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신부전증’ 등 동물도 사람처럼 늙어가…‘펫로스 증후군’으로 고통 겪기도
금동이의 주치의는 금동이의 나이를 28살 전후로 추정했다. 사진= A 씨 제공
그러나 노묘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몸 이곳저곳에 질환이 많았다. 잦은 수술을 하며 매일 통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노인을 봉양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A 씨는 “데려왔을 때부터 건강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다. 얼굴에는 큰 종양이 있어 1년 동안 진물이 흘렀다. 나이가 많아 약도 제대로 쓰지 못 했다. 유일한 치료가 매일 맞는 피하수액이었는데 이마저도 떠나기 석 달 전 부터는 피부가 얇아져서 매일 투약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사람처럼 알츠하이머 치매에 걸리기도 했다. 이를 인지기능저하증이라고 하는데 강아지보다는 고양이가 사람의 알츠하이머 치매와 더욱 유사한 발병 기전을 보인다. 인지기능에 손상을 입은 동물들은 방향감각을 상실해 같은 자리를 빙글빙글 돌거나, 밤에 이유 없이 울고 낮에는 잠만 자는 등 수면 활동 주기에 변화를 겪는다.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음식을 입 밖으로 밀어내는 등 치매를 앓은 사람과 유사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A 씨는 금동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금동이도 이를 아는지 1년도 버티기 힘들 것이라던 의사의 말과 달리 8년의 세월을 A 씨 옆에 있었다. 그러나 이별은 반드시 찾아왔다. 금동이는 4년 동안 인지기능저하증과 신부전증을 앓다가 4월 14일 아침, 가장 좋아하는 집에서 눈을 감았다.
문제는 남겨진 가족이었다. 금동이의 죽음은 A 씨 가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A 씨는 불면증과 무기력증, 죄책감에 시달렸다. 공황장애도 심해졌다. 환시나 환청을 겪는 날도 있었다. 경험과는 무관했다. 그는 “금동이 전에 고양이 5마리를 보낸 경험이 있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전의 이별이 자식을 보낸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부모를 보낸 느낌”이라고 했다. 또 다른 반려동물인 16살 노견 ‘하루’와의 이별에 대한 공포가 현실로 다가오기도 했다.
A 씨의 중학생 아들은 공허함과 허전함으로 힘들어했다. 금동이를 구조한 길목을 지날 때면 A 씨 아들은 “금동 할배가 있었던 곳이지?”하고 눈물지었다. 결국 A 씨 가족은 정든 집을 떠나 이사를 준비 중이다. 두 사람 모두 ‘펫로스(Pet Loss·반려동물 상실)증후군’을 겪고 있었다.
노묘 ‘금동이’와 노견 ‘하루’. A 씨는 금동이의 죽음 이후 하루의 죽음에 대한 공포도 느꼈다고 했다. 사진=A 씨 제공
‘펫로스 증후군’은 반려동물을 잃은 주인이 경험하는 상실감과 우울, 스트레스 등의 감정을 지칭하는 말이다. 주로 좀 더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 반려동물의 죽음 자체에 대한 부정, 반려동물의 죽음의 원인(질병, 사고)에 대한 분노, 빈자리에서 오는 공허함 등을 느끼며 증상이 심각할 경우 우울증이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증상이 1년 이상 지속될 경우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것을 권하고 있다.
실제로 2012년 부산에서는 ‘펫로스 증후군’을 앓던 4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또, 2019년 필리핀에서는 록 밴드 ‘레이저백’의 드럼 연주자 브라이언 벨라스코가 투신 사망해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키우던 반려견을 잃은 뒤 ‘펫로스 증후군’을 앓아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펫로스 증후군’에 대한 이해는 유럽이나 미국 등의 국가와 비교해보면 매우 얕다. 오히려 반려동물과 이별한 후 슬픔에 잠긴 사람을 보면 “동물이 죽은 일로 유난을 떤다”는 반응이 적지 않게 나오는 편이다. 그 이유는 아직까지 국내에 ‘펫로스 증후군’을 경험한 이들이 많지 않아서다. 국내 애견 및 애묘 인구는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급증하기 시작했는데, 이 동물들이 수명을 다하는 시기가 최근 3~4년이었기 때문이다. 즉, 우리 사회에서 ‘펫로스 증후군’은 여전히 낯선 현상인 셈이다.
A 씨도 펫로스 증후군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지만 정작 제대로 된 위로는 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악화된 공황장애와 우울을 치료하기 위해 지난 1년 동안 정신과만 4군데를 옮겼다. 하지만 펫로스 증후군을 이해해주는 병원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한 의사는 ‘앞으로 몇 번 더 겪어야 할 일인데,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약을 줘도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만약 내가 가족을 잃었다면 그렇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펫로스를 단순히 물건을 잃어버린 일 정도로 취급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모든 이별은 아픈 법이다. 김태현 반려동물장례지도사는 “펫로스 증후군을 이겨내지 못해 일을 그만두는 수의사도 봤다”며 “실제로 준비 없이 맞이한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자식을 잃은 고통과 유사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반려동물은 주인 없이는 먹지도 씻지도 못하는 아기 같은 존재인데, 사람과 달리 평생 독립도 불가능해 주인과 절대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겪는 상실감은 엄청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펫로스 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가올 죽음과 이별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지도사는 “모든 생명은 저마다 다른 시계를 갖고 살아간다. 나의 시계와 반려동물의 시계는 다르다. 내 반려동물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행복하게 지냈다면 나는 보호자로서의 충분한 역할을 해낸 것이다”라며 “이별은 언젠가 온다는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다가올 이별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 구체적으로 고민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예컨대 ‘새로운 간식 만들어주기’ ‘가보지 못한 길로 산책하기’ 등 이전에 해보지 않은 소소한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실천하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