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여행·돌잔치도 선수금 50% 예치해야…공정위 ‘깡통 상조’ 피해 방지 시행령 개정 입법예고
#깡통 상조 피해 잇따라
할부거래법에 따르면, 선불식 할부계약은 ‘대금을 2개월 이상의 기간에 2회 이상에 걸쳐 나눠 지급한 뒤에 용역이나 재화를 받는 계약(제공 시기가 확정된 경우는 제외)’이다. 기존에는 ‘장례 또는 혼례를 위한 용역 및 재화’로 적용 대상이 한정돼 있었다. 그러다 이번 개정령에 ‘여행을 위한 용역(제공시기가 확정된 경우 제외) 및 이에 부수한 재화’, ‘가정의례(장례·혼례는 제외)를 위한 용역(제공시기가 확정된 경우 제외) 및 이에 부수한 재화’를 추가했다.
한마디로 부대 혜택인 크루즈 여행상품으로 유인해 상조 상품을 팔고 있는 상조업체들이 이번 개정령의 직접적인 법 적용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서비스 제공시기가 확정된 경우는 제외한다는 점에서 여행사의 직접 판매는 할부로 구입한다고 해도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소비자들은 잘 몰랐겠지만 그동안 상조회사의 크루즈 여행이나 기타 가정의례 상품 판매는 할부거래법 적용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때문에 기존의 선불식 할부거래업체들인 상조업체들은 상조 상품을 주력으로 판매하면서도 상조를 사용하지 않을 시 크루즈 상품 등을 사용할 수 있다는 조건을 붙여 예치금 50%의 기준을 피해가는 우회적이고 편법적인 상조 판매를 확대해왔다.
상조 상품은 할부거래법이 적용되어 선수금의 50%를 은행이나 공제조합에 예치하게 돼 있는데, 크루즈 상품은 선수금 예치 의무가 없어 자금 유용이 가능했다. 이 때문에 자금의 부실한 운영으로 인해 상조회사가 폐업할 시 소비자 보호에도 구멍이 뚫려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돼 왔다. 크루즈 여행 등 여행 서비스가 개정안에 추가한 주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상조업체 등록 요건이 자본금 3억 원에서 15억 원으로 증액된 이후, 자본금 증액 여력이 없는 영세 업체들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부실 상조업체가 폐업하면서 크루즈를 우선으로 상품에 가입했던 소비자가 한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도 발생했다. 최근에는 선수금만 1000억 원이 넘는 상조업체인 한강라이프가 크루즈 사업을 하는 업체에 인수되면서 상조업체의 허점에 대한 목소리도 더 커졌다.
공정위에 따르면 상조업체를 비롯한 선불식 할부거래업자는 2015년 228개에서 2019년 86개로 대폭 줄어들었고 2021년 6월 말 기준으로는 75개가 등록되어 있다. 상조업체 가입자 수는 2015년 3월 404만 명에서 2018년 3월 516만 명, 2021년 3월 684만 명으로 늘었다. 가입자 선수금은 2015년 3조 5249억 원에서 2018년 4조 7728억 원으로 늘었고 2021년에는 6조 6649억 원에 이르렀다. 현행법상 상조회사는 소비자에게 거둬들인 총 수입의 50%를 조합에 예치해야 하지만 공제조합에 예치된 총 금액은 50%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소비자가 상조 업체의 폐업·등록 취소 등의 사실을 제때 인지하지 못해 기간이 지나가 버려 예치기관으로부터 선수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최근 상조 회사 (주)바라밀굿라이프는 512건의 선불식 상조 계약과 관련, 소비자들로부터 미리 받은 선수금 총 9억 7329만 원 중 32.4%인 3억 1562만 원만 예치한 채로 영업을 지속해 할부거래법 제34조 제9호를 위반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법인과 대표이사를 검찰 고발하고 시정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공정위는 “일부 상조업체가 크루즈 상품 및 가정의례 상품 등을 함께 판매하고 있으나, 현행 규정상 해당 상품의 판매에 대해서는 선불식 할부거래업 등록과 선수금 예치 등 할부거래법 상의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크루즈 등 여행상품과 가정의례상품을 선불식 할부계약에 해당하는 재화로 추가해 소비자를 두텁게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소급 적용은 어려워
문제는 이미 가입한 상품에 대한 선수금을 보호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개정안은 8월 23일까지 입법예고 절차를 거친 뒤 국무회의를 통과해야 시행된다. 공정위가 소급 적용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기존에 고객을 모집했던 선불식 할부거래업체들, 즉 상조업체들이 이전에 크루즈 상품을 내세워 판매했던 상조 계약에 대해서는 선수금 예치 의무가 없다.
국내 웬만한 상조업체에서 크루즈 상품을 판매·운영해왔지만 이미 계약한 소비자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대책이 없다. 업계에서는 관련 내용을 소급 적용했을 때 뒤따르는 파장이 너무 크다는 입장이다.
한 상조업체 관계자는 “크루즈 상품 등을 끼고 있는 상조회사들은 보통 상조 상품을 팔 때 크루즈 상품 판매를 미끼로 우회 계약해 판매하기 때문에 선수금 예치를 고려하지 않는다. 해마다 사업 계획을 짤 때도 선수금 예치를 비껴가기 위한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공정위가 과거에 계약한 상품까지 이번 법 개정에 소급 적용한다고 했다면 혼란이 매우 컸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당장 쓰지 않아도 되는 고객들의 선수금이 쌓이니 상조회사가 그 돈을 엉뚱하게 굴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자회사 설립이나 기업 인수, 돈을 굴리기 위한 투자 등에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현장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법 시행 이후 체결된 계약부터 적용하고, 예치금 보유 비율도 첫해 10%에서 시작해 매년 10%씩 올려 최종적으로 50%에 이르도록 하는 완충장치를 뒀다”고 설명하며 “소비자 피해 예방을 위해 선수금 미보전 등 법 위반 여부를 지속적으로 점검해나가는 한편, 시장 모니터링을 더욱 강화해 반복적으로 법적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 제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