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철 ‘파쇄’ 문건 말고도 여러 버전 유통중…“진위 관계없이 존재 자체로 파괴적”
‘윤석열 X파일’ 논쟁을 본격적으로 촉발시킨 장성철 소장은 결국 “문서를 파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둘러싼 X파일 논란이 일단락되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권과 국민들의 뇌리 속에는 ‘X파일’이라는 존재가 각인됐다. 진위를 확인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존재가 윤석열 전 총장의 향후 정치 행보에 안개를 드리울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파쇄했다지만…장성철 소장 X파일에 남는 의문점
‘윤석열 X파일’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신지호 전 한나라당 의원 및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윤석열 파일’에 대해 언급하면서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하더니 보수 야권의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장성철 소장이 6월 19일 SNS를 통해 ‘X파일’을 입수해 살펴본 결과 “이런 의혹을 받는 윤 전 총장이 국민의 선택을 받기는 힘들겠다” “방어가 어렵겠다”고 말하며 논쟁을 촉발시켰다.
결국 장성철 소장은 나흘 후인 23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문서를 계속 갖고 있는 자체가 여러 오해를 낳을 수 있고 부적절하다”며 “방송이 끝난 다음 집에 가면 바로 파쇄하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윤석열 X파일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장 소장이 봤다는 4월 말과 6월 초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각각 A4 10장 분량의 문건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이어지고 있다. 당초 장 소장은 다수의 언론 인터뷰에서 6월 초 작성된 문서에는 윤석열 전 총장, 부인 김건희 씨, 장모 최 아무개 씨에 대한 의혹이 세 개 챕터로 정리돼있고, 특히 자금 흐름과 액수 같은 정보도 포함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사정기관이 개입해 만든 파일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나왔다.
이에 대해 윤석열 전 총장은 “공기관과 집권당에서 개입해 작성한 것처럼 말하던데, 그건 명백한 불법사찰”이라며 ‘정치공작’ ‘허위사실 유포’라고 비판했다.
이후 장 소장은 불법사찰 수준의 내용은 아니었다고 말을 바꿨다. 앞서 언급한 23일 인터뷰에서 장 소장은 “6월 문건도 수사기관이나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정부기관 내부 정보가 아닌 한 작성되기 힘든 문건 정도는 아니다”라며 “예전에 봤거나 지금도 보는 것들을 총정리한 것에 구체적 사실관계들이 몇 개 들어가 있다. 언론에 보면 대략적인 제목이나 간략한 사안만 나올 텐데 그걸 좀 더 연구해서 찾아보고 해서 만든 자세한 문건”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윤석열 전 총장이 향후 이율배반적이라는 태도 논란이 제기될 수 있음을 고려해 의미를 축소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윤석열 전 총장은 이번 X파일을 두고 불법사찰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도 검찰총장 재직 시절 대검이 판사 사찰 문건을 작성했다는 혐의 등으로 추미애 장관으로부터 직무집행정지 명령 및 징계 청구를 받은 바 있다”며 “만약 X파일이 공개됐는데 그 내용이 판사 사찰 문건과 수위가 비슷하면 윤 전 총장이 스스로 불법사찰을 자인한 꼴이 될 수도 있다. 이에 장 소장이 이 정도 수위는 불법사찰은 아니라고 먼저 선을 그어준 것 아니겠느냐”고 귀띔했다. 실제 장 소장은 앞서 인터뷰에서 판사 사찰 문건을 언급했다.
야권 대권 라이벌인 홍준표 의원 역시 6월 23일 자신의 SNS에 “검찰총장은 대검 범죄정보과를 통해 늘 범죄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사찰을 하는 게 직무”라며 “사찰을 늘 했던 분이 불법사찰 운운으로 검증을 피하려고 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X파일 공개 안 돼도 영향은 파괴적
장성철 소장의 총 20장 분량 문건 외에도 정치권에 여러 버전의 X파일이 유통되고 있다. 우선 간략한 제목 정리 수준의 A4용지 2장 분량과, 이에 세부내용을 붙여 정리한 20장 분량의 두 가지 버전이 공유됐다.
