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앱 출시 등 이종산업 진출 활발…일각, 수익성 기대보단 이사회 합류 포석 관측
#전례 없는 신사업 퍼레이드, 재계 눈길
한진은 최근 카카오모빌리티와 손잡고 개인 택배 서비스를 시작했다. 개인이 카카오T에 들어가 내 '퀵·택배' 메뉴를 누르면 택배기사가 집 앞에서 택배를 수령해 원하는 곳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다. 양사는 향후 택배차량 자율주행 사업, 대형 빌딩 주차장을 활용한 무인로봇 배송 사업 등 신규 사업 모델도 함께 발굴하기로 했다. 앞서 여행지에서 필요한 렌털 상품을 숙소까지 배송해주는 서비스도 3월 출시했다.
이종산업 진출 움직임도 활발하다. 한진은 올 4월 게임과 택배를 결합한 ‘로지테인먼트’라며 모바일 게임 ‘택배왕아일랜드’를 출시했다. 일회용품 재자원화 플랫폼 ‘플래닛’을 출시하고, 스타트업과 공유어장 MOU도 맺는 등 연초부터 조현민 부사장의 진두지휘 아래 신사업과 관련해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조 부사장이 자신의 직책인 미래 성장 전략 및 마케팅 총괄과 관련한 크고 작은 사업들을 선보이며 내외적 입지를 넓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본업인 물류 투자도 늘리고 있다. 한진은 2850억 원을 들여 2023년 가동을 목표로 대전종합물류단지 내에 스마트 메가 허브터미널을 짓고 있다. 여기에 화물차 568대가 동시에 상·하차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고, 인공지능(AI) 솔루션과 3D 자동 스캐너, 택배 자동 분류기 등 설비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한진은 이 허브를 통해 풀필먼트(상품 보관·포장, 출하, 배송 등 일괄 처리) 서비스를 제공해 시장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메가 허브터미널 구축은 물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작업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이후 택배기사는 접수 물건을 수집해 특정 장소에 모으는 집하→지역 서브터미널(간선상차)→중앙 허브터미널(간선상·하차)→지역 서브터미널(간선하차)→배송의 프로세스를 밟는다. 이와 달리 메가 허브센터가 있으면 고객의 상품 주문 시 풀필먼트 센터에서 허브터미널로 상품이 곧바로 이동하고 허브터미널 내 자동 화물 분류기에서 분류된 뒤 기사들이 전국으로 배송한다. 처음 두 단계 과정(집하→서브터미널)을 건너뛰기 때문에 배송 시간이 빨라진다.
현재 메가 허브터미널을 가동 중인 택배업체는 CJ대한통운이 유일하다. 한진도 이와 같은 시스템을 도입해 시장점유율을 2023년까지 20%로 늘리겠다는 것. 현재 택배시장 전체 물량은 CJ대한통운이 절반을 처리 중이고, 나머지는 한진과 롯데가 13%를 기록하며 2위 자리를 다투고 있다. 물류업계 한 관계자는 “B2B 기업 물류는 소품종 다량 상품 위주지만, B2C 이커머스 물류는 종류와 물량 모두 많아 물류센터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지역별 거점을 마련하고 이커머스 플랫폼 입점업체들의 다양한 배송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택배사마다 메가 허브 구축에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단은 사내이사 가능할까
조현민 부사장의 이러한 행보는 경영 능력을 입증하기 위한 작업으로 풀이된다. 한진은 올 3월 정기 주총에서 조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고자 했지만 결국 안건을 상정하지 않았다. 2대 주주인 HYK파트너스 측이 조 부사장의 승진을 문제 삼았고 사외이사·비상무이사 추천과 배당확대 요구 등 경영 참여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당시 조현민 부사장이 성과라고 할 만한 실적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 평가다.
내년 정기주총까지는 주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조현민 부사장의 신사업 퍼레이드가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언론 노출 빈도도 덩달아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조 부사장은 7월 열린 대전종합물류단지 허브 터미널 기공식과 카카오모빌리티와의 협약식에 얼굴을 내미는 등 적극적인 대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재계에서는 조현민 부사장이 내년 주총에서 사내이사 등극에 성공하면 대표이사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진은 현재 노삼석·류경표 공동대표 체제다. 이중 류경표 대표는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와 이력이 겹친다. 두 사람 모두 서울대와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출신의 재무전문가다. 류경표 한진 대표가 석태수 대표를 이어 한진칼 대표직을 맡고, 공석이 된 자리에 조현민 부사장이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꾸준히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석태수 대표는 조양호 전 회장의 오른팔이고 류경표 씨도 조 전 회장의 라인으로 과거 한진그룹이 에쓰오일 지분을 매각하기 전 에쓰오일 부사장을 지낸 바 있다”며 “그룹이 조원태 회장 체제로 바뀌면서 아버지 라인을 정리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류경표 씨는 최근 그룹 내 큰 ‘딜’에서 좋은 의견을 제시해 조원태 회장의 신임을 얻었다는 후문이 있다”라고 귀띔했다.
조현민 부사장의 행보에 대한 업계의 평가는 엇갈린다. 우선 신사업들이 본업과의 연관성이나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오너 실적 쌓기 수단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뒤따른다. 게임 앱 출시가 대표적 예다. 카카오와의 제휴도 홍보에 그칠 수 있다. 택배업계 물량 절대 다수가 B2C 전자상거래 물량으로, 개인택배 물량은 1% 안팎에 그친다. 수익성 제고나 시장점유율 확대에 미칠 영향력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 카카오와 함께 추진하겠다는 자율주행 택배서비스 등 미래 사업도 중장기 방향에 대한 선언적 의미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고객 물량은 개별 단가가 2000~3000원 정도로 낮지만 C2C 개인택배 물량은 기본 4000~5000원이란 점에서 카카오와의 제휴가 일부분 수익성 개선에 기여할 수는 있다”면서도 “개인고객은 기사들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물량이 적고 일일이 상품 1~2개를 집하해야 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진다. 카카오와의 제휴가 편의점 택배 이상의 개인 물량을 모집하는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짚었다.
조현민 부사장이 보다 힘줘야 할 부분은 본업의 수익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진은 올해 1분기 택배사업에서 33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했다. 노사정이 구성한 사회적 합의기구 협의 결과에 따라 택배업계 3사가 분류지원인력을 투입하면서 수익성에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이다. 한진 롯데 CJ대한통운 3사는 총 6000명의 분류 지원 인력을 투입하고 자동화 설비 투자를 확대하기로 약속했다. 이행 결과 이들 모두 1분기 매출은 늘었지만 수익성은 떨어졌다. 앞으로도 분류지원인력 관련 추가비용이 계속 들어갈 수밖에 없다.
물류업계 다른 관계자는 “한진은 모기업 경영권 분쟁 사태로 풀필먼트 센터 등 시설투자에 나서지 못했고 지금에서야 막 구축해나가는 단계”라며 "주주들에게 인정받으려면 당장 매출 증대와 수익성 제고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없는 신사업보다는 설비 투자 및 플랫폼 업체들과의 제휴 확대에 힘써 물동량을 늘리고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