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츠 점주 사망과 물류센터 화재 대처 두고 불만 폭증…김범석 창업주 사임 시점 두고 ‘책임 회피’ 지적
#쿠팡에 대한 불판·불매 운동 확산
최근 약 76만 명이 회원으로 있는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선 배달앱 쿠팡이츠로부터 주문을 받지 않겠다는 ‘불판’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5월 서울 동작구의 한 김밥가게 50대 점주가 새우튀김 1개를 환불해달라는 고객에게 시달리다 뇌출혈로 쓰러진 뒤 결국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해당 점주는 쿠팡이츠 고객센터와 세 차례 통화해 해당 고객에게 명확한 환불정책을 고지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쿠팡이츠 측은 “점주분이 알아서 잘 해결하라”, “앞으로 주의하라”는 등 책임전가성 응대를 반복했다. 결국 지난 6월 22일 장기환 쿠팡이츠 대표가 이 논란에 대해 공식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자영업자들의 ‘불판’ 운동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장기환 대표가 사과문을 발표한 같은 날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와 전국가맹점주협의회는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이츠 등 배달앱의 무책임한 리뷰 및 별점 제도 운영이 블랙컨슈머를 양산하고 있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현장에선 점주들의 피해 사례 고발이 줄을 이었다.
허석준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공동의장은 “제대로 된 환불 규정 없이 모든 책임을 자영업자에게 떠넘기는 쿠팡 때문에 돌아가신 점주 분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며 “갑질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리뷰와 별점, 쿠팡이츠 시스템에 원인이 있다”고 꼬집었다.
고객들의 쿠팡에 대한 불매 운동도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6월 20일 기준 쿠팡 앱의 사용자 수(안드로이드·iOS 사용자 합산)는 총 817만 8963명이다. 지난 7일(1021만 1193명)과 비교하면 13일 만에 사용자 200만 명이 줄어들었다. 이 중 47만 명이 물류센터 화재가 발생한 이후 4일 만에 빠졌다. 특히 사회적 책임과 공정성 이슈에 민감한 MZ세대(1980년생~2004년생) 고객들이 대거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쿠팡탈퇴’ 해시태그(#)를 단 글이 17만여 건이 올라오며 국내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경찰은 화재 발화 지점과 신고 묵살, 스프링클러 오작동 등 3대 의문점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특히 스프링클러를 임의로 조작해 8분간 미작동했다는 흔적이 나온다면 관련자를 처벌할 방침이다.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용판 국민의힘 의원실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소방시설 등 종합정밀점검 실시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쿠팡 덕평물류센터가 2월 점검에서 지적받은 사항은 총 277건에 달한다. 소화설비(소화기기, 스프링클러), 경보설비(화재탐지, 비상방송설비), 피난설비(유도등, 완강기), 기타 설비(방화셔터, 방화문) 등에서 문제가 지적됐다. 특히 이번 화재 진압의 골든타임을 놓친 배경으로 꼽히는 스프링클러에 대한 지적사항이 60건으로 가장 많았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쿠팡은 소방점검에서 받은 지적사항을 사진으로 시정조치했다고 보고했지만, 이후 소방관리를 잘 안 해서 이번 화재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며 “스프링클러 지적사항이 많았고, 이번 화재에서 8분이나 미작동하면서 초기 소화에 실패해 큰 화재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연이은 택배 노동자 사망 사건과 코로나19 집단 감염 등으로 인해 악화된 쿠팡에 대한 인식이 물류센터 화재로 폭발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6월 24일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는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화재에 시민들이 ‘쿠팡 탈퇴’로 답한 이유는 로켓·새벽배송의 편리함이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한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회견에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쿠팡 측의 대피 지연 의혹을 제기한 물류센터 노동자 A 씨가 참석해 “(청원) 글을 올린 이유는 쿠팡물류센터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안전 불감증의 심각함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5월 21일 국민청원 게시판에 “화재 당시 오전 5시 10분쯤부터 화재 경보가 울렸지만, 평소 잦은 오작동 때문에 계속 일하다가 5시 26분께 1층 입구로 향하는 길에 연기를 보고 보안 요원에 불이 났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묵살당했다”고 내용의 청원을 올렸다.
이와 관련, 쿠팡은 “화재 발생 5분 만에 대피 완료했고, 화재 진압 초기부터 대표이사가 현장에서 직접 비상대응팀을 구성한 뒤 화재 대응에 나섰다”며 “쿠팡의 보안 담당 업체인 조은시스템이 모든 근무자를 인터뷰한 결과, 신고를 묵살했다는 A 씨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A 씨에 대한 민·형사 조치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돈은 한국에서 벌고, 책임은 누가?
쿠팡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지만 사실상 쿠팡을 지배하고 있는 김범석 전 의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김범석 전 의장은 한국 쿠팡 지분 100%를 보유한 미국 상장법인 쿠팡Inc의 지분 약 10%, 의결권 76.7%를 갖고 있다. 현재 쿠팡Inc의 대표이사 겸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창업 당시는 물론 상장 이후에도 사내 의사결정의 최정점에 있는 셈이다.
쿠팡은 물류센터 화재 발생 5시간 뒤 김범석 창업주가 국내 쿠팡 이사회 의장과 등기이사에서 사임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쿠팡은 물류센터 화재와 의장 사임은 연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화재 17일 전에 이미 사임했고 사임등기가 완료돼 이를 발표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발표 시점의 적절성을 두고는 뒷말이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김범석 창업주는 미국인이다 보니까 법률을 위반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 왜 사과해야 하는지 의문을 갖는 것 같다”며 “경영권을 지배한 창업주로서 모든 이익을 수취하고 있지만, 회사에서 발생한 산재나 사고에 대해서 도의적인 책임도 지지 않는 모습을 달갑게 볼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상장 이후 해외 언론 인터뷰와 대담 등에 나선 김범석 전 의장은 국내에서 대외적으로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실제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쿠팡 물류센터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모두 9명에 달하지만 이와 관련된 김범석 전 의장의 메시지는 없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는 엄성환 CFS 전무가 김범석 전 의장 대신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시 택배 3사(CJ대한통운·한진·롯데GRS)는 청와대 중재로 대표부터 임원들까지 사과문과 함께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자회사 설립을 통해 책임을 덜어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4월 14일 쿠팡은 100% 자회사 ‘쿠팡이츠서비스’를 출범시켰다. 핵심 업무는 여전히 쿠팡에서 총괄하지만, 플랫폼 배달기사 관련 이슈들에 대한 책임은 자회사에서 지는 구조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김범석 전 의장의 사임 배경으로 꼽는 목소리도 있다. 내년 1월부터 산재 또는 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하면 해당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김범석 전 의장이 국내 쿠팡의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국내에서 책임을 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미국인이나 미국 법인을 조사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공정위가 애플을 조사할 때도 미국 본사를 조사하지 못했고, 애플의 자진 협력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한편 강한승 쿠팡 대표이사는 지난 6월 20일 입장문을 통해 “덕평물류센터 화재 진압 과정에서 고귀한 생명을 잃으신 고 김동식 소방령님의 숭고한 헌신에 모든 쿠팡 구성원의 마음을 담아 다시 한번 깊은 애도를 표하며, 유가족분들께도 진심 어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유가족분들이 평생 걱정 없이 생활하실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