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변상일 협공 뿌리치고 5관왕 달성…세계대회 춘란배·응씨배 결승 앞둬
8월 7일 경기도 판교 K바둑 스튜디오에서 속개된 제44기 SG배 명인전 결승3번기 3국에서 신진서 9단이 변상일 9단에게 223수 만에 불계승, 1패 후 2연승으로 정상에 올랐다. 명인전 우승은 신진서의 올해 국내기전 세 번째 타이틀이며, 프로 통산 19번째 타이틀이다.
신진서는 이에 앞서 2일 끝난 제26기 GS칼텍스배 결승5번기 5국에서 역시 변상일 9단을 상대로 173수 만에 흑불계승을 거두고 종합전적 3-2로 타이틀을 차지했었다.
이로써 박정환과 변상일의 협공을 모두 풀세트 접전 끝에 뿌리친 신진서는 용성전, KBS바둑왕전, 쏘팔코사놀배, GS칼텍스배, 명인을 쟁취하며 5관왕 달성에 성공했다.
#선취점을 지키지 못한 변상일
지난 7월 13일 제2기 쏘팔코사놀 최고기사결정전 도전5국에서 신진서가 박정환에게 3-2로 승리하자 기가(棋街)의 관심은 신진서와 변상일이 맞붙는 GS칼텍스배 결승5번기와 명인전 결승3번기로 옮겨갔다.
랭킹2위(박정환)가 패했으니 이번엔 랭킹3위 변상일이 신진서를 상대로 갖는 결승8번기는 어떤 결과를 낳을지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첫 무대는 GS칼텍스배. 이번에도 신진서의 압도적 승리를 내다보는 전망이 많았다. 나이로나 역대 전적(17승 3패)으로 보나 절정의 신진서를 잡기에 변상일은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변상일은 1국을 잡아냈고 사람들은 어쩌면 변상일이 ‘제2의 서봉수’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국과 3국을 잇달아 내준 변상일은 4국에서 승리하며 타이틀을 목전에 뒀으나 아쉽게도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했다. 그리고 이 흐름은 명인전까지 이어져, 명인전에서도 1국을 쟁취했음에도 2, 3국을 잇달아 패하며 신진서의 5관왕을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됐다.
#세계대회 평정 나서는 신진서
바둑TV에서 명인전을 해설한 안형준 5단은 “기사들 사이에서 신진서 9단의 이른바 ‘흔들기’는 극강으로 꼽힌다. 이 흔들기의 원조는 조훈현 9단이고 이세돌 9단의 흔들기도 유명했지만, 신진서의 그것은 당해보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력적인데 이번 결승 시리즈에서 변상일 9단이 견뎌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GS칼텍스배와 명인전 모두 끝까지 기회가 있었고 비록 최후의 고비를 넘지 못했지만 거기까지 간 것도 대단한 성과”라며 “당장은 쓰라린 패배가 아프겠지만 틀림없이 변상일 9단이 한 차원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록 박정환과 변상일이 패했지만 희망을 보았다는 시각도 있다. 바둑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대회가 열리지 못해 신진서 9단의 실력을 바둑팬들이 체감하기 어렵지만 현 세계 최강은 단연 신진서 9단이다. 이건 ‘국뽕’에 취해 하는 말이 아니라 사실이며, 현재 유일하게 세계 랭킹을 발표하고 있는 프랑스의 고레이팅에서도 8월 현재 3804점의 신진서 9단을 1위로 올려놓고 있다. 그 뒤가 3710점의 중국 커제 9단이고 그 다음이 3691점의 박정환 9단이다. 2위와 3위의 점수 차가 얼마 되지 않는 데 비해 1위와 2위는 100점 가까이 차이가 난다. 그만큼 현재 신진서의 위치가 독보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신진서를 상대로 변상일과 박정환이 풀세트 접전을 치러냈다는 것은 한국바둑의 층이 그만큼 두터워졌음을 뜻한다. 코로나가 끝나고 세계대회가 다시 재개되면 한국은 질적인 면에서는 물론 양적인 측면에서도 중국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신진서는 오는 9월 중국 탕웨이싱 9단과 세계대회인 춘란배 결승3번기를 치르게 된다. 또 춘란배가 끝나면 바둑 올림픽이라 할 수 있는 응씨배(우승상금 40만 달러, 약 4억 4000만 원)에서 역시 중국의 셰커 9단과 우승을 다툴 예정(일정은 미정)이다.
[승부처 돋보기1] 신진서, 바꿔치기로 위기에서 탈출
제44기 명인전 결승3번기 제2국. 흑 변상일 9단, 백 신진서 9단. 220수끝 백 불계승.
#실전1
60수 언저리부터 불리했던 변상일이 거의 따라잡은 상황. 그러나 흑1의 날일자가 패착이 됐다. 흑3이 절대 선수라고 믿은 것이지만 백이 아래 넉 점을 포기하고 8로 중앙을 에워싸자 차이가 확 벌어지고 말았다.
#참고도1
흑은 확실히 1을 선수해뒀어야 했다. 지금이라면 백2로 받지 않을 수 없고 다음 5로 뛰었으면 알 수 없는 승부였던 것.
[승부처 돋보기2] 빗나간 급소
제44기 명인전 결승3번기 제3국 흑 신진서 9단 백 변상일 9단 223수끝, 흑 불계승
#실전2
좌변이 승부처. 백1은 공격의 급소처럼 보이지만 초점이 빗나갔다. 백은 A의 단점 보강이 시급했던 것. 백7로 상변을 접수했지만 흑8이 오면서 하변 백과 상변 백모양도 엷어져 일거에 바둑을 그르치고 말았다.
#참고도2
백1이 눈에 보이지 않는 급소였다. 이것으로 A의 단점은 해소. 흑2로 보강하면 그때 백3으로 상변을 챙긴다. 흑4·6은 반상최대지만 7로 귀에 맛을 붙여둔 다음 9로 중앙을 슬슬 깼으면 백이 2, 3집 유리하다는 게 인공지능(AI)의 결론이었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