 환경부 정책실장을 영입했다. 올해 초 세종은 ‘입법전략자문팀’을 구성해 장대섭 국회운영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고문으로 뒀다. 이광범 전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 부원장과 강영일 전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도 고문으로 영입했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마이데이터, 모빌리티 등의 신사업이 출현하면서 법령의 제·개정에 대한 리스크를 관리하는 대관이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며 “특히 부처 간 권한 분쟁과 중복된 규제로 인해서 로펌에 자문을 구하는 일도 많아졌고, 기업들도 법무·대관 조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