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HW 강화 이어 카카오 통한 빅데이터 확보…전장 넘어 완성차 진출? LG 측 “정해진 계획 없어”
#LG그룹의 ‘모빌리티’ 진용 갖춰져
지난 7월 2일 LG그룹은 카카오모빌리티에 1000억 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발표했다. LG는 7월 20일 카카오모빌리티의 신주 156만 8135주(2.54%)를 취득해 카카오, KHAKI홀딩스, 모빌리티코엔베스트에 이어 4대 주주로 올라선다.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의 배터리 사업, LG전자의 전기차 충전 솔루션 등 LG그룹 계열사들이 미래 모빌리티 신사업에 진출한 가운데 카카오모빌리티와의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꾀할 전망이다.
우선 ‘바스(BaaS, Battery as a Service)’ 사업에서의 협업이 기대된다. 바스는 전기차 배터리 제조부터 폐기 및 재활용, 재사용까지 이어지는 생애 주기별 관리·진단 서비스다. 특히 전기차를 폐차할 때 배터리를 회수해 에너지저장장치(ESS)로 재사용한다면 높은 수익성을 꾀할 수 있다. 사용이 끝난 ESS도 다시 분해해 리튬, 코발트, 니켈, 망간 등 경제적 가치가 있는 금속을 추출해 재활용할 수 있다. 글로벌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은 2019년 기준 15억 달러(약 1조 6500억 원)에서 2030년 181억 달러(약 20조 원) 규모로 10배 이상 커질 전망이다.
바스 사업의 관건은 전기차 주행 데이터 확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국내 택시 호출 서비스 시장 점유율 80%로 1위 사업자다. 500만 명이 사용하고 있는 카카오내비는 내비게이션 시장 2위다. 이 같은 플랫폼을 통해 전기차 주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보한다면 바스 사업뿐만 아니라 LG그룹의 모빌리티 신사업 전반에 활용할 수 있다. 지난 4월 LG엔솔이 바스 사업을 위해 롯데렌탈과 협력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LG엔솔 배터리가 많이 팔린다고 주행 데이터가 확보되는 건 아니다. LG그룹 독자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모빌리티 시장을 따라가긴 쉽지 않다”며 “주행 데이터를 오래 전부터 확보해왔고, 플랫폼 사업자인 카카오를 우군으로 삼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도 주목되는 협업 분야다. 구광모 회장이 미래먹거리 사업을 위해 설립한 기업 벤처캐피탈(CVC) ‘LG테크놀로지벤처스’는 자율주행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 라이드셀에 첫 투자를 했다. 여기에 올 초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회사 알루토와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 알폰소를 연이어 인수했다. 퀄컴과는 ‘5G 커넥티드카 플랫폼’을 개발하는 등 자율주행차 핵심 부품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카카오는 지난해부터 세종시에서 국내 최초 자율주행 상용화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고, 올해 구글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면서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앞서 7월 1일 LG전자는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인 캐나다의 마그나인터내셔널과 ‘LG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을 설립했다. 합작법인은 LG전자가 자동차 부품사업부를 물적분할해 지분 51%를 보유하고, 마그나가 지분 49%를 4억 5300만 달러(약 5100억 원)에 인수하는 방식으로 설립됐다. 초대 최고경영자(CEO)는 정원석 LG전자 VS사업본부 그린사업담당 상무다. 합작사는 앞으로 전기차에 들어가는 모터, 인버터, 차량 탑재형 충전기, 구동시스템 등을 생산·공급하게 된다.
LG전자는 LG마그나의 매출이 내년부터 2025년까지 매년 50%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 2배 수준인 5000억 원 이상으로 보고 있다. 2023년에는 매출 1조 원대, 2025년 2조 원대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실제 글로벌 전기차 모터 시장이 지난해 6조 2000억 원에서 올해 9조 5000억 원, 2025년 24조 원으로 급성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기차 인버터 시장도 올해 8조 4000억 원에서 2025년에는 21조 5000억 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LG그룹, 전기차로 완성차 진출하나?
LG그룹이 궁극적으로 전기차 완성차에 진출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마그나는 완성차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능력을 보유한 업체다. 1970년대부터 메르세데스 벤츠, 아우디, 폴크스바겐, 크라이슬러, BMW, 도요타, 재규어 등의 차량들을 OEM 방식으로 직접 생산하고 있다. 이미 2024년 생산 예정인 ‘애플카’ 위탁생산(OEM)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스와미 코타기리 마그나 CEO가 자동차 애널리스트 협회 행사에서 “마그나는 애플카를 제작할 준비가 돼 있다”며 “제조공장을 증설할 의향도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LG그룹은 전기차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등을 모두 설계·생산할 능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LG엔솔(배터리), LG이노텍(자동차 통신장비·카메라), LG전자(자동차 열관리 시스템·오디오·비디오·내비게이션), LG디스플레이(인포테인먼트·디스플레이) 등 완성차 제작에 필요한 계열사들을 고루 갖췄다. 여기에 범 LG가인 LX하우시스(내장재), LX세미콘(반도체) 등도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LG마그나는 전기차 엔진 역할을 하는 모터와 인버터를 조달할 수 있다”며 “LG전자, LG마그나,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엔솔 등 LG그룹 계열사들이 전략적 협업을 통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 생태계 형성을 주도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테슬라의 성공으로 신생 기업의 완성차 시장 진출 장벽도 깨진 지 오래다. 과거에는 완성차 제조업에 막대한 선행 투자가 필요했고,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만큼 위험부담도 컸다. 하지만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 모빌리티 패러다임이 전환되면서 과거의 진입장벽 자체가 허물어지고 있다.
실제 국내외 기업들이 완성차 사업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부품 수가 30%가량 적다. 특히 ‘모듈화 플랫폼’ 도입으로 인해 유연한 생산이 가능하다. 브랜드와 소프트웨어만 제대로 구축한다면 하드웨어는 OEM을 통해 제작할 수 있다. 애플, 구글, 소니, 바이두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모빌리티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이유다.
지난 1월 한국자동차연구원은 ‘빅테크발 자동차 생태계 변화 가시화’ 보고서를 통해 “기존 완성차·부품업체들은 파워트레인과 섀시, 차체 등을 설계·제공하고, IT 기업들은 자율주행 기능과 응용 서비스 구현을 위한 소프트웨어 제공에 우위를 점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IT 기업들이 자본 조달력, 브랜드 인지도, 개발·생산 역량을 갖추고 있는 만큼 짧은 시간 안에 완성차 시장에 진출해 기존 산업 구조에 파괴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LG전자 한 관계자는 “전기차의 엔진인 E파워트레인 등을 포함해 전장 사업을 강화하면서 미래 먹거리로서의 청사진을 마련하고 있는 건 맞다”면서도 “실질적으로 영위하고 있는 사업은 전장에 한정됐다. 완성차를 생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정해진 계획도 없다. 마그나인터내셔널이 전장뿐만 아니라 OEM을 하고 있지만, 합작사 LG마그나와는 별개의 사업”이라고 말했다. 이어 “애플카 OEM도 정해진 바가 없다”라고 덧붙였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