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후보에 충성경쟁 방법, 국회법상 부적절…“보좌진을 의원 수족으로 인식, 당사자에겐 자괴감”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 마련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A 후보 캠프 사무실. 많은 직원들이 전국 당원 조직을 관리하고 공보물을 만드는 등 A 후보를 알리기 위해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는 국민의힘 의원들 비서관들이 책상에 앉아 일하고 있었다.
비서관을 파견한 의원실 관계자는 “A 후보와 우리 의원이 함께 일도 많이 하고 친분이 있다. 이에 A 후보 캠프에 비서관 중 한 명을 파견했다. 캠프와 의원실을 오가며 일하고 있다. 다른 의원실 보좌진들도 꽤 차출돼 나가 일을 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 선거 캠프에서는 지지층을 끌어 모으는 실무를 담당할 직원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다. 후보들은 캠프에서 일을 도와줄 보좌진을 보내 달라고 친한 의원들에 요청을 한다. 그럼 의원들은 소속 보좌진을 파견해 실무를 담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전당대회 등 대형 이벤트가 열리면 각 후보 캠프에 의원실 소속 보좌진을 파견해 일을 맡기는 것은 국민의힘만이 아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민주당도 보좌진이 후보 캠프에 파견돼 일하는 경우가 많다. 엄밀히 따지면 법적으로 적절하지는 않지만 관례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국회의원 보좌진은 의원의 입법과 정책 수립 등을 보좌하기 위해 고용된 별정직 공무원이다. 국회의원수당등에관한법률(국회의원수당법) 제9조에 따르면 보좌직원에 대해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보좌관 등 보좌직원을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보좌진 급여는 국회 사무처에서 지급한다. 따라서 업무 외 다른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국회 보좌진이 선거 캠프에 파견돼 일을 맡는 것이 온당하냐는 문제 제기가 끊임없이 나왔다. 물론 공직선거법상으로 불법은 아니라는 것이 정치권 입장이다. 하지만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의원 보좌진들이 본래 국회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정당 후보 선거운동을 돕는 것은 편법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A 후보 경쟁 후보 캠프 측 관계자는 “A 후보 캠프에서 다수 의원실의 보좌진들이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공정하지 않은 것이 맞다. 국회 보좌진 업무는 입법 활동이다. 자신이 속한 의원도 아닌 후보의 선거운동에 동원되는 것은 일종의 편법”이라며 “우리 캠프는 의원실 보좌진을 파견 받아 실무를 담당하게 하지 않는다”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사람들의 모임이 제한적이다. 그래서 각 후보 캠프도 상주 직원들의 규모를 축소했다. 그러다 보니 최근 의원실 보좌진 파견이 적은 것으로 보인다”며 “코로나19 상황이 아니었다면 A 후보 경쟁 캠프에서도 의원실에 보좌진 파견을 요청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도 보좌진 파견이 반복되는 것은 의원들이 여전히 보좌진을 자신들의 수족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과거 대선캠프 등에 파견돼 일을 한 바 있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이다.
“의원들은 유력 주자에게 눈도장을 찍고 계파에 줄을 서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른바 충성 경쟁이다. 그럴 때 가장 편한 방법은 자신의 보좌진을 후보 캠프에 파견 보내는 것이다. 보좌진은 의원들의 정책을 보좌하는 파트너 관계다. 하지만 아직도 의원들은 보좌진을 자신의 부하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니 관행처럼 보좌진 파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역 의원실 한 비서관은 “선거캠프에 파견돼 일하면 소중한 경험을 쌓는다. 하지만 연이은 선거에 파견 나가 일을 하다 보면 입법 정책 활동을 하기 위해 국회에 들어온 게 아니라 선거 운동원이 된 것 같아 자괴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보좌진은 의원들의 지시를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니 계속 따를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끝나면 정치권은 가장 큰 행사인 내년 3월 대선 정국에 돌입한다. 이미 유력 대선주자들은 선거캠프 구성에 들어갔다. 각 당이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일정을 시작하면 선거 캠프로의 보좌진 파견은 다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