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교사까지 대마 흡입
▲ 마약을 주요 소재로 다룬 영화<사생결단>의 한 장면. |
그런데 최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유통망이 다변화돼 이제 마약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는 일종의 기호품이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전에는 한 유아영어학원 교사가 대마흡입 혐의로 입건되면서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연예계 등 특수층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과 학교에까지 번지고 있는 마약사범 실태를 들여다봤다.
지난 1월 11일 수원지방검찰청은 2010년 마약사범에 관한 단속결과를 발표했다. 수원지검 강력부는 2010년 한 해 동안 마약사범 199명을 인지하고 그 중 76명을 구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필로폰 45.6g을 압수했다. 2009년 대비해 구속자는 약 15%, 필로폰 압수량은 약 14% 증가한 수치다.
검찰 자료에 따르면 최근 마약범죄 사건에는 한 가지 뚜렷한 특징이 감지되고 있다. 바로 마약의 대중화 현상이다. 최근 유통방식이 다변화되면서 마약은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기호품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 자료 가운데는 지난해 11월 17일 붙잡힌 유아영어학원 교사 홍 아무개 씨(여·26) 사례가 가장 충격적이다. 유아영어학원은 흔히들 말하는 속칭 ‘영어유치원’으로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일종의 유아교육기관이다. 유치원 교사자격증까지 갖춘 홍 씨는 검찰 조사 결과 원생들을 돌보는 동안에도 대마를 흡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홍 씨는 지난해 1월경 미국여행 당시 대마초를 우연히 접했다고 한다. 홍 씨는 미국 여행 도중 한 재미교포 남자와 사귀게 되면서 대마초를 흡입하게 되었다. 한국에 들어온 그는 한 유아영어학원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상습적으로 대마초를 흡입했다. 지난해 7월 미국에 있는 남자친구로부터 한 차례 대마초를 공급받았고, 남자친구가 한국에 들어온 10월 경에는 지인인 구 아무개 씨 등과 상습적으로 피워댔다.
지인인 구 씨가 수사기관에 덜미를 잡히면서 홍 씨도 결국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됐다. 검찰조사 결과 홍 씨는 붙잡힌 날 하루 전까지 대마초를 흡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유치원 교사 홍 씨 이외에도 지난해 적발된 마약사범 가운데는 평범한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예인, 상류층 유학파 자녀들과 같은 특수한 계층이 향유했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난해 5월에는 유흥업소가 밀집한 수원 인계동 일대에서 필로폰을 유통한 수원 지역 조폭 ‘남문파’ 행동대원 염 아무개 씨(36) 등 12명이 검거됐다. 이들은 적은 양을 필요에 따라 유통했기 때문에 단속망을 피할 수 있었다. 유통한 마약을 이용한 주 고객들은 놀랍게도 미용사, 대리운전기사, 농민, 마사지관리사 등 마약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미국과 유럽 등 일부 선진국에서나 존재하는 마약의 대중화 현상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마약 대중화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지난 1월 12일 기자와 만난 수원지검 강력부 마약범죄 담당검사는 마약 공급선의 변화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담당검사는 “과거 마약 유통은 일본의 일부 야쿠자와 같은 범죄조직, 선원, 마약전문제조·밀매인 등 전문가들에 의해 대량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일반인이 쉽게 접하는 인터넷과 해외여행이 급속도로 활성화되면서 소규모 유통이 가능해졌다. 누구나 마약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심지어 지난해 검거된 마약사범 가운데는 부부 도 있었다. 마약에 심취한 남편을 뜯어 말리던 아내가 같이 마약을 하게 되었다. 마약이 가정까지 파고 든 경우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소규모 유통은 주로 인터넷 쇼핑몰, 국제우편, 신체 내 소량 은닉 등의 방법이 이용된다. 담당검사에 따르면 현재 인터넷에서는 철저히 신분을 숨긴 업자들이 발기치료제 유통과 비슷한 수법으로 엑스터시 등 마약류를 유통하고 있다고 한다. 또 아예 마약을 대놓고 판매하고 있는 해외 마약전물 쇼핑몰에서도 일반인들이 마약을 쉽게 들여올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최근 해외 물류서비스가 활성화 되면서 국제우편이 마약 전달 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수사당국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유통방식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담당검사는 “과거처럼 전문가들에 의해 대규모로 유통되었을 경우에는 비교적 단속이 손쉬웠다. 하지만 최근 일반인도 쉽게 손댈 수 있는 소규모 유통이 활성화되면서 이러한 대규모 유통망 자체가 없어졌다. 때문에 단속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마약사범에 대한 법원의 조치에도 문제가 있다. 과거 마약사범들은 초범임에도 구속조치가 취해졌지만 현재는 대부분 불구속 처리로 풀려난다”며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