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동지 ‘창’과 ‘방패’로 만났다
▲ 이해진 NHN 이사회 의장(왼쪽).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
NHN과 결별 이후 절치부심하던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재기는 화려하다. 김 의장은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다시금 하나의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그의 재기를 놓고 혹자는 과거 애플 CEO(최고경영자) 자리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픽사 애니메이션을 성공시킨 일화에 빗대기도 한다. 이에 반해 후발주자인 이해진 NHN 의장의 ‘네이버톡’은 지난 2월 16일에야 베타서비스를 시작했다.
인터넷 업계에서는 ‘공룡’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은 NHN이지만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서는 다르다. 김범수 의장의 카카오톡은 벌써 800만 가입자를 확보하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반면, 이해진 의장의 네이버톡은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이다. 한때 공동대표로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며 NHN을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으로 키운 기억은 잠시 접어두고 이제 모바일 메신저에서는 창과 방패로 서로를 겨냥했다. 적으로 다시 만난 두 사람의 경쟁에 업계 안팎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김범수 의장과 이해진 의장이 경쟁자로 돌아선 사연은 꽤나 흥미롭다. 지난 2000년 NHN 설립, 즉 네이버와 한게임의 M&A(인수·합병)는 국내외 대학에서 수업시간에서 언급할 만큼 가장 성공적인 M&A 사례로 꼽힌다고 한다. 이 의장의 네이버컴은 당시만 해도 자금과 인력은 많았지만 다음 라이코스에 밀렸고, 한게임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회원 수를 감당하지 못했다.
당시 두 회사는 이미 PC방 공동마케팅을 진행 중이었던지라 합병을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입사동기이자 친구인 둘은 그렇게 회사를 합쳤다. 다행히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하루에 10만 명씩 회원 수가 늘어나던 한게임은 네이버컴 덕분에 트래픽 폭증을 소화했고, 네이버컴은 한게임이라는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게임과 검색서비스 유료화 성공으로 사업에 박차를 가하며 대한민국 대표 IT(정보기술)기업 NHN을 키워냈다.
문제는 그때부터 불거졌다. 5년 동안 공동대표로 힘을 합했지만 회사가 커지다보니 곳곳에서 삐걱거림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2007년 초 김 의장이 갑자기 NHN USA 대표로 발령 나더니 부임 후 고작 8개월 만에 전격 사퇴했다. 한게임 창업 멤버인 남궁훈 전 NHN USA 대표(현 CJ E&M 게임부문 대표), 문태식 전 NHN게임즈 대표, 천양현 전 NHN재팬 대표(현 코코네 대표)도 김 의장의 뒤를 잇듯 차례로 NHN을 떠났다. 게임 인맥이 검색 인맥에 밀렸다는 설이 파다하게 퍼질 수밖에 없었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 NHN의 주요 수익원은 한게임의 보드게임 매출임에도 불구하고 한게임 인사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해 불만이 많았다”며 내부 갈등설에 힘을 실었다. 그는 “게임업계에서 한게임은 매출 1, 2위를 다투는 기업이건만 지금까지도 한게임 직원들의 연봉은 엔씨소프트 넥슨 등과 비교해 다소 낮은 축에 속한다”고 덧붙였다.
김 의장이 NHN을 나오면서 보유 지분을 모두 팔고 나온 것도 불화설을 부추겼다. 지난 2002년 NHN의 코스닥 상장 당시 최대주주는 7.76%의 지분을 보유한 이해진 의장이었다. 김범수 의장은 2.35%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임과 동시에 보유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현재 코스피로 이전한 NHN의 최대주주는 여전히 5.1%의 지분을 보유한 이해진 의장이다.
게임업계 일각에서는 때마침 불어 닥친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 사태도 김 의장의 사퇴에 한몫했을 것으로 분석한다. 사회적으로 바다이야기가 문제가 되자 고스톱 포커 등 웹보드 게임을 주력으로 하는 한게임이 유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당시 게임산업협회장을 맡고 있던 김범수 의장은 필연적으로 연일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또 다른 게임업계 관계자는 “만약 당신이 300억 원가량의 재산이 있는데 사회적으로 악덕 기업으로 분류되고 협회장이랍시고 연일 국회의원이나 시민단체에게 욕먹고 회사 내부에서도 불화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NHN은 지금도 ‘웹보드게임 건전성 강화 정책’을 내세워 한게임 매출을 줄이도록 압박을 가하는 상태다.
김 의장은 이후 아이위랩(현 카카오)을 인수했다. 네이버 ‘지식인’ 서비스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위지아’를 내놓으며 야심차게 재기를 노렸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김 의장의 결단력이 돋보이는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위지아의 고전을 뒤로하고 스마트폰이 거의 보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감하게 앱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그 결과는 눈부시다. 카카오톡은 현재 스마트폰 이용자의 90% 이상이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필수 앱’이 됐다. 가입자 수가 800만을 돌파했으며 3월 중으로 1000만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베타서비스 중인 ‘네이버톡’은 2% 부족하다. 야심차게 서비스를 내놓은 것까지는 좋았으나 출시 첫날부터 서버 폭주, 로그인 오류 등 각종 버그에 시달렸다. 이용자들의 관심을 모으며 출시 하루 만에 애플 앱스토어 무료차트 3위까지 올라갔지만 버그 리포트가 속속 등록되며 ‘안티팬만 양산했다’는 평가를 들어야만 했다.
다만 아직 베타서비스인 것을 감안하면 개선 여지는 충분하다는 평이다. 그룹대화 미지원, 해외 이용자 사용 불가 등은 약점이지만 네이버미 미투데이 블로그 등 네이버 서비스를 주로 사용하는 이용자에게는 편리한 게 강점이다. 업계에서는 이해진 의장이 직접 개발 진척 상황을 챙기는 만큼 네이버톡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결국 본격적인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 본연의 모습은 아니다.”
김범수 의장이 NHN을 나오면서 던진 말이다. 이해진 의장은 공교롭게도 지난 2007년 김범수 의장이 NHN을 떠난 시기를 전후로 언론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업계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둘은 아직도 정기적으로 NHN OB모임에서 만나 맥주잔을 부딪친다고 한다.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서 다시 만난 김 의장과 이 의장이 어떤 경쟁을 펼쳐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진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