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계 ‘김경수 등판’ 불씨 살리기…‘룰의 딜레마’ 빠져 역풍 맞을 수도
여권발 ‘반이재명 연합군’의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촉매제는 대선 경선 연기론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에 맞선 여권 후발 주자들은 대선 경선 연기론을 고리로 연대 전선을 구축했다. 이 지사는 원칙론을 앞세워 강하게 블로킹을 했지만, 대선 경선 연기 여부는 이미 여권 차기 대선의 최대 변수로 격상했다. 친문계가 띄우고 반이재명 연합군이 받은 대선 경선 연기론의 1차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2차 목표는 ‘판 흔들기’다. 최종 목표는 ‘친문 적자 후보’ 내세우기다. 변수는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묶고 있는 족쇄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5월 12일 한 행사장에 참석해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대선 경선 연기론은 꽃놀이패다(관련기사 이재명 견제한다고 당헌 또 바꿔? 친문 ‘대선 경선 연기론’ 물밑 쟁투). 반이재명 전선에 들어온 이들에겐 밑져야 본전인 게임이다. 수적 싸움에서 우위를 보인 반이재명 연합군의 전선이 짙어질수록 대선 구도는 흔들린다. 경우에 따라 오는 9월 예정된 대선 경선이 연기될 수도 있다. 후발 주자들에겐 일종의 시간 벌기가 가능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이재명 지사와 대립각을 세우는 후발 주자들의 정치적 존재감은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지사가 경선에서 과반 이상을 얻지 못해 결선투표까지 갈 경우 반이재명 연합군의 파괴력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판세가 이 지사의 원사이드(일방적) 게임에서 ‘51 대 49’ 싸움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특히 대선 경선 연기론은 ‘1 대 다수’의 싸움이다. 반이재명계가 애초부터 수적 우위를 점한 게임이다. 이 지사 아킬레스건인 약한 조직력을 더욱더 짓누를 수도 있다. 반이재명 전선 포위망이 강력할수록 이 지사는 예선에서 적잖은 내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 지사가 여당의 최종 대선 후보에 오르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여기에서 나온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반이재명계 인사들이 승부를 한번 걸어볼 만한 지점”이라고 밝혔다.
벌써 소기 목적은 달성했다. 당 주류 인사들이 군불을 지폈던 대선 경선 연기론은 이제 여당 대선 주자 간 힘겨루기로 전환됐다. 이 과정에서 친문계는 특유의 치고 빠지기를 통해 유리한 판을 조성했다. 총대는 PK(부산·울산·경남) 친문계 핵심인 전재수(부산 북구 강서구갑) 의원이 멨다. 애초 여당발 경선 연기론이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지난 2월 중순이다. 친문계 내부에선 온라인 전 당원 투표를 통해 ‘대선 180일 전’ 후보 선출 규정을 ‘대선 120일 전’으로 늦추자는 안이 거론됐다.
이로부터 3개월 뒤 전 의원이 공개적으로 다시 대선 경선 연기를 주장했다. 그는 5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선 경선 연기에 대해 “집권전략 측면에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대선 후보를 선출한 후) 국민의힘이 진행하는 역동적인 후보경선 과정을 멀뚱멀뚱 쳐다봐야 하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민주당 후보가 본선 링에 먼저 오를 실익이 없다는 뜻이었다. 전 의원은 그러면서 ‘특정 캠프’만 빼고 다 동의한다며 반이재명 전선에 불을 지폈다. 대선 경선 연기론이 이재명 견제를 위한 포석이라는 점을 사실상 실토한 셈이다.
그러자 여의도 안팎에선 친문계가 ‘김경수 구원등판’을 위한 밑자락 깔기에 나섰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친문계가 ‘13룡’을 띄웠지만, 김경수 경남도지사 이외엔 적자가 없다(관련기사 대선 판 키우기냐 흔들기냐…여권 ‘13룡 등판론’의 비밀). 일부는 범주류인 정세균 전 총리를 돕고 있지만, 친문계가 단일대오를 형성해 ‘정세균 옹립’에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현재 여권 제3후보는 김두관·이광재 의원과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정도다. 친노(친노무현) 비주류인 김두관 의원은 친문 직계와 거리가 있다. 원조 친노인 이 의원은 다크호스로 꼽히지만, 당 주류에서도 ‘차차기’ 내지 제3후보론의 ‘플랜B’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다만 이들은 차기 대선 출마 결심을 굳혔다. 김두관 의원은 오는 6월 자서전 ‘꽃길은 없었다’ 출간에 앞서 “노무현·문재인 정신을 계승할 것”이라며 연일 광폭 행보를 하고 있다. ‘세종대왕 리더십’을 들고 나온 이광재 의원은 5월 21일 한·미 정상회담 이후 대선 출마를 공식화할 예정이다. PK 친문계인 박재호 의원이 캠프 조직 구성을 맡고 노무현 정부 청와대 참모 출신인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 등이 물밑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석 전 실장은 장고 중이다. 추미애 전 장관도 출마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낙연 전 대표와 김경수 경남지사. 사진=이종현 기자
남은 것은 ‘김경수 카드’다. 친문계로선 플랜B 선택 전에 베팅을 걸어볼 만한 승부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친문 내부에선 일말의 기대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관전 포인트는 오는 6월 예정된 대법원 선고다. 김 지사는 이른바 ‘드루킹 댓글 사건’의 공동정범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고법에서 열린 항소심 재판부(함상훈 부장판사)는 김 지사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지만, 피선거권과 직접 맞물린 선거법 위반에 대해선 1심을 뒤집고 무죄 판결을 내렸다.
