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 숨 참기와 40m 잠영…천당·지옥 오가지만 생각 덜어내는 행복 느껴
해녀들처럼 숨을 참고 물속으로 들어가긴 하지만 프리다이빙을 할 때 숨을 참는 요령과 물속에서 유영하는 방식은 또 다르다. 산소통과 부력장치를 매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스쿠버다이빙과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스쿠버다이빙은 산소통으로 호흡하기 때문에 10~20분간 10~40m 수심에 머물 수 있다. 반면 프리다이빙은 아무런 장비 없이 코까지 덮는 물안경과 흔히 오리발이라 불리는 핀 하나만 신고 들어간다. 일체의 장비 없이 자신의 신체적 능력만큼만 물속여행을 할 수 있다.
#3일 과정으로 자격증까지
프리다이빙을 배우기 위해 제주 서귀포 보목동의 제주프리다이빙스쿨을 찾았다. 제주 중문이 서핑의 메카라면 이곳은 프리다이빙의 메카다. 프리다이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스노클링과는 달리 호흡법과 입수법, 몸의 움직임 등을 배워야 한다. 배우는 과정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3일 과정을 마치면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딸 수 있고, 아무런 장비 없이도 맨몸으로 물고기처럼 바닷속을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아직 적도의 바다까지 가기는 어렵지만 올여름 휴가를 국내에서 프리다이빙으로 색다르게 즐겨볼 수 있다.
프리다이빙 자격증을 딸 수 있는 프리다이빙 3일 과정에 등록했다. 프리다이빙 3일 과정은 이론수업 3시간, 수영장수업 3시간, 해양훈련 3회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과정에서 프리다이빙을 하기 위한 여러 요령을 배운다. 호흡법을 통해 숨을 자연스럽게 오래 참는 법을 익히고, 물속 압력으로부터 귀를 보호하는 방법을 배우며, 물속 이동법도 훈련한다.
강현석 제주프리다이빙스쿨 강사는 “처음엔 스노클링처럼 재미난 물놀이 정도로 생각하고 오시는 분이 많아요. 근데 저는 '3일간 극기훈련이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말하죠” 하며 웃는다.
물속 숨 참기나 수압을 느낄 때 귀의 압력을 풀어주는 ‘이퀄라이징’ 등이 쉽지만은 않아서다. 평소 익숙지 않은, 어쩌면 난생 처음 해보는 호흡과 동작들이다. 움직임 없이 잠수만 하는 게 아니라 계속 물밑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숨을 참은 채 몸을 움직이고 수압에 적응하는 데 훈련이 필요하다.
지상에서 3시간 동안 호흡과 수압, 유영법 등에 대한 이론수업을 마쳤지만 아직은 머리로만 이해했을 뿐이다. 바다로 나가기 전 수영장에서 훈련과 함께 간단한 테스트도 한다. 먼저 숨 참기 2분과 잠영 40m 훈련이다.
#머리 비우고 호흡에 집중
평소호흡과 비슷하게 준비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은 뒤 최종호흡으로 배 아래부터 가슴 깊숙이 숨을 가득 채우며 최대한 들이마시고 물안경을 쓴 채 물속에서 2분간 숨을 참아본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하나하나 온몸을 인식한 뒤엔 차례로 힘을 뺀다. 명상이나 의료에서도 쓰이는 '바디스캔(Body Scan)'이다.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몸에 힘이 들어가면 숨을 오래 참을 수 없다. 온몸에 힘을 빼면서 근육으로 낭비되는 산소를 차단한다. 그래야 숨을 편안하게 오래 참을 수 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2분 동안 물에 떠서 숨을 참아본 일이 없다. 새로운 경험이다. 낯선 감정을 느낀다. 사실 1분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참는다. 그런데 1분에서 2분으로 가는 길목에서 사람마다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전혀 예상 밖으로 너무나 짧은 순간에 죽음과 비슷한 공포가 훅 들어온다. 죽지 않을 것을 알지만, 언제든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면 그만이지만 테스트 통과를 위해 2분을 참아본다. 태초에 사람이 있기 전 물속에 살았던 어떤 생물처럼, 혹은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간 태아인 나를 상상해본다. 말로 하기 힘든 묘한 감정이 인다. 마음이 잔잔해지고 평온해지면서도 숨을 참고 있다는 점 때문에 갑작스러운 두려움이 덮친다. 이토록 짧지만 강한, 안전한 임사체험이라니….
