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블록버스터도 코미디 연기도 모두 처음…인턴 역할 위해 쇼박스 막내에 생생 조언 들어
“제 나이대의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제가 느끼던 사회생활에서의 힘든 부분, 고충, 의식 이런 것들을 은주를 통해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일반적인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서 연기에 좀 더 자연스러움이 필요할 것 같았죠. 그래서 쇼박스(‘싱크홀’ 배급사) 막내 인턴 친구를 만나게 해 달라고 해서 그 친구랑 밥도 먹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면서 실제 회사 생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걸로 연기에 도움을 많이 받았죠(웃음).”
극 중 김혜준이 연기하는 은주는 3개월 차 인턴사원이다. 정직원이 되기까지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입장이지만 그 나이대보다 야무진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같은 팀 과장 동원(김성균 분)의 집들이에 직속 선배인 김 대리(이광수 분)와 함께 갔다가 빌라 한 동과 함께 지하 500m 싱크홀로 추락하지만 집단 패닉 속에서도 의연하게 행동하며 숨겨왔던 에이스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사실 영화에서 보면 은주가 약간 뭔가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뭐가 하나 빠진 것 같아 보이기도 해요(웃음). 그런데 아마 은주는 학교나 이런 곳에선 굉장히 똑부러지고 열심히 하고 자기계발도 뛰어난 친구였을 것 같아요. 그런 대부분의 학생들이 입사할 땐 원대한 꿈을 가지고 들어가지만 ‘아기’부터 시작하게 되잖아요. 은주에겐 아마 그런 전사가 있지 않았을까(웃음). 은주를 연기하면서 ‘진취적으로 보여야지’라고 생각하기보단 그저 모든 상황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기 위해 하나하나 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리려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이번 ‘싱크홀’은 김혜준에겐 모두 첫 도전이라는 점에서도 특별한 작품이다. 재난 블록버스터도, 코미디 연기도, 같이 호흡을 맞춘 차승원·김성균·이광수와도 모두 처음이다. 특히 자신조차 반신반의했던 첫 코미디 연기는 언론배급시사회에서 호평을 받으며 아주 조금 자신감을 심어줬다는 게 김혜준의 이야기다. 물론 자신의 눈으로 보기엔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코미디가 되는’ 배우라는 수식어는 앞으로 쌓아 올릴 그의 필모그래피에 분명 큰 힘이 될 것이다.
“이번에 아무래도 코미디 끝판왕이신 선배님들과 연기를 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하는 모든 것들이 너무 부족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었어요(웃음). 시사회 때 영화를 보는데도 선배님들 코미디 연기는 진짜 너무 재미있는데… 그런 점에서 제가 한 연기는 제 눈으로 볼 때 참 많이 아쉽죠. 하지만 한편으론 정말 많이 배우는 경험이 됐던 것 같아요.”
직속 선배라는 역할 때문인지 가장 붙어있는 신이 많았던 이광수와의 쉴 새 없는 티키타카도 이 영화 속 빼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영화 속에서 느꼈던 동료애와 전우애가 현장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던 것이 이런 완벽한 호흡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특히 대중들에게 익숙한 예능 속 이광수가 아닌 배우 이광수의 연기를 향한 매사 진지한 태도는 김혜준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으로 보인다.
“촬영 전에는 광수 선배와 제가 그렇게까지 친하지 않았고 서로 많이 바빴기 때문에 만나서 밥을 먹거나 그런 시간은 많이 못 가졌어요. 대신 통화를 많이 하고 같이 찍어야 하는 신에서 ‘대사를 이렇게 수정해 보면 어떨까’ ‘리액션은 어떻게 할까’ 이런 진지한 대화들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아요(웃음). 또 시나리오 상 대화에서는 진짜 상사와 후배처럼 나오기 때문에 완전한 티키타카보단 너무 과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사실 저희는 촬영 끝나면 항상 밥도 같이 먹고, 술자리도 가지면서 대화도 많이 하고 장난도 엄청 많이 치고 그랬거든요(웃음). 그렇게 함께 보낸 시간이 너무 많아서 자연스럽게 친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재난 블록버스터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보니 현장을 두고 모든 배우들이 입을 모아 “인생 중 가장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곳”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스크린 속 장면들이 CG가 아닌 완벽하게 구현된 세트장이었고, 주연 배우들의 힘들어 하는 얼굴들은 연기가 아니라 ‘진짜’였다는 뒷이야기도 있었다. 그곳에서 유일한 홍일점으로 마지막까지 활약한 김혜준을 보고 선배 배우들은 “정신력으로 정말 강인한 친구”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기도 했다. 이에 김혜준은 쑥스러워하면서도 “강하게 클 수밖에 없었던 현장 덕분”이라며 선배들에게 그 공(?)을 돌렸다.
“친구들이 저에 대해 말해주는 걸 들어보면 ‘안 그런 거 같은데 되게 이성적이고 멘탈이 세다’고 그래요. 저도 사실은 상처를 많이 받고 작은 말에도 흔들리고, 또 의미를 부여하고 그러는데, 그런 일들이 쌓이더라도 완전히 무너지진 않아요. 현장에서는 나이 차이를 떠나서 선배님들이 친구들처럼 장난을 많이 걸어주셨고, 그렇게 많은 놀림과 모함에서 살아남으려면 저도 똑같이 해야 하기 때문에 막 티키타카하면서 같이 놀았거든요(웃음). 성균 선배님은 아마 그걸 보고 강인하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그런 김혜준의 강인함은 자기 긍정에서부터 나왔다. 그 나이또래처럼 아주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기도 하고, 바늘 같은 말도 비수처럼 꽂히는 때도 있었지만 그는 늘 웃는 얼굴로 그 난관들을 넘어왔다. 2019년 ‘미성년’으로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수상, 이듬해인 2020년 MBC 연기대상에서 드라마 ‘십시일반’으로 여자 신인상을 수상하며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고 있지만 그만큼 어깨에 올려지는 부담감도 상당할 터다. 그 부담감 역시 긍정적으로 즐기겠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제가 사실 마냥 긍정적이진 않거든요(웃음). 걱정이 정말 많은 편이에요. 저에 대해서 ‘아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많고 부정적인 부분도 많아요. 그런 상황에서 긍정적인 척이라도 하려 하는 것들이 제 자존감을 높이고, 상처 난 멘탈을 회복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긍정적으로 말하고 또 생각하면 그냥 긍정적인 생각이 들거든요(웃음). 또 부담감 극복보단, 제 롤이 커지면서 부담감은 좀 더 가져도 된다고 생각해요. 연기를 그저 마냥 신나서 하고 그런 게 아니니까요. 책임 의식을 가지고, 보시는 분들에게 공감을 더 드리기 위해 그 정도 부담감은 가지고 연기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연기하는 순간에 부담감을 가진다기보단 ‘잘해야지!’ 하고 현장에선 즐겁게 털어내면서 연기하죠(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