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월 사용 후 반려묘 7마리 떠나보내기도…현행법상 ‘동물은 물건’, 보호자들 죄책감
#이유 모르고 죽어간 반려동물들…사람보다 더 빨랐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2019년 2월 서울 여의도 옥시레킷벤키저 본사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망자 시민분향소를 설치하며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모견인 ‘써니’를 해부해 원인을 알아내는 건 어떻겠냐고 병원에서 제안하더군요. 치료법이 없어 낫지도 않고 계속 나빠지기만 하니까 그런 말까지 하는 거예요.”
이별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써니를 포함해 A 씨가 키우던 반려견 3마리가 어느 날 갑자기 기침을 심하게 하는 등 기관지 천식 증상을 보였다. 서둘러 입원시켰지만 병원에서도 별다른 방도를 찾지 못 했다. 특히 모견이었던 써니의 증상은 더욱 악화됐다. 결국 증상이 나타난 지 이틀 만에 써니는 산소호흡기를 달고 대학병원으로 이송됐고 두 번의 심정지 끝에 사망했다. 설상가상으로 써니의 새끼 ‘하늘’이와 ‘별이’도 2~3일 뒤 A 씨 곁을 떠났다. A 씨가 직접 탯줄까지 잘라 더욱 애지중지 키운 아이들이었다. 당시에는 죽음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A 씨는 반려견의 죽음 이후 자신도 천식 약을 복용하게 되고나서야 반려동물도 같은 피해를 입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오히려 가습기를 더 쐬어준 사례도 있었다. 고양이 ‘모모’를 포함해 7마리를 잃은 B 씨는 캣타워 옆에 가습기를 두고 매일 2회씩 약 15개월 동안 가습기살균제를 이용했다. 이후 고양이들은 복막염 판정을 받았다. 복수가 너무 빨리 차 폐를 짓눌렀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수의사는 ‘미국 논문에 따르면 습도가 낮은 곳에서 복막염 발현율이 높다’고 조언했다. B 씨는 가습기 가동 횟수를 늘렸다. 당연히 살균제도 더 많이 넣었다. 상항은 더욱 악화됐다. 모모를 시작으로 2개월 만에 고양이 6마리가 사망했다. 고양이만이 아니었다. B 씨도 실내공기가 건조하면 목이 타들어가는 통증을 느꼈고 고열에 시달렸다.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반려동물의 피해가 처음 발견된 시점은 2006년으로 사람의 피해 발견 시점과 같았다. 2006년에 원인 미상의 소아 사망이 있었는데 당시 서울아산병원에서 가습기살균제의 심각성을 알렸지만 정부는 묵살했다. 2차 진료기관인 해마루 동물병원에 원인 미상의 폐손상을 입은 동물이 내원한 시점도 2006년 1월이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의 연관성이 밝혀지지 않은 탓에 동물들의 피해는 2011년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공론화된 뒤에야 알려지기 시작했다. 피해 수치 역시 2020년 9월에 나왔다.
사참위에 따르면 가습기살균제로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 된 반려동물은 2019년 기준 100마리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던 830가구 가운데 33가구가 반려동물의 건강상 피해를 경험했다는 자료를 토대로 추산한 바에 따르면 1994년부터 2011년 사이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반려동물은 약 87만 마리에 달한다. 이 가운데 심각한 건강상 피해를 입은 수는 9800마리로 추정된다.
반려인들은 펫로스 증후군(반려동물 상실 이후 겪는 공허함, 죄책감 등으로 겪는 우울한 감정)을 심하게 앓았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주된 감정은 가해의식과 자책이다. 가습기살균제의 위험성을 알았느냐 몰랐느냐와는 상관없이 보호자들은 ‘내 손으로 사랑하는 아이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을 짊어지고 있었다. 특히 반려동물의 죽음 이후 가습기살균제 사용을 중지해 자신에게 오는 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보호자들의 경우 고통이 배가 됐다.
A 씨는 “뉴스를 보자마자 우리 아이들이 겪은 증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기침, 감기 증상이 있다가 갑자기 폐가 쪼그라들고 호흡곤란이 온다. ‘사료든 간식이든 다 최상품으로 좋은 것만 먹였는데, 내가 그걸 안 썼으면 이렇게 될 일이 없을 텐데’ 그날 이후 더욱 자책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나 스스로 락스물을 먹고 고양이들에게도 그 물을 공기 중에 뿌려준 것이다”라고 탄식했다.
조지훈 펫로스 심리상담센터 ‘안녕’ 원장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로 반려동물을 잃은 보호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죄책감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의 죽음은 절대 보호자들의 잘못이 아니”라며 “만약 가까운 지인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자신은 어떤 말을 해주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분명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줬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가혹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죄책감과 억울함만큼 힘든 것이 또 있다. ‘아직 사람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는데, 동물보다는 사람이 먼저’라는 주위의 시선이다. C 씨는 7년 전,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신고하러 갔다가 발길을 돌렸다. 그는 “나도 천식기가 있어서 몸이 안 좋았는데 나보다 우리 개에 대해 먼저 말했다. ‘강아지가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떠난 것 같은데 어디에 얘기하느냐’고 물었더니 여기저기서 웃었다. 사람도 죽어 나가는 판에 무슨 강아지 얘기를 하느냐면서. 그래서 ‘아, 그래요? 사람이 먼저죠. 동물은 아직 아니죠’라고 말하고 돌아왔다. 조금 기다리면 동물의 순서가 오겠지 기대했다”고 말했다. 동물들의 피해가 관심을 받기까지 7년이 걸린 셈이다.
#피해 인정되어도 ‘동물’이라 보상받기 힘들어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가습기살균제로 피해를 입은 반려동물 사례를 모아 발간한 ‘끝에서 시작하다’. 사진=사참위 제공
반면 독일에서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점을 법에서 명시하고 있다. 인도와 뉴질랜드 등 일부 국가는 필요한 경우 자연물에 법인격을 부여한다.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1992년부터 인간에 의해 학대받는 반려동물, 농장동물, 야생동물 등의 이익을 법정에서 대변하기 위하여 지방정부 차원에서 동물변호인을 임명하고 정부비용으로 제도를 유지해 오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일정한 요건을 갖춘 개인 또는 단체라면 환경관련법 위반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시민소송제도가 동물관련법에 포함돼 있다.
한편 법원은 올해 1월 열린 1심 재판에서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이 폐 질환과 천식에 영향을 줬다고 결론을 내린 보고서와 동물실험 등이 없다는 점이 주요 근거였다. 이를 두고 보건학계에서는 “동물실험이 인구집단의 결과를 재현하지 못한다고 해서 임상적으로 드러난 피해를 부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판단”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정부는 5월부터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이 인체 세포에 미치는 독성 연구를 위한 용역을 실시할 예정이다. 한편 항소심은 5월 18일 열린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