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값에 ‘혹’했다가 통 크게 털릴 수도
▲ 9일 오전 롯데마트에서 5000원에 ‘통큰치킨’을 판매하는 행사에 손님이 몰려 조기 매진됐다. ‘통큰치킨’은 골목 상인들과 치킨 프랜차이즈업체의 반발에 직면해 1주일 만에 판매를 중단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 |
최근 우리나라를 들썩이게 하는 상품들이다. 대형 유통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이들 상품은 사회 전 분야에 요란한 파열음을 냈다. 코스트코 피자를 벤치마킹한 ‘이마트피자’가 출시될 때만 해도 이렇게 시끄럽지는 않았다. 물론 논란은 있었지만 오히려 일반 피자에 비해 파격적인 가격이 화제가 되면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기존 코스트코 피자도 있고 골목상권 내의 소규모 자영업자 중에는 9900원짜리 피자를 파는 상인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2월 6일 출시한 롯데마트의 ‘통큰치킨’의 경우는 얘기가 달랐다. 통큰치킨으로 인해 발생한 소란이 삽시간에 일파만파 퍼졌다. 시중가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통큰치킨은 골목 상인들과 치킨 프랜차이즈업체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까지 나서 “롯데마트의 통큰치킨은 구매자를 마트로 끌어들여 다른 물품을 사게 하려는 ‘통 큰 전략’이 아닐까”라고 했다.
비판과 반발에 직면한 롯데마트 측은 결국 1주일 만에 통큰치킨의 판매 중단을 발표했다. 비록 통큰치킨을 1주일 만에 철수시켰지만, 롯데마트는 곧바로 20만 원대 ‘통큰넷북’을 판매하면서 ‘통 큰 전략’을 이어가고 있다. 말썽을 일으킨 이마트피자 통큰치킨 등은 이른 바 ‘미끼상품’으로 볼 수 있다. 정 수석비서관이 언급했듯 ‘구매자를 마트로 끌어들여 다른 물품을 사게 하려는’ 전략 상품인 것이다.
미끼상품이란 본래 원가보다 싸게 팔거나 일반 시중가보다 싼 가격에 파는 상품을 말한다. 마케팅 분야 전문용어로는 ‘로스리더’(Loss-Leader)라고 일컫는다. 비슷한 용어로는 특매상품 유인상품 등이 있다. 로스리더 마케팅은 질레트면도기 창업자인 킹 질레트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날을 바꾸어 끼는 면도기를 생산, 판매하면서 초기 가격은 싸게 책정하는 대신 바꾸어 끼는 면도날을 추가로 판매하면서 수익을 올렸던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주로 유통업체에서 미끼상품을 이용한 마케팅을 즐겨 쓰고 있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미끼상품 전략은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 가장 쉽고 신속하며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유통업체들은 미끼상품을 통해 두 가지를 노린다. 하나는 미끼상품을 앞세워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 자사에서 판매하는 상품이 모두 싸다는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미끼상품을 접한 소비자들은 아무래도 해당 유통업체의 가격이 모두 싸다고 인식하기 쉽다.
다른 하나는 미끼상품으로 고객을 유인해 다른 상품까지 팔겠다는 전략이다. 유통업체들이 광고하는 미끼상품을 보고 찾은 고객들이 자연스레 다른 상품까지 산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미끼인 셈이다. 미끼상품을 보고 대형마트를 찾은 한 소비자는 “미끼상품을 사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살 엄두도 못 냈다”며 “당초 사야겠다고 생각한 물건보다 산 물건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해당 대형마트의 전략이 제대로 통한 것이다.
그렇다고 미끼를 아무거나 쓰면 곤란하다. 소비자들이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대표 브랜드거나 상품이어야 한다. 수요가 많고 경쟁력이 강한 상품일수록 미끼상품의 효과는 배가된다.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들이 신라면 삼겹살 등을 미끼상품으로 자주 활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라면은 유통업체들의 대표 미끼상품이다. 또 가격할인 전쟁의 단골 무기이기도 하다. 신라면은 유통업체들이 오랫동안 가격을 내리기 위해 애썼지만 쉽지 않았던 품목 중 하나였다. 제조사인 농심이 유통업체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로 신라면의 브랜드 파워가 강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고객 유인 효과를 보는 데 으뜸이었다.
이마트는 아예 신라면을 증정품의 하나로 만들어 고객을 유인하고 매장 안에서 더 많이 소비하게 만든다. 이마트는 삼성카드로 10만 원 이상 결제시 5개들이 신라면 한 봉지를 증정품으로 주고 있다. 최근 이마트에서 삼성카드로 10만 원 이상 결제하고 증정품으로 5개들이 신라면 한 봉지를 받은 한 소비자는 “신라면을 준다는 말을 듣고 굳이 안 사도 될 물건을 하나 더 샀다”고 말했다.
백화점의 경우, 이따금 특정 상품은 아니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미끼’를 활용하기도 한다. 마케팅 분야 전문가는 “최근 유명 백화점들이 우리나라 젊은 층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패스트패션 업체들을 입점시키려 애쓰고 있다”며 “이것 역시 젊은 고객을 유인하려는 미끼 중 하나”라고 말했다.
미끼상품은 비단 유통업체들만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대형 쇼핑몰이나 여행업계 등도 가격을 대폭 할인한 미끼상품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더 많은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또 단말기를 무료로 주는 대신 약정 계약에다 일정한 요금제를 적용하는 통신업체, 두세 달 무료 서비스를 해준 후 유료 전환을 종용하는 각종 콘텐츠 업체 등도 미끼상품 활용 사례다.
미끼상품이 전부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현명한 소비자라면 미끼상품은 오히려 평소보다 매우 싼값에 원하는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갈수록 심화하면서 문제가 커지고 있다.
미끼상품이 소비자들의 원성을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유통업체들이 물량을 제대로 확보해놓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광고를 앞세우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통업체들의 대대적인 광고를 보고 찾은 소비자들은 끝 모르게 줄을 설지언정 원하는 물건을 샀을 때 만족감을 갖는다. 하지만 애써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물건이 다 팔렸다’는 소리를 들으면 화가 나게 마련이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가격 할인 전쟁을 벌일 때 삼겹살이 그랬고, 이마트와 코스트코가 신라면의 가격을 놓고 경쟁할 때도 그랬다. 홈플러스가 고작 세 개만 판매하면서 떠들썩하게 광고해가며 루이뷔통 가방을 판매한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기껏 기다렸던 소비자들은 허탈함과 동시에 유통업체에 배신감을 느낀다. 미끼상품을 툭 던져놓고 다른 상품들을 오히려 비싸게 팔거나 질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소비자들의 비난을 받는다.
LG경제연구원 박정현 책임연구원은 “학습효과가 생겨 이제는 미끼상품에 현혹되지 않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었다”며 “그래도 여전히 계획구매, 합리적인 소비가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임준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