여기에는 2019년 7월 윤 전 총장에 대한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당시 쟁점 의혹들이 상당수 들어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윤 전 총장의 부인과 장모 관련 의혹도 이 문서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역시 대다수가 언론을 통해 다뤄진 내용이라고 한다.
이어 ‘윤석열 X파일(목차)’이라는 제목의 PDF 파일도 인터넷과 SNS 사이에서 회자됐다. 6장짜리 문건은 ‘윤석열 성장과정’ ‘부인 김건희’ ‘장모’ ‘검사 윤석열’ ‘윤로남불’ ‘책사’ 등 목차로 구성됐다. 이 문서는 친문 성향 ‘열린공감TV’ 유튜브 채널의 방송용 취재노트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외에도 30장짜리 문건, 82장 분량의 문건, ‘지라시’ 형태의 모바일 메신저 메시지 등 다양한 종류의 X파일이 돌고 있다. 특히 한 메시지에는 윤 전 총장의 부인 김 씨에 대해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개인 신상 내용과 과거 행적을 적은 것도 있었다. 대부분이 진위를 확인하기 힘든 ‘소문 수준’의 사생활이었다.
이처럼 여러 종류의 X파일이 혼재돼 유통되다 보니 정치권에서도 ‘X파일을 보니 별것이 없다’는 주장과 ‘버티기 힘들겠다’는 의견이 어지럽게 뒤섞이고 있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X파일이라고 해 여러 버전의 문건을 입수해 읽어봤는데, 새로운 내용은 없었다”며 “장 소장이 가지고 있었던 X파일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X파일을 언급하면서 윤 전 총장을 향한 국민적 의심의 눈초리만 높아졌다”고 우려했다.
실제 내용의 진위와 상관없이 ‘X파일’이라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정치적 파괴력이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X파일은 대선 정국이 본격화돼도 실체가 공개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은 “문건을 입수해 검증 결과 내용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법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에 X파일을 그대로 공식석상에 들고 나와 흔들 수는 없다”며 “국회나 토론회 등에서 부분적인 의혹 제기 수준으로만 언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공개되지 않는 것이 여권에 더 효과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대선 내내 윤석열 전 총장은 X파일이라는 꼬리표가 끊임없이 따라다닐 것이다. 그럼 X파일 문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국민들의 뇌리에는 ‘X파일’이라는 관념이 박혀있게 된다”며 “진위와 관계없이 윤 전 총장에 문제가 있다는 의심의 씨앗이 심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전 총장이 여권에 대항해 대선 출마하며 내세우는 공정의 가치는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특히 과거 인사청문회나 X파일 등에서 제기된 몇 가지 의혹이 검증을 통해 사실로 드러나면 윤석열 전 총장의 대선 가도는 급격히 흔들릴 수 있다.
일례로 한 X파일에 윤 전 총장의 장모 최 씨가 2013~2015년 경기 파주시 내 요양병원을 동업자 3명과 함께 설립·운영하면서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22억 9000만 원을 부정하게 수급한 의혹이 나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 혐의는 7월 2일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최 씨가 유죄를 선고 받는다면 X파일에 등장하는 다른 윤석열 전 총장과 가족들을 둘러싼 의혹도 사실일 수 있다는 무게감이 실리게 된다.
윤 전 총장의 측근인 윤대진 전 검사장의 친형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의 뇌물수수 무마 의혹도 대표적이다. 앞서 윤 전 총장이 윤 전 세무서장과 골프를 친 사실이 인사청문 정국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윤 전 총장은 ‘윤 전 세무서장과 골프를 쳤느냐’는 질문에 “한두 번 친 적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윤 전 서장에게 변호사를 소개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석열 전 총장은 대선 출마 선언도 하기 전에 ‘X파일 프레임’에 발이 묶인 것 같다”며 “모호한 안개와 같은 X파일 논쟁을 걷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윤석열 전 총장은 6월 29일 차기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할 계획이다. 지난 3월 4일 검찰총장직을 내려놓은 지 118일 만이다. 윤석열 전 총장은 6월 24일 메시지를 통해 “저 윤석열은 6월 29일 서울 양재동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국민 여러분께 제가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해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윤 전 총장은 앞으로 걸어갈 향후 정치 방향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X파일 논란으로 국민들은 윤 전 총장과 그의 가족이 걸어온 길에 더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