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년 클럽팀 감독 생활 “부친 병상서 재계약 불가 통보…좀 더 열심히 잘했으면 좋았을걸”
윤석민은 선수 시절 부침이 많은 편이었다. 2004년 2차 3라운드 전체 20번으로 두산 베어스 입단(2004~2013) 후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 2014~2017) kt 위즈(2017~2019) SK(2020) 등 KBO리그 4팀과 인연을 맺었다. 통산 성적은 941경기 805안타 103홈런 466타점 타율 0.285를 기록했다.
선수 생활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덕분에 여러 팀에서 필요로 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은퇴 후 독립야구단 코치로 활약하다 최근 유소년 클럽팀 감독으로 아이들과 또 다른 야구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는 윤석민을 만났다.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몰려오는 듯했다. 아버지가 폐암 투병 중 위험한 고비에 처했을 때 입원실에서 구단 관계자의 전화를 받았다. 행여 아버지가 들으실까 싶어 화장실로 자리를 옮겨 전화 통화했는데 구단에서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알겠습니다’였다. 그리고 며칠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프로에서 더 뛰겠다고, 더 야구 하겠다고 약속드렸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윤석민은 SK가 그런 결정을 내린 건 자신의 실력 부족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2군 생활이 길어지면서 스스로 현실을 인정한 부분도 있었다. 그에게 야구 인생의 그래프를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자 너무 늦게 꽃을 피웠고, 그 꽃도 피우다 금세 지고 말았다고 말한다.
“두산 입단했을 때 오랫동안 2군에 머물렀다. 워낙 쟁쟁한 선배들이 많아 대타, 대수비 등으로만 활용되다 사회복무요원을 마치고 복귀한 후 조금씩 1군에서 뛸 기회가 주어졌다. 2012년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안했다. 1군에서 조금이라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2군으로 내려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2013년 팔꿈치인대접합 수술을 받고 오랫동안 재활을 반복했다. 2013년 11월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부재중 전화가 스무 통이나 와 있더라. 순간 '내가 무슨 사고를 쳤나' 싶었다. 기자한테 전화 받고 알았다. 내가 트레이드 됐다는 사실을.”
윤석민은 당시 넥센 장민석과 트레이드돼 히어로즈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당시 염경엽 감독을 만났던 게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2014년 4월 1일 친정팀 두산과 처음으로 맞붙었는데 투수 홍상삼을 상대로 생애 첫 만루홈런을 터트렸다. 베이스를 도는데 천천히 뛰고 싶었다. 두산 관계자들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베이스를 돌았던 것 같다. 이후 두산전에 강했다. 두산 상대로 성적이 좋다 보니 한번은 김태형 감독님이 ‘내가 널 보낸 게 아닌데 왜 우리랑 할 때만 잘하느냐’라고 뭐라고 하신 적도 있었다.”
히어로즈 시절에는 오늘 안타를 못 쳐도 내일은 잘할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윤석민은 또 다시 트레이드된다. 2017년 7월 7일 kt 정대현, 서의태와 유니폼을 맞바꾸며 kt로 이적한 것이다. kt에서 윤석민은 모교인 구리 인창고 스승, 김진욱 감독과 재회한다.
“감독님과 두산에서 만났다가 kt에서 재회한 셈이다. 김진욱 감독님의 기대가 컸다. 나 또한 감독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결국 2019년 11월 또 다시 SK (허)도환이 형과 트레이드됐다.”
2020시즌 윤석민은 SK에서 염경엽 감독과 다시 만났지만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주로 2군에 머물다 시즌을 마무리 지었고, 구단의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윤석민은 동명이인인 투수 윤석민과 인연이 깊다. 투수 윤석민이 1년 후배인데 그와 구리 리틀야구팀에서 함께 뛴 이력이 있다. 리틀야구에선 타자 윤석민이 투수였고, 투수 윤석민이 포수였다고 한다. 프로에서는 같은 이름으로 다양한 해프닝도 일어났다.
“상무 입대를 앞두고 KBO에 지원서를 보냈는데 KBO 관계자가 상무에 실수로 KIA 윤석민 자료를 보내는 바람에 상무 입대 대신 공익근무요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또 한 번은 KIA 윤석민이 롯데 조성환 선배의 머리에 공을 맞힌 적이 있었다. 당시 수많은 롯데 팬들이 내게 전화해서 항의를 했다. 또 미니홈피로 몰려와 숱한 비난을 쏟아냈다. KIA 윤석민이 아니라 두산 윤석민이라고 밝히자 점차 수그러들더라.”
인터뷰 말미에 선수 생활을 돌아봤을 때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윤석민은 “좀 더 열심히 잘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고 답한다. 선수 생활의 꽃은 만개하지 못했지만 지도자로 새로운 꽃을 피우고 싶어 하는 윤석민. 그의 제2의 인생을 응원한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