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방역 대안 없고 사면론 제기·극우유튜버 채용 비판…유치원 무상급식·광화문 재조성 정책 승계 긍정 평가
4월 22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온라인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낭독하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 사진=서울시 제공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최대 화두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태 등으로 촉발된 부동산 문제였다.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장으로 취임하면 일주일 안에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확 풀겠다”고 속도감을 강조했다. 이런 기대감에 오 시장 당선 전부터 규제 벽에 막혀있던 한강변·강남·목동·여의도 등 서울 주요 재건축·재개발 지역 일대의 부동산 가격이 들썩였다.
집값 상승 부작용 비판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취임 첫날인 4월 8일 오 시장은 “주변 집값을 자극해 누를 끼칠 가능성이 있어 재건축 사업을 신속하지만 신중하게 진행하겠다”고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이후 4월 29일 긴급 브리핑에서는 “정상적 시장기능을 훼손하는 투기적 행위가 잔존하는 부동산 상황에서는 재개발·재건축 정상화 공약도, 준비된 정책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며 “재개발·재건축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가능한 행정력을 총동원해 부동산 시장 교란행위를 먼저 근절해 나가겠다”고 ‘속도조절’을 공식화했다.
긴급 브리핑 전인 4월 21일에는 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 등 4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추가 지정해 실수요가 아닌 아파트 매입을 사실상 금지하는 강한 규제책을 선보였다.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재건축사업에 대해서도 정비계획안 반려, 재건축 심의 보류 등으로 속도조절을 주문했다.
정부 규제가 부동산 문제의 근원인 것처럼 주장했지만, 정작 본인이 시장직에 오르자 집값 과열에 따른 부담감으로 속도감 있는 주택공급 공약에 제동을 건 것이다.
그러자 일각에서 오세훈 시장에게 ‘속았다’는 말이 나왔다.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오세훈 시장이 당선 후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수익성보다는 기부채납, 소셜믹스 등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간다는 말까지 나온다. 이에 주민들 사이에선 오 시장이 박원순 전 시장의 정책과 다를 게 없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속도조절이 합리적 선택이라는 분석도 있다. 부동산 정책을 분석하는 한 연구원의 말이다.
“오세훈 시장은 이미 서울시장을 경험해본 사람이다. 서울시장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권한 밖 한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오 시장이 전임 시장 체제에서 억눌려 있던 민간 재건축 규제를 풀겠다는 신호를 보내면 집값 폭등 등 부작용이 발생하고, 그 책임은 오세훈 시장에게 다 쏠린다. 템포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 그 방안으로 서울 재건축의 상징적인 장소인 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 4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1년간 적용했다. 1년간 속도를 조절하면서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통한 정치지형의 변화를 지켜보려는 계산 같다. 그동안은 문재인 정부와도 대립각을 세우지 않으며 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목동의 한 공인중개사 역시 “소유주들 입장에서는 재건축이 10년 넘게 진행이 안 됐는데, 몇 년 더 늦춰진다고 조급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집값이 떨어진 것도 아니다. 오세훈 시장은 뉴타운 개발 등 전적이 있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더 지켜보면 추진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오 시장은 코로나19 방역에서도 혼선을 빚었다. 오 시장은 취임 직후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현행 자영업자·소상공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률적 ‘규제 방역’이 아니라, 민생과 방역을 모두 지키는 서울형 ‘상생방역’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유흥주점과 감성주점·헌팅포차 등은 자정까지, 홀덤펍과 주점은 밤 11시까지 영업시간을 늘리고, 야간에 노래연습장 손님들을 상대로는 자가진단키트 사용을 시범 실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코로나19 일일 확진자가 600~700명대를 기록, 4차 대유행으로 가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던 시점이었다. 이에 유흥업소·노래방 규제 완화와 정확도가 떨어지는 자가검사키트 활용에 대한 반발이 일었다.
