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만 원 스터디카페서 면접…시험 환경 조성에 공부보다 시간 더 쓰기도
오후 6시까지 면접 일정이 남아있던 A 씨는 초조함과 당혹스러움에 여기저기 도움을 구했다. ‘광탈 위기’라며 상황을 친구들에게 알리자 다행히 한 친구가 본인의 집을 내어줬고, 그곳에서 A 씨는 무사히 면접을 끝낼 수 있었다. A 씨는 책상과 의자가 없는 좁은 자취방에 살아 집에서는 화상 면접을 진행할 수 없는 상태다. 그는 앞으로 있을 비대면 전형들은 또 어떻게, 어디서 봐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장소 없어” 울고, “교통비 줄어” 웃고
코로나19 대유행이 장기화되며 기업 채용에서 비대면 전형은 ‘필수’가 됐다. 첫 코로나 채용이 시작된 2020년 상반기부터 2021년까지 기업들은 비대면 채용 전형을 도입하거나 늘리고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2021년 비대면 채용 전형을 도입할 계획이 있다고 밝힌 기업은 53.6%로 2020년(49%)보다 증가했다. 이 가운데 취업 준비생들이 선호하는 대기업의 도입 계획은 82.7%로 가장 높았다.
취준생들은 감염 우려가 적은 비대면 채용 전형을 마냥 반길 수는 없는 입장이다. A 씨처럼 고향 집을 떠나 자취방이나 기숙사에서 거주하는 취준생들은 비대면 전형 자체보다 그에 필요한 장소·장비를 구하는 데 더욱 애를 쓴다. A 씨는 “화상 면접이 잡힌 날은 하루 3시간 이상 스터디카페를 예약한다. 보통 1만 원 이상, 많게는 3만 원 이상 쓰게 된다”고 말했다. 대학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는 “AI면접을 봐야 하는데 노트북이 오래돼 얼굴 인식이 안된다”며 노트북을 대여해줄 사람을 찾는 글도 올라왔다. 비대면 전형에 필요한 장비나 장소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구직자들을 위해 조명, 컴퓨터, 방음 부스 등을 대여해주는 전문 업체가 생기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사는 취준생들도 나름의 불편함이 있었다. 올해 취업 준비를 시작해 처음으로 온라인 필기 전형을 치른 B 씨는 “가족들이랑 살고 있는데 시험 당일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해도 어쩔 수 없는 생활 소음이 계속 났다”며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면 실격 처리가 되고, 시끄러우면 그 나름대로 또 실격일까봐 발만 동동 굴렀다”고 전했다. 온라인 채용 전형을 10차례 넘게 겪은 C 씨는 “시험과 면접 때마다 가족들에게 정숙 유지를 부탁하고 소음 차단에 대한 양해를 구해야 해서 불편했다”고 말했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는 비대면 전형의 장점이 상대적으로 컸다. 필기, 면접 전형을 위해 지출해야 했던 교통비가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공기업 취업 준비를 한 D 씨는 “시간 내면서 이동할 필요가 없다는 게 정말 좋다”며 대면 전형보다 비대면 전형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는 “필기시험을 보러 서울로 올라가면 왕복 5만~10만 원 정도가 든다”면서 “시험이 아침인 경우에는 당일이 아닌 전날에 올라가야 한다. 그러면 밥값, 숙소비도 더 들고 이동이 길어져 몸까지 피곤해진다”고 덧붙였다.
일부 지자체 일자리센터에서는 비대면 전형에 필요한 장비를 갖춘 장소를 취준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화상면접장, AI면접 체험장 등을 조성해 예약 신청을 받는 형식이다. 하지만 예약 가능한 공간이 아직 협소해 한정되어 있고, 시간도 제한적이다. 서울시의 경우 서울시 청년일자리센터, 강동일자리센터, 잠실 스트리밍센터 등 3곳에서 AI면접 체험장을 운영하는데, 모두 합쳐 5개의 방이다. 예약 가능 시간은 최대 2시간이다. 서울시 일자리포털은 화상면접용으로 해당 장소를 예약할 때 전화로 예약하라고 명시했지만 10차례 넘게 전화를 해도 계속 대기 중으로 상담원이 연결되지 않는 등 예약이 쉽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포괄적인 비용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취업준비생은 ‘민주주의서울’ 플랫폼에 ‘AI 면접비를 지원해 주세요(스터디카페 대여 시 이용요금 지원)’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현재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공간 지원 사업의 공간이 한정적이다. 또 시간이 금인 취준생들이 거리가 먼 센터를 방문하기는 힘들다”며 “차라리 다른 공간을 대여할 수 있도록 지원금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업 초반이어서 현재 두 곳(서울, 강동센터)의 일자리카페만 조성한 상태이고 잠실 스트리밍센터를 외부업체와의 협력해서 운영 중”이라며 “현재는 예약이 많지 않아서 그대로 진행 중이고, 수요가 많아지면 반응을 보고 공간을 확충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다 갖춰도 ‘대면’ 선호
한편 장소나 장비와는 별개로 ‘온택트’(온라인을 통해 대면하는 방식) 형식 자체가 갖는 한계도 있다. 인턴 활동을 하며 취업을 준비하는 E 씨는 “일부 비대면 전형은 응시 환경을 확인하는 사전 테스트 일정이 있다”며 “보통 평일 주중으로 잡혀 전업 취준생이 아닌 인턴은 지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이유로 한 대기업의 온라인 인·적성 전형을 포기해야 했다.
비대면 채용 과정이 환경 조성에 대한 부담을 모두 응시자에게 전가한다는 지적도 있다. B 씨는 “시험 전엔 60페이지의 매뉴얼을 숙지해야 했고, 4시간 30분 정도 진행된 시험 날에는 실제 시험은 2시간, 나머지는 전부 준비 시간이어서 매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C 씨 역시 “시험이나 면접 중 시스템 오류로 문제가 생기거나 가족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 등 환경 통제 문제가 전적으로 응시자 몫이라 부담스럽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화상·AI 면접에서 응시자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화면으로 마주보는 비대면 소통으로는 응시자의 손짓, 눈빛 등 비언어적 요소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E 씨는 “사람 눈을 마주보는 비언어적인 소통 부분이 전달이 되면 좋을 것 같은데, 화상 면접으로는 눈을 마주치는 느낌이 별로 안 든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C 씨도 “대면의 경우 면접관과 아이콘택트를 할 수 있지만 비대면은 카메라를 보면 면접관들의 반응을 볼 수 없어 불안해지고, 화면을 바라보면 시선이 밑으로 내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쓸데없는 걱정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김영원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