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신분증 촬영 후 협박 ‘성노예’ 문신, 그룹 플레이 강요 돈벌이…피해자 여럿 증거 부족·합의로 끝나
지난 6월 초 C 변호사에게 연락이 왔다. C 변호사는 “너무 심각한 사건을 수임하게 됐다. 기사화를 통해 공론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게 6월 19일 갓 스무 살을 넘긴 여성 피해자 A 씨를 변호사 동석 하에 서울 정동길 한 카페에서 만났다. A 씨는 나이나 당한 사건을 고려해봤을 때 상당히 논리적으로 얘기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건 ‘심각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기자 입에서도 "악마"라는 표현이 절로 나왔다.
피해자 A 씨는 BDSM 커뮤니티에서 2020년 5월 남성 B 씨를 만났다. A 씨는 B 씨를 만나기 전 이 커뮤니티에서 2번 정도 더 남자를 만난 바 있었고 2번 다 짧게 만나다 헤어졌다. 그런데 B 씨는 달랐다. B 씨는 얼굴도 곱상하고 명문대를 다니며 슈퍼카를 몰면서 재력을 과시했다. 곧 A 씨는 B 씨에게 빠지게 됐다. A 씨는 마조히스트(피학성애자)고 B 씨는 사디스트(가학성애자)였다.
사귀고 한두 달까지 둘 사이는 원만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B 씨가 관계 전 A 씨 눈을 가리더니 갑자기 여러 명을 등장시키면서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A 씨는 저항하기도 어려웠다. 이런 행동은 A 씨의 명백한 거부에도 몇 차례 반복됐다.
심지어 세이프워드(피가학자가 진정으로 중단하고 싶을 때 외치는 단어)를 외쳐도 B 씨는 무시하고 중단하지 않았다. BDSM은 약속된 플레이지만 때리거나 목을 조르는 등 위험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세이프워드를 외쳤을 때에는 무조건 중단해야 한다는 절대적 규칙이 있다.
A 씨는 관계가 끝난 뒤 구두로 거부 의사를 명확히 표현했다. 하지만 8월 말 관계 도중 B 씨가 A 씨 몸 위에 사원증과 신분증을 올려두고 강제 촬영을 했다. 그때 A 씨는 “다 끝났다. 내 인생은 저놈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고 체념했다고 한다. A 씨는 유포를 걱정했고 B 씨는 은근히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했다.
B 씨의 플레이는 점점 더 수위가 높아져 갔다. 이상성욕자들의 모임 사이트에서 사람들을 모집해 서울 한 호텔에서 집단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A 씨는 거부하지 못한 채 끌려가던 관성대로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B 씨는 이제 일상생활에서도 이상한 주문을 내렸다. B 씨는 A 씨에게 “45kg까지 감량 못하면 타투나 피어싱을 해야 해”라고 말했고, 달성될 수 없는 목표에 결국 실패한 A 씨는 타투를 해야 했다. A 씨는 타투만큼은 끝까지 거부하려 했지만 B 씨가 “영상을 뿌리겠다”는 뉘앙스로 말해 어쩔 수 없이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A 씨는 “내 인생은 어차피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2020년 9월 B 씨는 경기도 소재 한 도시에 위치한 빌딩으로 A 씨를 불러냈다. 그 빌딩 앞에서 B 씨는 A 씨에게 안대를 씌웠다. 타투 시술소가 어딘지 알 수 없게 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A 씨는 그렇게 눈을 가리고 타투를 받았다. 타투는 대문짝만 하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영어로 적혔다. 해석하자면 ‘성노예, 주인 B 씨’라는 뜻이었다. A 씨는 나중에 이 문신을 확인하고 좌절했다. 결국, 12월이 돼서 A 씨는 잠적을 하고 B 씨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일종의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B 씨는 집요하게 협박조로 A 씨에게 연락했고 결국 그들은 다시 만났다. A 씨는 호텔에서 이뤄지는 집단 성관계 만남에도 나가야 했다. 주말은 통째로 그 모임에 나가는데 써야 했다. 그러다 지난 5월 몸이 매우 좋지 않던 A 씨가 울면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속칭 ‘초대남’들이 있는 자리에서 거부하는 A 씨를 B 씨가 말 그대로 흠씬 두들겨 팼다. 그 자리에서 한 초대남이 ‘이건 아닌 거 같다’면서 A 씨에게 도움을 주겠다며 번호를 건넸다.
연락이 된 초대남은 ‘그 모임은 돈을 주고 나가는 곳’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혔다. A 씨는 좋아하는 B 씨의 성향 때문에 열리는 모임으로 알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B 씨는 과거 여자들을 모임에 내보내면서 남자들에게 받은 돈으로 부를 축적해온 것이다. 그나마 양심적이었던 초대남은 A 씨 사연을 듣더니 ‘소송 등 도움을 주겠다’고 말했다. 양심 있는 초대남의 조언 덕분에 A 씨는 그제야 ‘빠져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B 씨는 철저했다. 읽으면 30초 만에 사라지는 텔레그램 메시지를 사용했다. A 씨는 녹음기를 휴대하고 다른 휴대전화로 텔레그램 메시지를 영상 촬영하면서 증거를 수집했다. 결국 A 씨는 5월 말 최소한의 증거를 모았고 고소를 진행했다. 알고 보니 피해자도 여럿 있었다. A 씨는 “나와 같은 혐오스러운 문신을 한 사람이 최소 3명이다. 그 가운데 고소까지 이어진 적도 있었지만, 증거 부족으로 B 씨가 빠져나간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6월 고소 사실을 안 B 씨는 기세등등했다. B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A 씨 증거는 거짓이다. 오히려 A 씨 말을 뒤집을 만한 확실한 증거가 내게 있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당시까지는 A 씨가 확보한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A 씨는 C 변호사 도움으로 증거를 정리해 추가 고소장을 접수했다. 고소장을 본 B 씨는 A 씨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최근 ‘n번방 방지법’ 등으로 B 씨가 한 범죄혐의 등은 ‘상해’, ‘강간’, ‘성폭력법 위반’,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 ‘성매매특별법 위반’ 등 최소 10년 이상 징역형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법조계 의견이었다. B 씨 아버지도 A 씨 앞에서 무릎 꿇고 빌기 시작했다. B 씨 아버지는 한 기업체 임원이다.
이들은 합의를 요청했다. 문제는 A 씨 집안이 무척 가난하다는 것이었다. B 씨 측은 ‘감방 보내는 것보다 돈이라도 받는 게 낫지 않냐’고 했다. 결국 A 씨는 ‘동생만큼은 대학에 보내고 싶다’는 말과 함께 합의금에 사인했다. 고소는 취하되고 결국 B 씨는 다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됐다. C 변호사는 “A 씨 집안 문제로 인해 최소한의 피해 보상이 우선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