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고물’ 많으니 증권사 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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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어카운트는 고수익 상품?
아니다. 지난 1년간 랩어카운트의 수익률이 좋아 보이지만, 4~5배씩 오른 일부 대형주의 주가 상승률과 비교해보면 낮은 수준이다. 주식형 펀드와 비교해도 랩어카운트가 월등한 성적을 거뒀다고 보기는 어렵다.
2월 중순 일부 언론에 공개된 모 증권사의 자문형 랩 수익률을 살펴보자. 최근 6개월 수익률(2월 11일 기준)은 유리치투자자문이 36.31%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12.46%)과 펀드 평균 수익률(15.99%)을 크게 웃돈 성적이다. 이어 J&J투자자문(30.72%), 드림자산(22.91%), 한국밸류(21.74%), 브레인(19.14%) 순으로 좋은 성과를 냈다. 반면 인피니티, 튜브, 에이스투자자문은 한 자리 수익률에 그쳐 자문형 랩 상품별로 수익률 격차가 컸다. 지난해 말 출시된 자문형 랩 상품들은 한 달 동안 4~6%의 손실을 내고 있다.
펀드의 경우 6개월 동안 가장 높은 수익을 낸 펀드는 교보악사운용의 ‘교보악사코어셀렉션’으로 31.17%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어 ‘K스타레버리지펀드’(30.38%), ‘알리안츠베스트중소형’(29.36%), ‘JP모간코리아트러스트’(28.69%) 순이다. 펀드 역시 최소 5%에서 최대 31%로 상품별로 수익률 격차가 컸다. 랩과 큰 차이가 없다.
랩어카운트는 고객 자산을 전문가가 개별적으로 대신 관리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서비스다. 고수익 추구가 목적이 아니라 전문가의 포트폴리오 투자를 통해 투자 위험을 줄이고 투자 효율을 극대화하는 게 목적이다. 결국 소수 종목에 집중 투자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최근의 투자 스타일은 랩어카운트의 기능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랩어카운트는 고객을 위한 상품?
펀드를 기성복에, 랩어카운트를 맞춤복에 비유하곤 한다. 달리 말하면 랩어카운트가 더 고객을 위한 상품이란 뜻이다. 일리 있지만 증권사들이 랩어카운트에 열을 올리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오프라인에서 주식매매거래를 하면 투자금의 0.1~0.2%대 수수료밖에 받지 못한다. 펀드를 판매해도 운용사에 떼어주는 보수 0.6~0.7%가량을 빼면 연간 1~1.5%의 수수료를 받는 게 전부다. 하지만 랩어카운트를 팔면 자문사에 떼어주는 0.2~0.3%가량의 자문료를 빼고도 2% 안팎의 수수료를 받는다.
지금은 금지됐지만 한때는 랩어카운트 계좌에서 발생하는 주식거래 수수료까지 챙겼다. 한마디로 랩어카운트를 팔면 주식매매수수료와 펀드판매수수료를 동시에 얻을 수 있었던 셈이다. 주식매매수수료를 받지 못하게 됐지만, 그래도 펀드 판매보다는 많이 남는 장사다. 게다가 펀드는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판매 절차도 까다롭고 집단소송의 위험도 있다. 반면 랩어카운트는 판매 절차도 간단하고 집단소송의 위험도 없다. 증권사에게 랩어카운트는 가장 쉽게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상품인 셈이다.
그럼 최근 미래에셋을 시작으로 랩어카운트 수수료를 인하한 것은 고객을 위한 결정일까? 수수료가 낮아지면 고객에게 득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하 배경을 두고 랩어카운트 시장에서 독주하고 있는 삼성증권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수수료를 내렸다지만 증권사들이 밑지는 장사를 할 리는 없다. 2% 미만의 수수료라도 펀드 판매보다는 많이 남는 장사다.
◇랩어카운트가 시장을 움직인다?
일각에서는 마치 랩어카운트 자금이 시장을 움직이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하지만 랩어카운트가 움직이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종목이다. 주식형 펀드는 보통 코스피200지수를 구성하는 종목을 기준으로 종목별 비중을 조절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성과의 기준이 되는 벤치마크가 코스피200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코스피200만큼은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코스피200과 비슷하게 보유종목을 가져가야 한다. 따라서 펀드가 주식을 산다는 얘기는 코스피200 종목 가운데 상당 부분을 사들인다는 뜻이다. 자연스레 주가지수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와 비교해 랩어카운트는 일부 종목에 집중한다. 따라서 투자하는 종목의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시장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펀드보다 약하다. 이는 규모에서도 확인된다. 국내 주식형 펀드 규모는 100조 원에 달하지만, 랩어카운트 규모는 겨우 7조 원대다.
랩어카운트가 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약하지만 증시 최대 큰손인 외국인에게 손쉬운 먹잇감이 될 확률은 펀드보다 높다. 주식형 펀드는 분산 효과가 강한 만큼 외국인이 일부 종목을 대거 매도하더라도 다른 종목 주가가 버텨줄 경우 시장 수익률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또 주식형 펀드는 5% 이상 투자 종목이 아닌 경우 투자 종목 리스트가 3개월 후에 공개되므로 외국인이 펀드가 산 종목을 족집게 식으로 팔기 어렵다. 하지만 랩어카운트의 경우 종목 투자 정보가 쉽게 공개된다. 랩어카운트가 사서 주가가 오른 종목을 조준해서 매도할 수 있다. 최근 외국인 매도가 많은 종목이 한때 ‘7공주’로 불렸던 랩어카운트 집중 종목에 쏠린 점은 이를 입증한다.
◇랩어카운트는 헤지펀드의 전 단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랩어카운트 내 위험관리를 통해 헤지펀드와 같은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랩어카운트를 운용하는 자문사 인력들을 보면 대부분 현물 주식을 사고파는 펀드매니저 출신들이다. 반면 시황에 관계없이 일정 수익률을 내는 헤지펀드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리서치 데이터와 복잡한 매매기법을 이용해야 한다.
일례로 헤지펀드는 주가 하락기에도 공매도를 통해서나, 투자 대상 간 가격 차이를 이용해 수익을 낼 수도 있어야 한다. 현물 선물은 물론 옵션과 채권 등 이용하는 투자 자산도 다양하다. 이와 비교해 요즘 유행하는 랩어카운트들은 현물 주식을 사고파는 게 전략의 전부다. 시장 등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쉽게 말해 헤지펀드는 시장이 20% 오르는 상황에서도 10%의 수익을, 시장이 20% 폭락한 상황에서도 10%의 수익을 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물 매매만 이용하는 국내 랩어카운트는 상승장에서 시장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낼 수는 있어도, 폭락장에서 상승장과 엇비슷한 수익을 내기는 어렵다. 참고로 지난해 글로벌 헤지펀드 수익률 평균은 7%였다.
익명을 요구한 외국계 운용사 대표는 “국내 운용사나 자문사의 운용인력 역량을 볼 때 헤지펀드 운용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요즘 부자들이 헤지펀드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결국 이들의 니즈(Needs)를 충족시킬 만한 상품은 해외에서 수입해야 할 듯 보인다”고 꼬집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