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전 총장이 먼저 국민의힘 인사들 접촉…“전대 후 신임 당대표에게 취임 선물로 입당 의사”
3월 4일 검찰총장직에서 중도하차할 때만 하더라도 윤석열 전 총장 선택지는 제3지대 신당으로 향해 있었다. 윤 전 총장은 사퇴 직후 정치권을 비롯해 학계와 시민단체 인사들을 만나 신당과 관련된 의견을 주고받았다. 당시 윤 전 총장과 접촉했던 복수의 인사들은 “윤 전 총장이 1야당 국민의힘 입당에 대해선 부정적 반응을 강하게 보였다”고 입을 모았다. 윤 전 총장은 여러 차례 ‘새로운 정치’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공식 행보를 자제하고 대권 수업에 돌입한 윤 전 총장은 모든 라인을 풀가동, 대권 조직 기반을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윤석열 캠프’를 꾸미는 것은 쉽지 않았다. 주로 법조에 국한되는 인재풀을 넓히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러브콜을 보냈던 인사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난색을 표했다. 기존 정치권 검증도 본격화했다. 여권은 물론 1야당 국민의힘에서조차 비토 기류가 높았다.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지지율 역시 하락 추세로 돌아섰고, 이재명 경기지사와의 격차도 줄어들었다.
정치권에선 윤 전 총장이 과거 3지대 후보 잔혹사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확산됐다. 고건 전 총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이 한때 거센 돌풍을 일으키며 출사표를 던졌다가 낙마했던 사례가 거론됐다. 그러자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도 “윤 전 총장이 결국 입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오갔다.
4‧7 재보선에서 국민의힘 승리는 윤 전 총장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1야당 정권교체를 외치는 국민의힘 자강론이 힘을 얻었고, 동시에 ‘윤석열 대안론’이 뒤를 이었기 때문이다. 윤 전 총장의 ‘별의 순간’ 마침표를 찍어줄 것으로 점쳐졌던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김동연 전 부총리 등 ‘플랜B’를 꺼냈다. 보수 야권에서 윤 전 총장 입지는 빠르게 좁아졌다.
윤석열 전 총장 측과 국민의힘의 의사소통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유력한 대권 후보를 보유하지 못한 1야당과 지지율은 선두권이지만 혈혈단신인 윤 전 총장 간 이해득실이 접점을 찾은 셈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4월 재보선 승리는 1야당에 힘을 실어줘 대선을 준비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면서 “새로운 인물에 의한 바람은 조직과 자금이 결합했을 때 완성된다. 윤 전 총장 혼자서 무슨 선거를 치르느냐”고 했다.
윤 전 총장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만나 여러 현안을 논의했다는 얘기가 속속 들렸다. 윤 전 총장과 어릴 때부터 친구로 지내온 권성동 의원, 지난해부터 ‘윤석열 충청 대망론’을 언급한 정진석 의원, 초선 윤희숙 의원 등을 만나 대권 출마 뜻을 간접적으로 피력했다고 한다. 장제원 의원에겐 전화를 걸어 “몸을 던지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모두 윤 전 총장이 먼저 연락을 취해왔다는 점이다. 윤 전 총장이 입당 뜻을 굳혔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앞서의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알려진 것 외에도 윤 전 총장을 만난 의원들이 더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언제 당을 만들어 출마를 할 것이냐고 말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하면 다른 당, 주자들의 공격을 막는 데만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다. 다른 거 필요 없고 당에 들어와 본인의 소신, 정책을 말할 준비만 하라고 했다. 나머진 당에서 알아서 다 해 줄 텐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여러 번 강조했다.”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 의원뿐 아니라 지인들과의 만남에서도 국민의힘 입당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국민의힘으로 들어가 대선 후보로 선출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고 한다. 윤 전 총장 측과 가까운 한 법조인은 “경쟁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다. 과연 공정한 경선이 될 수 있느냐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아무런 세도 없이 홀로 들어갔다가 이용만 당하고 팽당할 수 있다는 조언이 많았던 것으로 들었다”고 전했다.
윤 전 총장이 입당 전 국민의힘 의원들과 연이어 만난 것 역시 이런 부분들과 맞물려 받아들여진다. 입당할 경우 자신에 대한 지지세가 어느 정도가 될지 미리 살펴보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는 얘기다. TK(대구‧경북) 의원들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거부감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윤 전 총장이 윤희숙 의원과의 만남을 공개한 것은 당 의원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초선(56명)들을 염두에 뒀기 때문’ ‘윤 전 총장 측이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 성향 파악에 나섰다’는 말들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 전 총장이 입당 결심을 굳히자 양측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윤 전 총장이 입당하면 최소 15명 이상 의원들이 ‘윤석열 지지 선언’을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지금 당내엔 계파가 와해된 상태다. 결국 유력 차기 주자에게로 의원들이 쏠릴 수밖에 없다.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의원들 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도 “윤석열 전 총장 측으로 알려진 한 의원이 이른바 ‘윤석열 지지 명단’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지금 20명 가까운 의원들이 서명했다. 나도 고민 중”이라면서 “입당하면 당내에서 가장 큰 계파가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윤 전 총장은 과거 3지대 후보와 다른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움직임을 윤 전 총장도 잘 알고 있고, 명단도 전달됐다. 윤 전 총장이 입당하기로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윤 전 총장 측근 역시 비슷한 내용을 들려줬다. 그는 “고맙게도 국민의힘 많은 의원들이 지지 의사를 밝혀줬고, 입당하면 공식 지지 선언을 해 준다고 하더라. 구체적인 명단을 알고 있고, 그중 여러 명과는 자주 접촉을 하고 있다”면서 “윤 전 총장은 공정하게 경선만 보장되면 바로 입당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전했다. 앞서의 윤 전 총장 측 법조인은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끝나면 윤 전 총장이 신임 대표를 통해 입당 의사를 전할 것이다. 이는 신임 대표에게도 좋은 취임 선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