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풍랑에 늦어지는 비핵심사업 정리…CJ “외부 악재에도 미래먹거리 찾아내고 있다”
SK, LG, 한화, GS, 현대중공업, 효성, 코오롱 등은 화학·에너지 업황이 개선되면서 이를 기반으로 신사업 분야 시설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롯데, 신세계 등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큰 타격을 입었지만 인수합병(M&A) 시장에 뛰어들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해 30대그룹 중 상황이 가장 좋지 않았던 두산도 올해는 기계 업종의 반등을 계기로 친환경 사업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릴 계획이다.
반면 CJ그룹은 어떻게 난관을 극복할지 불분명하다. CJ그룹의 사정은 좋은 편이 아니다. CJ제일제당과 CJ대한통운은 건재하지만 CJ CGV와 CJ푸드빌은 생존마저 위태롭다는 지적이 나온다. CJ올리브영과 CJ프레시웨이도 코로나19 여파로 실적이 부진하다. 주요 계열사의 업황 악화 속에 지주회사 CJ(주) 순이익은 2017년 1조 1380억 원에서 2018년 8800억 원, 2019년 3240억 원, 2020년 2040억 원으로 줄어들고 있다. 이에 CJ 측은 “순이익은 감소했으나, 기업의 기본 체력을 의미하는 영업이익은 코로나 여파가 있던 2020년을 제외하고는 지속 증가해 왔다”며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매각 지지부진…CJ CGV는 또 자금난?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2020년 신년사에서 “양적 성장이 아닌 혁신 성장을 우선시하겠다”고 밝혔다. 뒤이어 이재현 회장이 계열사 사장들에게 선택과 집중을 지시했다. CJ그룹은 식품·바이오와 유통·방송 두 축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비주력 계열사는 매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성사된 것은 거의 없다. 매각 작업은 지지부진하고, 추가 투자가 절실한 계열사가 생기고 있다. CJ그룹 내부에서는 “매각설이 나오면서 직원들 사기만 떨어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매각 실패에 조직 분위기가 흐트러진 대표적인 계열사가 CJ푸드빌이다.
CJ푸드빌은 2019년 커피 프랜차이즈 투썸플레이스를 분할 매각했고, 제빵 프랜차이즈 뚜레쥬르도 매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모펀드 칼라일과 가격에 대한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뚜레쥬르 매각은 결렬됐다. CJ푸드빌은 저수익 점포 정리, 배달과 레스토랑간편식(RMR) 사업 강화 등의 전략을 펼치는 중이다. CJ 관계자는 “뚜레쥬르는 우리가 성장시킨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면서까지 무리하게 매각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고, 매각 철회 이후 뚜레쥬르 실적은 개선되고 있다”고 밝혔다.
2022년 상장 예정인 CJ올리브영에 대한 기대감도 예전 같지 않다. 지난해 매출이 5% 넘게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영업이익은 늘었다. 하지만 올해도 이익이 늘지는 미지수다. 코로나19 영향 등으로 드러그스토어 시장이 정체 양상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현 회장의 자녀인 이경후 CJ ENM 부사장과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은 각각 CJ올리브영 지분 4.27%, 11.09%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승계를 위한 상장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이런저런 복잡한 사정 때문에 CJ그룹이 궁극적으로는 CJ올리브영도 매각 대상에 올리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계열사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은 영화관 업체 CJ CGV다. CJ CGV는 지난해 매출 5800억 원, 순손실 7520억 원을 기록해 매출보다 순손실 규모가 더 컸다. 코로나19 재확산 이슈가 불거지면서 올해도 1000억~2000억 원의 순손실이 예상된다. CJ CGV는 지난 6월 3000억 원 규모의 영구채 발행으로 한때 1400%가 넘었던 부채비율을 300%대까지 낮췄다.
#그냥저냥 생존하느냐, 월드 베스트 노리느냐 갈림길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손인 이재현 회장은 CJ제일제당 하나만 물려받아 굴지의 대기업 집단을 이뤄냈다는 자부심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2030년까지 3개 이상의 사업에서 세계 1등이 되겠다는 ‘월드 베스트 CJ’를 천명한 2019년만 해도 이재현 회장에게 자신감이 보였다.
하지만 현재 기준에서 보면 이미 당시에도 고점이 지난 상황이었다. 지난해 CJ(주) 순이익이 2000억 원대까지 감소한 것은 코로나19 여파가 컸지만 코로나19가 아니었어도 CJ그룹의 주요 사업군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이커머스 돌풍은 원래 있던 흐름이 가속화된 계기였고, CJ그룹은 이에 대한 대비가 늦었다. 바이오나 친환경 먹거리 등은 CJ그룹이 진작 뛰어들 수 있었던 신사업이지만 속도가 더뎠다는 평가가 나온다. 콘텐츠업체 CJ ENM은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지만 국경 간의 장벽이 계속 허물어지면서 너무나 많은 경쟁사와 맞붙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CJ 측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CJ 관계자는 “이커머스 트렌드를 선도하기 위해 CJ대한통운이 풀필먼트 역량을 국내 물류업계에서 독보적으로 강화해 왔으며 CJ제일제당은 100% 해양 생분해 플라스틱 소재(PHA)를 개발해 상용화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콘텐츠는 글로벌 경쟁이 당연시되는 만큼 반대로 세계 시장에서의 기회도 많으며, CJ ENM은 이를 위해 5년간 5조원 투자 방침을 밝히는 등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미래다. 전문가들은 CJ그룹이 될 만한 사업에 집중하는 월드 베스트 전략을 위해서라면 매각할 사업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CJ ENM을 중심으로 콘텐츠에 집중하거나 CJ대한통운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해 물류 전문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식의 전략을 추천한다.
갈림길에 선 대표적인 기업은 CJ CGV다. CJ CGV는 위탁 매장을 늘리는 식으로 덩치를 키웠지만 앞으로는 수익성 위주로 운영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올해 초 선임된 허민회 CJ CGV 대표는 그룹 내 2인자로 지목되는 재무 전문가다. 돈 되는 매장에만 집중하면 CJ CGV의 글로벌 시장 공략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월드 베스트 후보 중 하나였던 CGV는 지역 사업자가 된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CJ CGV나 CJ푸드빌은 덩치를 줄이고 비용을 통제하면 흑자 전환이 가능할 수 있겠지만 그냥저냥 살아남는 셈”이라며 “CJ그룹도 다른 대기업처럼 새로운 먹거리를 모색해야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CJ 관계자는 “일시적으로 부진한 계열사들이 있지만 사업 전략보다는 코로나19라는 외부적 악재에 기인한 것이 크다”며 “CJ제일제당의 화이트바이오, CJ대한통운의 풀필먼트 등 미래 먹거리도 계속해서 찾아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