이런 비판에 오 시장은 자가검사키트 시범도입 대상을 유흥업소가 아닌 기숙학교와 콜센터 등으로 수정하고, 중앙정부와 긴밀히 협의해 새로운 방역지침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 방역지침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처럼 오 시장은 방역과 부동산 모두에서 강하게 정부를 비판하며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구체적인 대안은 선보이지는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하지만 오세훈 시장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나온다. 유치원 무상급식이 대표적이다. 오 시장은 5월 4일 국무회의에 참석해 “유치원 무상급식을 빠르게 추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더 나아가 어린이집 급·간식 비용 현실화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치원 무상급식은 이번 보궐선거에서 맞상대였던 박영선 후보 공약이었다. 이를 받아들이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다.
서정협 시장 권한대행 체제에서 시작한 광화문광장 재조성 사업을 보완하는 형태로 진행하겠다고 선언한 것 역시 예상을 깼다는 반응이 많다. 앞서 선거운동 과정에서 오세훈 시장은 비판적 태도를 보이며 ‘원상복구’까지 거론했다. 하지만 4월 27일 브리핑을 통해 “이미 공정이 34% 진행돼 돌이키기에는 최소 400억 원이라는 비용이 발생한다”며 “광화문광장 조성 공사를 진행하되 현재 안을 보완·발전시켜 완성도를 높이기로 결론내렸다”고 설명했다.
또한 박원순 전 시장 잘못에 대해서도 앞장서 수습하고 사과에 나서기도 했다. 오 시장은 박 전 시장 성희롱·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직접 만났고, 이후 서울시장으로서 공식 사과했다. 사건 당시 인사 및 박 전 시장 장례식·분향소 설치 문제 등과 관련한 책임자들에 대해서 문책성 인사명령 조치도 단행했다.
이러한 행보를 놓고 정가에선 지지기반인 보수를 넘어 중도층 표심까지 외연을 확장해 향후 대선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내년 3월 대선에서 야권 유력 후보가 나오지 않으면, 이번 보궐선거로 지지율을 끌어올린 오 시장이 대선에 뛰어들 수도 있다는 관측과 맞물린다.
오세훈 시장이 나경원 당시 예비후보, 안철수 후보와 경선 과정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중도보수’의 이미지를 가져간 것이었다. 전광훈 목사가 주도한 태극기 집회 연단에 오른 모습과 그 자리에서 한 발언으로 극우 성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주진 않았다.
4월 21일 청와대의 초청으로 진행된 오찬 간담회에 앞서 청와대 상춘재에서 문재인 대통령(가운데)과 환담을 나누고 있는 박형준 부산시장(왼쪽)과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 사진=연합뉴스
이러한 분석과 달리 오 시장이 과거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건의한 것도 그중 하나다. 오세훈 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은 4월 21일 청와대에 초청 받아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공개 건의했다.
박형준 시장은 문 대통령과 오찬회동을 마친 뒤 “더 큰 통합의 차원에서 국민의 대표였던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어렵게 말씀드렸다”고 밝혔다. 오세훈 시장 역시 “마음속으로 사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박형준 시장이 먼저 말했다”며 “원론적 내용의 (문 대통령) 답변이 있어 저 역시 같은 건의를 드리려 했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전했다. 하지만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은 당 안팎의 반대에 부딪혀 수그러들었다.
오 시장은 극우 성향 콘텐츠를 다루는 20대 유튜버 A 씨를 ‘메시지 비서’라는 명칭의 별정직 공무원 8급으로 채용해 도마에 올랐다. A 씨는 문재인 대통령을 ‘문 씨’로 지칭하며 ‘문 씨의 몰락’ ‘윤석열! 문 씨한테 소송 건다?! 피고로 전락하는 문 씨?’ 등의 제목으로 영상을 올렸다.
메시지 비서는 시장 연설문과 축전 축사 등 시장실에서 내는 글의 초안 작성을 담당하는 만큼, A 씨의 채용으로 서울시장의 메시지가 정치적 중립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A 씨 역시 논란을 의식한 듯 비서로 채용되자 자신이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에 등록한 동영상을 모두 지웠다. 채널 이름과 프로필 사진 등도 삭제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