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장관도 리스트에…수사 지연 의혹
▲ 국회 국토해양위 소속 국회의원에게 조직적으로 로비를 벌인 정황이 포착돼 논란이 일고 있는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건물.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경찰이 입수한 택시조합의 내부 문건에 따르면 조합 측은 입법로비를 위해 특별예산을 조합예산으로 할당하는가 하면 특별법 심사를 담당하는 법안심사 위원회 소속 11명을 비롯한 국토해양위원 15명에게 후원금 명목으로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택시조합으로부터 로비를 받은 15명의 현역 의원들 중에는 현직 장관과 여당 중진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검찰 수사 추이에 따라 적잖은 정치적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국회 국토해양위를 상대로 한 택시조합 측의 조직적인 ‘입법 로비’ 의혹 및 후폭풍을 진단해 봤다.
서울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지난해 12월 27일 택시조합이 입법로비를 벌이는 과정에서 다수의 국회의원에게 금품수수를 제공한 증거를 확보하고 관련자를 소환·조사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택시조합뿐만 아니라 다수 법인택시 단체에서도 로비를 벌인 정황이 포착돼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경찰은 택시조합이 택시 사업자에게 특혜를 부여하는 관련 법안 통과를 위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조직적인 입법 로비를 벌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실제로 택시조합은 지난 2008년 입법로비를 위해 자체적으로 거액의 ‘로비 자금’을 편성했다. ‘택시운송사업 진흥을 위한 특별법(이시종 의원 외 82인 발의)’을 통과시키기 위해서였다. 특별법에는 지역별 택시 총량제를 골자로 택시 사업자에 LPG 특별소비세 보조금 지급, 부가가치세와 기타 부과금 면제 등 파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신규 택시사업자 면허 양도·상속 불가 등 기존 사업자를 우대하는 내용도 있었다.
이 특별법이 통과될 경우 기존 택시사업자들은 버스 사업자와 같이 연 5000억여 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게 되는 등 ‘특혜’ 수준의 혜택을 받게 된다.
경찰이 입수한 택시조합의 내부 문건인 ‘2008년 특별관련 추진비’에 따르면 조합 측은 입법로비를 위해 7920만 원의 특별 예산을 조합 예산으로 할당했다. 이 금액 중 5300만 원은 2008년 10월 23일부터 다음해인 2009년 4월 23일까지 특별법 심사를 담당하는 법안심사 위원회 소속 11명을 비롯한 국토해양위원 15명에게 전달됐다. 우선 지역구별로 경기 3명, 충남 3명, 울산 2명, 광주·대전·경남·경북·강원·전북·제주 각 1명씩 전국구를 망라하는 16개 시·도의 지역구 국회의원을 로비 대상으로 선정했다. 그리고 각 지역 조합 이사장에게 ‘직접 로비금을 전달할 것’이라는 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택시조합은 국회의원의 영향력에 따라 후원금을 차등지급하기도 했다. 국토해양위원장 A 의원과 법안심사소위원장 B 의원, 간사 C 의원에게는 각각 500만 원, 소위원 11인에게는 각 300만 원, 영향력이 적은 기타 의원들에게는 100만 원이 전달됐다. 이른바 ‘로비 리스트’에는 현직 장관과 여당 중진 의원도 포함돼 있었다. 지난해 12월 2일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광주 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이 아무개 전 이사장은 “광주가 지역구인 국토해양위 D 의원에게 300만 원을 전달했다”며 “조합 측이 지난 2007년 개인택시조합 연합회비를 200원 인상했는데 인상분인 3억 8000만 원을 홍보비 등에 썼을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 당시 국토해양위원이었던 한 의원실 관계자는 12월 28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의원님의 후원금 통장에 해당 지역 택시조합 간부 2명으로부터 각각 돈을 받은 기록이 있다”고 털어놨다. 택시조합 관계자는 3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포함시키기 위해 그랬을 것”이라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조합 측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특별법은 폐기됐다. 대신 2009년 4월 공급을 초과하는 차량에 대해서 감차 보상비를 지원하고 면허 양도양수를 허가하는 내용의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경찰 수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수사와 관련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택시조합의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기록된 의원 중에 현직 장관과 여당 중진이 포함돼 있는 데다 여야 의원들이 검찰의 후원금 수사에 반발하고 있어 경찰이 수사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이 사건에 대해 처음 첩보를 입수한 곳은 지난 6월 광주경찰서였다. 당시 광주경찰서는 광주 택시조합의 조합비 횡령의혹에 대해 한창 내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광주서는 조사를 충분히 진행한 후 전국적인 사건이라고 판단하고 한 달여 만에 서울경찰청으로 해당 사건을 이첩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를 벌이던 경찰청은 수개월 후인 11월 중순에서야 특수수사과에 사건을 배정했다. 이후에도 수사에 미온적인 자세를 보이다가 모 언론사가 사건을 보도하자 그때서야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는 모양새를 띠었다.
이에 대해 특수수사과 관계자는 12월 30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우리는 이미 심도 있는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소극적인 수사 의혹을 부인했다. ‘소환 조사한 의원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아직 내사 단계이기 때문에 소환 조사할 의원 목록을 밝힐 수는 없다”고 답했다.
정치권 주변에서는 ‘택시 사업 특혜 로비’를 벌인 곳은 택시조합뿐만 아닐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택시 총량제, 세금 감면 등 공동의 이해관계로 묶여 있던 다수의 법인 택시 단체들도 입법로비에 가담했을 것이란 얘기다. L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12월 30일 기자와 통화에서 “2009년 12월 한국노총 택시노동조합연맹(택시노련) 관계자에게 100만 원을 후원금 명목으로 받아 장부에 기록해 놨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택시노련의 한 관계자는 “택시조합의 로비 목적이었던 특별법은 우리와 이해가 상충된다”며 “법인 택시 운전자는 10년 기다려야 될 수 있는데 특별법처럼 신규 사업자 면허 양도·양수 금지하면 누가 법인 택시 사업자 하겠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그는 “특별법 발의시 우리만 소외시켜서 반발했었다”며 “우리는 10만 원 미만의 개인 후원금을 모아 택시 사업 발전을 위해 애쓴 지역구 의원에게 개별적으로 전달했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의혹은 이뿐만 아니다. 경찰이 입수한 택시조합 내부 문건에는 후원금을 수수한 국회의원이 15명이라고 기재돼 있지만, 로비의 뿌리는 더 깊을 것이라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입법 로비인 만큼 심사위원뿐만 아니라 입법 자체에 관련된 국회의원도 로비 대상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수사당국은 철저히 수사해 국민적 궁금증을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미 기자 wihts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