변수도 부상했다. 중도진보 성향의 신임 천대엽 대법관 부임으로 김 지사 사건이 대법원 3부에서 2부로 이동한 것이다. 이에 따라 주심인 이동원 대법관과 조재연 대법관, 천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등이 김 지사 사건을 맡을 예정이다. 재판부 개편에 따라 관련 사건이 전원합의체로 회부될 가능성도 있다. 이곳에는 진보 성향 판사들이 곳곳에 포진된 만큼, 김 지사에게 불리하지 않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민주당 내부에서 “김 지사의 대법원 판결이 대선 경선 최대 변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재명 지사 측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간 공개 반발을 삼갔던 이재명계는 전재수 의원의 첫 공론화 직후 총공격 태세로 전환했다. 최전선에는 당내 현역 중 이 지사에 대한 첫 지지를 보냈던 민형배 의원이 섰다. 그는 5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선 경선 연기론은 패배를 앞당기는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이재명계 좌장격인 정성호 의원과 김병욱 의원도 반발했다. 애초 이 지사 측은 관련 논쟁에 대해 “명분도 실익도 없다”며 참전을 자제했다. 친문계와의 관계 설정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전 의원이 공개적으로 던지고 후발 주자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이낙연 전 대표, 김두관 민주당 의원 등이 대선 경선 연기론에 사실상 힘을 싣자, 이재명계 의원들도 룰 전쟁에 뛰어들었다.
실제 반이재명 연합군은 5월 10∼11일 이틀간 화력을 쏟아 부었다. 정 전 총리는 “당 지도부가 최선의 숙고와 검증과 논의를 통해 안을 만드는 게 좋겠다”며 송영길 대표에게 공을 던졌다. 이낙연 전 대표도 “당이 빠른 시일 내에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두관 의원도 “(대선 경선 연기는) 이 지사에게도 불리하지 않다”고 전했다. 정 전 총리와 김 지사는 5월 5일 회동을 통해 경선 룰 변경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반이재명계 내부에서도 대선 경선 연기론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정 전 총리 측 핵심 관계자는 “대선 경선 연기는 전 당원 의결 사안인데, 그게 가능하겠냐”라고 반문했다.
주목할 부분은 두 가지다. 친문계에서 대선 경선 연기론을 처음 공론화했던 전재수 의원은 5월 11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당내 분란으로 비치는 것에 대해 죄송하다”며 한발 물러섰다. 대권 잠룡들이 등판하자, 뒤로 빠진 것이다. 급기야 이 지사까지 룰 전쟁에 뛰어들었다. 정세균·이낙연·김두관 등으로 연결된 반이재명계가 급부상하자, 이 지사는 5월 12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비주거용 부동산 공평과세 실현’ 정책 토론회 참석 직후 “원칙대로 하면 제일 조용하고 원만하고 합당하지 않나”라고 경선 연기를 반대했다. ‘전재수 대선 경선 연기론 첫 공개 제기→민형배 등 친이재명계 반발→반이재명계 연합군 형성→전재수 일보 후퇴→이재명 공개 반대 천명’ 등으로 이어진 셈이다.
하지만 친문계가 ‘룰의 딜레마’에 빠져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당장 4·7 재보궐 선거만 하더라도 무공천을 피하고자 택한 전 당원 투표는 민주당에 되레 독으로 작용했다. 이 지사 측이 원칙 프레임을 내걸고 정면 돌파할 경우 친문계의 약한 고리인 공정성 훼손 논란만 커질 수도 있다. 차기 대선 경선을 두 달 미루고도 ‘이재명 대세론’이 공고할 땐 반이재명 연합군이 일시에 무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부 의원들은 이 지사에게 이 같은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당 지도부에서 이 안건을 논의한 적은 없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