수업에 함께한 40대 남성 김재현 씨는 1분 20초 정도에서 자꾸 얼굴을 밖으로 빼는 바람에 결국 잠수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그는 “잠수하는 동안 머릿속에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에서부터 이번 주 처리해야 할 일들과 평소 걱정했던 일들까지 마구 떠올라서 더 이상 숨을 참을 수가 없더군요. 프리다이빙은 배우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 버리는 과정 같아요”라고 체험담을 이야기했다. 한편 무난하게 2분 30초를 잠수한 20대 여성 오혜지 씨는 “물속에서 god의 ‘길’이란 노래를 떠올렸어요. 이 노래를 속으로 부르니 힘도 생기고 시간이 금방 가더라구요”라며 요령을 전한다. 강사는 “힘들겠지만 머리를 비우고 두려움을 수용해 보라”고 조언한다.
이후 40m 잠영이 이어졌다. 코까지 덮는 프리다이빙용 마스크와 핀을 차고 숨을 참은 채 잠영으로 40m를 이동한다. 숨만 참는 게 아니라 발로 핀을 차야 하니 움직임이 생긴다. 움직임이 생기니 숨은 더 빨리 차오르고 그냥 잠수보다 참기가 훨씬 더 힘들다. 하지만 실제 바닷속에선 핀을 차며 움직여야 하니 실전에 더 가깝다.
40m 도착지에 손을 터치하기 전 물 밖으로 나온다면 테스트는 실패다. 수영장 테스트를 거쳐야 제대로 해양으로 나갈 수 있는 만큼 오기를 품고 도전해본다. 하지만 실패, 쉽지 않다. 숨이 차오를 때 머릿속은 온통 ‘나갈까 말까’로 뒤덮인다. ‘이게 뭐라고’, ‘근데 이게 또 뭐라고 못 참아, 죽지도 않는데’ 같은 생각들이 번갈아 일어난다.
프리다이빙을 잘하기 위해선 숨을 얼마나 오래 안정적으로 참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숨을 오래 참고 최대한 물밑으로 깊이 들어가기 위해선, 혹은 물속에서 오래 머물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물속에서 움직이되 최대한 에너지를 덜 써야 한다. 운동에너지는 물론 정신에너지도 아껴야 한다. 운동에너지를 아끼려면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한다. 과한 액션은 금물이다. 핀도 최대한 살살 차고 손도 함부로 휘저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또 정신에너지를 아끼려면 최대한 생각을 비워야 한다. 생각이 많아 뇌를 자꾸 쓰게 되면 산소 소모량이 많아지고 이산화탄소가 쌓인다. 몸 안에 이산화탄소가 쌓이면 호흡 충동이 일어나 호흡을 하고 싶은 욕구가 거세져 숨을 오래 참을 수가 없다. 물속을 제대로 즐길 수 없어진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명상과 닮았다. ‘머리를 비우고 호흡에 집중’은 명상할 때 늘 들어왔던 말이다.
몇 번의 도전 끝에 결국 모든 수강생이 40m 잠영 테스트에 통과했다. 숨이 목까지 차오르고 숨을 쉬고 싶어 미치겠을 때는 ‘죽지 않아’가 큰 원동력이 됐다. 횡경막이 꿀렁거리며 호흡 충동이 일어날 때 ‘나를 믿어’ 같은 스스로에 대한 응원도 한몫했다. 수강생 모두가 비슷한 심정이었다고 했다. 40m 잠영을 마치고 빠르게 숨을 들이마시는 회복 호흡을 할 때는 극히 원초적인 행복감과 안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프리다이빙 훈련으로 한계까지 숨을 참아보면서 굉장히 짧은 시간에 평소엔 전혀 할 수 없었고 들지도 않았던 감정이 솟구쳤다. 갑자기 아무것 없이도 멀쩡히 숨쉴 수 있는 이 생이 감사해졌다면 오버일까. 5분 뒤엔 다시 원래의 ‘현실개미’로 돌아올지라도 말이다.
2분 숨 참기와 40m 잠영을 통과하고 나자 눈앞에 3m 깊이의 수영장이 다음 훈련을 기다리고 있다. 수압에서 압력을 견디게 하는 이퀄라이징과 덕다이빙 훈련이다. 이퀄라이징을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프리다이빙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판가름한다고 강사는 설명했다. 프리다이빙의 80%가 이퀄라이징이라고 한다. 숨 참기가 다가 아니었다. 이제 물속 3m 아래로 내려간다.
[프리다이빙체험 ②로 계속됩니다]
제주=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