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외풍에 각종 사건·사고가 발목…적자 탈피 힘든 재무 구조 핵심 원인 지목
손병석 사장은 지난 2일 직원들에 사의를 전하면서 “한국철도가 처한 재무위기 극복 등 여러 경영현안과 인건비, 조직문화 등 문제점이 개선되고 국민이 더욱 신뢰하는 공기업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국토부 철도국장과 기획조정실장, 제1차관 등을 거쳐 지난 2019년 3월 코레일 사장에 오른 바 있다. 철도업무를 담당한 경험 때문에 손병석 사장은 공사 전환 뒤 처음으로 임기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부진한 성적표가 그의 임기를 단축시켰다. 코레일 결산서에 따르면 손 사장이 취임한 2019년 당기순손실 853억 원으로 적자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당기순순실이 1조 2381억에 달했다. 기존에도 적자 상태인데 코로나19 여파로 승객이 급감한 영향이다. 손 사장은 지난해 12개 지역본부 통폐합 등 현장조직 개편을 통한 인력 운영과 조직 쇄신을 단행하고 고강도 비용절감으로 재무구조 혁신에 나섰으나 코로나19 풍파를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근 발표된 공공기관 경영평가 항목 중 경영관리 분야에서 혹평을 받은 것도 사임의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코레일은 지난 6월 발표된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보통(C)’ 등급을 받았고, 경영관리 부문에선 최하 등급인 ‘아주 미흡(E)’을 받았다. 손 사장은 특히 경영평가 결과 코레일이 중대 재해가 발생한 12개 기관에 포함되면서 기관장 경고를 받기도 했다. 최근 5년간 코레일 내 산업재해 사망자는 2016년 7명, 2017년 6명, 2018년 2명, 2019년 2명, 2020년 1명 등 총 18명에 달한다.
손병석 사장 취임 첫해인 지난 2019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도 코레일은 낙제점인 ‘미흡(D)’ 등급을 받았다. 코레일이 고객 만족도 조사(PCSI)를 진행하면서 직원 208명이 고객인 척 설문조사에 참여해 결과를 조작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손 사장은 기관장 경고 조치를 받았고, 직원들도 성과급을 받지 못했다.
#코레일 9명의 사장 수난사
사장의 중도 하차는 코레일에서 관례처럼 굳어지고 있다. 2005년 1월 철도청에서 공사로 전환한 뒤 9명의 사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중도 하차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비리 혐의 때문이다. 1대 사장인 신광순 전 사장은 철도청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전문가였으나 ‘철도유전개발’ 의혹으로 검찰 수사 선상에 올라 취임 5개월여 만에 자진사퇴했고, 강경호 3대 사장은 강원랜드 인사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취임 5개월 만에 구속됐다.
사고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경우도 있다. 오영식 8대 사장은 강릉선 KTX 탈선 사고 등 잇따른 열차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취임 10개월 만에 중도 사퇴했다. 이 사고로 승객 15명과 역무원 1명이 중경상을 입고, 열차는 45시간 동안 운행을 멈췄다. 오영식 전 사장에 대해서는 철도산업에 대한 이해·경험이 부족 등 경영 능력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정치적 외풍에 휩쓸린 사례도 많다. 애초 역대 사장 9명 중 철도 경력 보유자는 손병석 9대 사장을 비롯해 신광순 1대 사장, 철도청 차장 출신인 최연혜 6대 사장 등 단 3명뿐이다. 이철 2대 사장은 국회의원 출신으로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됐다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물러났고, 뒤이어 다스와 현대건설 출신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강경호 씨가 3대 사장이 됐다. 이 외에도 경찰(허준영 4대 사장), 감사원(정창영 5대 사장) 출신 등 철도와 무관한 사정기관 출신이 정권 성향에 따라 뽑혔다. 허준영 4대 사장과 최연혜 6대 사장은 총선 출마 등 정치적 행보를 위해 중도 하차했다.
#탈출구 없는 재무 상황, 제도적인 접근 필요
코레일 사장의 중도 하차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낙하산 인사의 한계와 적자를 벗어날 수 없는 재무 구조를 꼽는 이들이 많다. 매해 악화되는 재무 상황이 경영자 운신의 폭을 줄이고 결국 사퇴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 철도 노선은 많아지는데 고객은 나날이 줄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SRT(수서고속철도)가 생겨나면서 자연스레 승객이 나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와 관련, 강경우 한양대학교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19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특별한 경우가 있었기에 적자가 심할 수밖에 없었고, 코로나 이후 회복된다 하더라도 전망은 밝지 않다”며 “SRT에 임대료를 원가보다 훨씬 저가에 노선을 임대해 주고 있는 데다 수익 노선으로 번 돈으로 새마을호나 KTX 비수익 노선 등 나머지 노선의 적자를 메워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적자를 줄이기 위해 시설물 정비 및 차량 유지·보수 인력을 축소하고 대신 외주화하면서 각종 사건 사고가 잦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정원 증원, 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레일의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관상 현재 코레일 등 공기업은 호텔이나 골프장을 짓고 운영하는 등의 수익사업을 할 수 없다. 앞서의 강경우 교수는 “코레일이 철도 연관 사업에 진출해 재정수입을 늘리고 적자를 면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정부가 법을 바꿔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코레일 내부의 혁신을 독려하고 이를 뒷받침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철도업계 한 관계자는 “주로 정치인과 국토부 공무원이 코레일 사장으로 가는데 대체로 공무원 마인드가 강했다”면서 “코레일이 내부적으로 경영 개선안을 내놓으면 정부 차원에서 토론의 장을 열어주는 등 경영자가 경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