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유입 막는 동시에 탈북 원천 차단…K팝 열풍 일자 ‘한류와의 전쟁’도 펼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임기 중 미국과 멕시코 국경 사이 거대한 장벽을 쌓았다. 난민과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최근엔 중국이 ‘트럼프 장벽’을 벤치마킹했다.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7월 15일 “중국 당국이 미얀마·베트남·라오스에서 오는 불법 입국자를 막으려 윈난성 국경지대 500km에 걸쳐 금속 울타리와 철조망 그리고 감시 카메라 네트워크망을 건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중국보다도 앞서 장벽 건설을 벤치마킹했다. 3월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는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국경 전 구간에 사람 키를 넘는 콘크리트 장벽을 세우고 3300V 고압 전력선을 설치하라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비준과업에 따라 연선지역에 자재와 장비, 인원이 투입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2월 제8기 제2차 조선노동당 전원대회 당시 김정은이 직접 전 국경에 콘크리트 방탄 장벽과 고압선을 설치하라는 친필 지시를 내린 것에 따른 후속 조치라는 내용이었다.
대북 소식통은 7월 15일 통화에서 “북한 지도부가 중국 접경지역에 장벽을 쌓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10월 10일 당 창건일 전까지 장벽을 완공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고 귀띔했다. 이 소식통은 “완공이 지도부 압박대로 10월 10일 전까지 마무리될지는 미지수”라면서 “공사 현장에 자재 부족 등의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우방국’인 중국과 접경지대에 장벽을 세우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표면적 이유로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국경봉쇄책을 강화하는 차원이다. 국경이 봉쇄됐음에도 북·중 접경지대에서 밀수 무역 행위가 빈번하게 이뤄지면서 방역에 구멍이 뚫릴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국경을 들락날락거릴 만한 쥐구멍을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동시에 국경지대 주민들의 탈북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난다. 최근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을 비롯한 북한 고위층 담화를 살펴보면 그간 숨겨오던 ‘탈북민’의 정체를 공개하면서 이들을 정면 비판했다. 그런 차원에서 ‘탈북과의 전쟁’이 본격화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압록강과 두만강에 이르는 구간 전체에 걸쳐 콘크리트 장벽과 전기가 흐르는 고압선 설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장벽이 북한 지도부 의도대로 밀수와 탈북을 원천차단할 수 있을 지엔 물음표가 달린다. 가장 큰 문제는 고압선에 공급할 전력 문제다.
한 탈북민은 “북한은 평양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에 전력난이 심각하다”면서 “활용할 수 있는 전력량에 제한이 있어 국경 전 지역에 고압선을 설치한다 해도 24시간 가동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 탈북민은 “국경지대 밀수꾼들과 탈북을 계획한 사람들은 ‘죽을 각오’로 계획을 행동에 옮긴다”면서 “장벽이 생기더라도 장벽의 약점을 면밀히 살피며 강을 건너갈 틈을 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고압선에 전류가 흐르지 않는 시간과 콘크리트 장벽이 부실하게 건설된 지점에 대한 분석이 끝난다면 장벽의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 지도부가 당 창건일까지 장벽 건설을 서두를 것을 지시하고 있는데, 이렇게 급하게 공사가 이어질 경우 밀수꾼이나 주민들이 노릴 만한 ‘부실 공사 포인트’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일각에선 장벽이 실제적인 효과를 거둘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른 대북 소식통은 “북한의 장벽 건설이 확실한 차단 효과를 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경우 장기적으론 주민들의 생활이 상당히 불편해질 것”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사실 북·중 접경지대의 경제는 ‘장마당’이라 불리는 비공식적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돌아간다”면서 “그런데 밀수까지 원천차단 한다면 접경지대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밀수꾼들이 사라진다면 접경지대 주민들이 ‘그냥 큰마음 먹고 탈출할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리고 장벽이 건설된 뒤 허점만 파악된다면 그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봉쇄책이 파훼될 수 있다. 백신이 개발되면 해커들이 또 다른 파훼법을 찾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북한 내부에 은밀하면서도 공공연하게 퍼지고 있는 한국 문화 콘텐츠와 더불어 탈북민들의 한국 경험담이 북한 정권 유지에 파열음을 낼 수 있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최근 북한 20대 현역 군인 3명이 백두산 답사를 갔다가 장기자랑으로 한국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피 땀 눈물’ 안무를 춰 당국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국경에 방탄 콘크리트 장벽을 세우는 가운데 북한 사회 내부에 '방탄소년단 열풍'이 불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는 모양새다.
6월 14일 뉴욕타임스는 외교가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이 K팝을 악질적인 암으로 규정해 문화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경봉쇄와 더불어 지역 간 이동도 통제된 상황에서 한국 문화 콘텐츠를 은밀하게 소비하는 ‘한류 밀거래’ 수요는 높아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접경지대의 경우 중국 쪽 신호를 이용해 한국으로 통화가 가능한데, 이 과정에서 북한 MZ세대의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소식통은 “북한이 장벽이라는 물리적인 조치와 김여정 담화문 등 정치적인 조치로 외부로 이어지는 벽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면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대한 형량을 강화하는 등 입법 조치까지 삼박자가 갖춰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이런 지도부의 조치가 외부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북한 젊은층의 순응을 이끌어낼지 반감을 불러일으킬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라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