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앱 개발로 개인투자자 유입 늘어…우리사주 대량 매도·가격 거품·사기 위험 조심해야
지난해부터 공모주 청약 열풍이 불면서 비상장기업에 대한 또 다른 투자 수단인 장외주식의 인기가 높아졌다. 장외주식 투자는 유가증권시장이나 코스닥에 상장되지 않은 회사를 대상으로 한 주식 투자다. 서로 신원 확인을 거친 뒤 주식 양수도 계약서를 작성하고, 증권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주식을 이체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매도자는 별도의 세금 처리도 해야 한다. 비상장기업은 증권거래세와 양도소득세, 양도소득세에 대한 주민세 과세 대상이다.
개인 간 거래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금융투자협회가 운영하는 ‘K-OTC’나 ‘증권플러스 비상장’, ‘서울거래소’ 등 플랫폼을 통한 주식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원하는 종목에 대해 매수 의향을 게시하면 플랫폼에서 매도자를 연결해준다. 증권사를 통해 증권거래세가 원천 징수되고 허위 매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장점이다. 30대 투자자 A 씨는 “게시판에는 광고도 많고 직접 연락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데 앱에서는 중고품 거래하는 것과 비슷해 편리하다”고 말했다.
공모주 열풍이 불면서 장외주식의 시장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K-OTC 시장의 누적 거래대금은 올해 상반기 4조 6000억 원을 돌파했다. 거래되는 기업의 시가총액은 2020년 말 대비 5조 493억 원 증가한 22조 931억 원으로 2014년 11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증권플러스 비상장’의 누적거래수는 지난 6월 10만 건을 넘었고, 지난 14일 현재 거래 가능한 종목 수는 5614개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작년부터 개인투자자가 급증한 영향”이라며 “비상장주식이 ‘38커뮤니케이션’ 같은 곳에서 게시판 형식에서 거래되다 최근 결제 안정성과 편의성이 높은 플랫폼 앱이 개발되면서 투자자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장외주식 투자의 가장 큰 매력은 비인기 종목을 발굴해 향후 상장 시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5년째 장외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B 씨는 “지인 회사에 투자한 것에서 시작했다”며 “상장되지 않은 회사 중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술집약형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외 거래가로 단순 비교하면 1400% 이상 수익률을 본 종목도 있다”고 밝혔다.
장외주식이 공모주 청약에 비해 개인투자자가 접근하기 좋다는 평가도 있다. 청약의 경우 수십만 원에서 억대에 달하는 증거금을 맡겨둬야 하지만 장외주식은 소액으로도 투자가 가능해 거래 문턱이 낮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청약이라고 해봤자 1억 원을 맡겨도 몇 주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장외주식에서 한방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며 “가치투자일수록 상장 시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장외시장에서 자금 운용에 거부감도 적은 편”이라고 전했다.
우리사주를 가진 임직원에 의해 가격이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폐해다. 이 같은 현상은 대형주일수록 더하다. 카카오뱅크는 지난 6월 28일 6545만 주를 유상증자 방식으로 신규 발행하고 이중 20%에 해당하는 1309만 주를 우리사주에 배정한다고 밝혔다. 카카오뱅크의 장외주식 기준가는 이날까지 ‘서울거래소’ 기준 9만 4000원 수준으로 유지되다 이후 8만 원선으로 떨어졌다.
장외주식 중개업계에서는 이렇게 된 이유가 카카오뱅크 임직원들이 기존에 보유한 우리사주를 대량 매도해 현금을 마련한 뒤 다시 저가로 신주를 매수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중개업계 한 관계자는 “스톡옵션 등의 이유로 거래가가 변동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고점에서 물렸다”며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장외주식 기준가가 지나치게 높게 형성돼 있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즉 거품이라는 의미다. 오는 8월 5일 상장을 앞둔 카카오뱅크의 공모희망가액은 3만 3000~3만 9000원으로 장외 기준가의 40% 수준이다. 투자자들은 ‘따상(공모가 대비 2배 오른 뒤 상한가로 마감)’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따상’ 가능성을 보더라도 수익성이 높지 않다는 이유다.
앞의 중개업계 관계자는 “비상장 기업에 투자하는 이유는 상장 시 높은 수익이 발생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인데 현재 (장외) 기준가 자체가 과하게 높은 상황”이라며 “지난해 카카오게임즈나 빅히트, SK바이오팜 등의 사례를 보면 ‘따상’ 후 주가가 급락하는 현상이 나타나 손해를 본 투자자도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게임즈는 지난해 9월 10일 코스닥시장 상장을 앞두고 장외에서 7만 5000원선에 거래됐다. 공모가인 2만 4000원의 3배 수준이다. 상장일엔 ‘따상’을 기록해 8만 9100원까지 올랐으나 한 달여 만에 그 절반 수준인 4만 원대로 하락했다. 다만, 카카오게임즈의 주가는 이후 회복해 16일 현재 8만 원을 웃돌고 있다.
장외주식의 거품이 공모가 거품으로 이어지는 모습도 나온다. 상장을 앞둔 기업들의 예상 시가총액이 기존 대장주들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크래프톤은 지난 6월 16일 증시 상장 계획을 밝히며 공모희망가액으로 45만 8000~55만 7000원을 제시했는데, 당시 장외 기준가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특히 기업가치 산정에 비교 대상으로 게임기업이 아닌 월트디즈니와 워너뮤직그룹 등을 넣어 적정 시가총액이 35조 736억 원으로 평가돼 고평가 논란이 일었다. 이후 금융감독원의 정정 요구를 받고 산정 방식을 바꿔 공모가를 10%가량 낮췄지만 적정 시가총액은 29조 1662억 원으로 여전히 넥슨(약 22조 원) 엔씨소프트(17조 5413억 원)보다 크다.
장외주식 자체의 위험성도 거론된다. 증권거래소에서 단일한 가격에 취급되지 않아 플랫폼업체별로 종목 가격이 상이하고, 매도자우위시장(주가 상승이 예상돼 매도자가 가격 결정에 주도권을 갖는 시장)인 탓에 개인 간 거래 시에는 ‘네고(가격 협상)’를 빌미로 한 사기 개입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정보로 투자를 유도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앞의 중개업계 관계자는 “투자설명회 같은 곳에서 기업에 대한 허위정보를 대며 종목을 홍보하는데, 제대로 된 주식이 아닌 경우가 많다”며 “100원짜리 깡통주식을 5000원에 매물로 내놓는 경우도 있는데, 모르면 당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사기꾼을 조심해야 한다”면서 “‘중고 사기’랑 똑같다. 돈이나 주식을 보냈다가 도망가 버리는 일도 있다”고 덧붙였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상장 기업의 경우 증권사들이 보고서를 작성하고 공시도 이뤄지지만 장외주식은 그런 점이 미비하다”며 “회사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대부분 개인투자자에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강 사무처장은 “유사 투자자문회사가 난립해 사기를 치거나 허위 소문에 휘둘리는 경우도 있다”며 “장외 시장에 대해서도 기업의 허위 공시나 ‘작전’이 이뤄지지 않도록 투명한 감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욱 기자 nmd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