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체계·자구 심사권 쥐고 ‘상원 역할’…국회법 개정으로 힘 뺄 수 있을지 주목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가 공석이 된 지 두 달이 지났다.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4월 16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원내대표로 선출되면서 법사위원장직 사의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후임 법사위원장 임명을 두고 여야가 충돌했다. 국민의힘은 법사위원장직을 되찾아오려 하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6월 1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법사위원장을 ‘장물’에 빗대며 “야당 몫인 국회 법사위원장을 강탈하고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있는 위법 상태를 즉시 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법사위원장을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6월 1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법사위원장직에 대해 “국민의힘이 1년간 생떼를 쓰며 장물 운운한 법사위만큼은 흥정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못을 박았다. 대신 “국회의 비정상적 상황을 바로 잡겠다”며 “김태년 전 원내대표가 합의한 정무위·국토교통위·교육위·문화체육관광위·환경노동위·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예산결산특별위 등 7개 상임위원장직을 야당에 돌려주겠다”고 밝혔다.
여야가 법사위원장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법사위가 여타 다른 상임위와 동등한 위치에 놓인 것이 아니고, 사실상 ‘상원’ 역할을 하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는 체계·자구 심사 권한에서 나온다. 법사위는 국회법 제86조에 따라 각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률안을 본회의에 넘기기 직전 △개정·제정 법안의 위헌 여부 △타 법률과의 충돌 △용어의 적절성 등 체계·자구 심사를 한다.
이 제도는 제2대 국회 때인 1951년 국회법 개정으로 처음 규정으로 도입됐다. 이후 1973년 유신정권에서 이뤄진 국회법 개정을 통해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기능은 극대화돼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상원 의장’격인 법사위원장은 각종 상임위 법안들을 본회의에 올려 보내는 관문의 수장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법사위원장은 상대 정당의 쟁점 법안을 이미 소관 상임위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통과시켰음에도 심사를 핑계로 의도적으로 장기 계류시키는 ‘버티기 전략’을 구사, 체계·자구심사권을 악용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렇듯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여야 중 누가 법사위원장을 맡아야 하는지 법적으로 정해진 기준은 없어, 매 국회 원 구성 협상 때마다 갈등이 벌어진다. 국회법 제48조는 ‘상임위원장은 상임위원 중 본회의에서 선거한다’고 규정한다.
국민의힘은 법사위원장을 야당이 맡는 게 관례라고 주장한다. 그래야 정부와 여당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170석이 넘는 압도적 의석을 확보한 만큼 법사위원장은 자신들의 몫이라는 입장이다. 또 관례는 지난 20대 국회에서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을 가져가면서 깨졌다고 강조한다.
앞서 과거 박정희 군사정권부터 김영삼 정부까지는 집권여당 의원들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왔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15대 국회 후반기를 기점으로 변화를 보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처음 야당이 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야당 법사위원장’을 주장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은 민주적 정권교체에 따른 상생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에 한나라당은 여당에서 야당으로 바뀌었음에도 법사위원장을 계속 사수할 수 있었다.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까지 16대·17대 국회에서는 한나라당 의원 7명이 법사위원장을 지냈다. 정권이 교체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진 18대와 19대 국회에서는 야당이 된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가져갔다.
이러한 관례는 앞서 언급했듯 20대 국회 전반기에 깨졌다. 여당인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이 법사위원장에 임명됐다. 하지만 당시는 여소야대 국회로 민주당이 원내 1당이 되면서 국회의장-법사위원장 분리 의견에 따라, 민주당이 국회의장을 맡고 법사위원장은 새누리당에 넘긴 경우다.
관례상 원내 1당이 국회의장을 맡기 때문에 법사위원장은 제2당의 몫이라는 해석도 있다. 실제 16대 국회 이후 대다수의 경우 제2당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왔다. 하지만 이는 17대부터 19대 총선까지 여대야소의 구조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현재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김대중 정부 당시인 16대 국회 후반기에 한나라당이 제1당으로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모두 가져간 바 있다.
법사위는 수차례 이름이 바뀐 여타 상임위와 달리 1948년 제헌국회부터 ‘법사위’로 출범, 가장 오래 명칭을 유지하고 있는 상임위다. 법사위는 핵심 권력기관인 검찰과 감사원을 소관기관으로 담당한다. 법무부와 법제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헌법재판소, 법원, 군사법원도 관할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법사위원장은 주로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맡아왔다. 하지만 윤호중 원내대표는 비법조인 출신으로, 4선 의원을 하면서 법사위에서 활동한 경험도 없었다. 윤 원내대표에 앞서 역대 법사위원장 40명 중 비법조인 출신은 제헌국회 백관수 이인모, 2대 김정관, 6대 백남억, 8대 고재필, 19대 박영선 의원 등 6명에 불과하다.
앞서 민주당은 후임 법사위원장으로 박광온 의원을 내정한 바 있다. 박광온 의원이 임명되면 8번째 비법조인 출신 법사위원장이 된다.
법사위원장 임명을 두고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정치권에서는 여당의 단독 선출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민주당은 절대 과반 의석을 확보해 본회의에서 단독 선출도 가능하다.
한편 민주당은 지난해 21대 국회 원 구성 협상 때부터 법사위가 ‘옥상옥’으로 자리매김한 폐단을 뿌리 뽑겠다며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 권한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 방안을 꺼내들었다. 윤호중 원내대표도 앞서 언급한 18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법사위가 타 상임위에 군림해왔던 상왕 기능 폐지를 즉각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거에도 여야 공수가 바뀔 때마다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권한 폐지 시도가 여러 번 있었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야당으로 법사위원장직을 맡은 17대 국회에서는 열린민주당(현 민주당) 의원들이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권이 바뀌며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은 18대 국회에서는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결국 입법까지 이뤄지지 않아, 이번에도 법 개정이 될지 의심의 눈초리가 강하다.
다만 이번에는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여당이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민주당 한 의원은 “체계·자구 심사권을 법사위가 아닌 국회의장실이나 국회 사무처, 입법조사처에 넘기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정확하게 정해진 바는 없다”며 “법사위가 법안 발목잡기를 하며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막자는 방향성은 확고하다”고 설명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