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공식 행보를 자제하고 대권 수업에 돌입한 윤 전 총장은 모든 라인을 풀가동, 대권 조직 기반을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윤석열 캠프’를 꾸미는 것은 쉽지 않았다. 주로 법조에 국한되는 인재풀을 넓히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러브콜을 보냈던 인사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난색을 표했다. 기존 정치권 검증도 본격화했다. 여권은 물론 1야당 국민의힘에서조차 비토 기류가 높았다.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지지율 역시 하락 추세로 돌아섰고, 이재명 경기지사와의 격차도 줄어들었다.
정치권에선 윤 전 총장이 과거 3지대 후보 잔혹사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확산됐다. 고건 전 총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이 한때 거센 돌풍을 일으키며 출사표를 던졌다가 낙마했던 사례가 거론됐다. 그러자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도 “윤 전 총장이 결국 입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오갔다.
4‧7 재보선에서 국민의힘 승리는 윤 전 총장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1야당 정권교체를 외치는 국민의힘 자강론이 힘을 얻었고, 동시에 ‘윤석열 대안론’이 뒤를 이었기 때문이다. 윤 전 총장의 ‘별의 순간’ 마침표를 찍어줄 것으로 점쳐졌던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김동연 전 부총리 등 ‘플랜B’를 꺼냈다. 보수 야권에서 윤 전 총장 입지는 빠르게 좁아졌다.
윤석열 전 총장 측과 국민의힘의 의사소통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유력한 대권 후보를 보유하지 못한 1야당과 지지율은 선두권이지만 혈혈단신인 윤 전 총장 간 이해득실이 접점을 찾은 셈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4월 재보선 승리는 1야당에 힘을 실어줘 대선을 준비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면서 “새로운 인물에 의한 바람은 조직과 자금이 결합했을 때 완성된다. 윤 전 총장 혼자서 무슨 선거를 치르느냐”고 했다.

“알려진 것 외에도 윤 전 총장을 만난 의원들이 더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이다.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언제 당을 만들어 출마를 할 것이냐고 말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하면 다른 당, 주자들의 공격을 막는 데만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다. 다른 거 필요 없고 당에 들어와 본인의 소신, 정책을 말할 준비만 하라고 했다. 나머진 당에서 알아서 다 해 줄 텐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여러 번 강조했다.”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 의원뿐 아니라 지인들과의 만남에서도 국민의힘 입당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국민의힘으로 들어가 대선 후보로 선출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고 한다. 윤 전 총장 측과 가까운 한 법조인은 “경쟁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다. 과연 공정한 경선이 될 수 있느냐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아무런 세도 없이 홀로 들어갔다가 이용만 당하고 팽당할 수 있다는 조언이 많았던 것으로 들었다”고 전했다.
윤 전 총장이 입당 전 국민의힘 의원들과 연이어 만난 것 역시 이런 부분들과 맞물려 받아들여진다. 입당할 경우 자신에 대한 지지세가 어느 정도가 될지 미리 살펴보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는 얘기다. TK(대구‧경북) 의원들을 중심으로 퍼져 있는 거부감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윤 전 총장이 윤희숙 의원과의 만남을 공개한 것은 당 의원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초선(56명)들을 염두에 뒀기 때문’ ‘윤 전 총장 측이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 성향 파악에 나섰다’는 말들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 전 총장이 입당 결심을 굳히자 양측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이와 관련,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윤 전 총장이 입당하면 최소 15명 이상 의원들이 ‘윤석열 지지 선언’을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지금 당내엔 계파가 와해된 상태다. 결국 유력 차기 주자에게로 의원들이 쏠릴 수밖에 없다. 윤 전 총장을 지지하는 의원들 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도 “윤석열 전 총장 측으로 알려진 한 의원이 이른바 ‘윤석열 지지 명단’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지금 20명 가까운 의원들이 서명했다. 나도 고민 중”이라면서 “입당하면 당내에서 가장 큰 계파가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윤 전 총장은 과거 3지대 후보와 다른 길을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움직임을 윤 전 총장도 잘 알고 있고, 명단도 전달됐다. 윤 전 총장이 입당하기로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윤 전 총장 측근 역시 비슷한 내용을 들려줬다. 그는 “고맙게도 국민의힘 많은 의원들이 지지 의사를 밝혀줬고, 입당하면 공식 지지 선언을 해 준다고 하더라. 구체적인 명단을 알고 있고, 그중 여러 명과는 자주 접촉을 하고 있다”면서 “윤 전 총장은 공정하게 경선만 보장되면 바로 입당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전했다. 앞서의 윤 전 총장 측 법조인은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끝나면 윤 전 총장이 신임 대표를 통해 입당 의사를 전할 것이다. 이는 신임 대표에게도 좋은 취임 선물이 될 것”이라고 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