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특정 세력 윤석열 등에 업고 주도권 싸움 관측…이준석 ‘킹메이커’ 김종인 영입으로 대응할 수도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예비후보가 지난 7월 25일 ‘치맥회동’을 할 때만 해도 두 사람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5일 후 이준석 대표가 전남 여수·순천지역 방문 일정을 소화하며 자리를 비운 사이 윤석열 후보가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찾아 기습 입당을 하면서 ‘이준석 패싱’이 제기됐다.
이어 윤 후보가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봉사활동, 대선 예비후보 전체회의 등에 불참하면서 둘 사이의 ‘신경전’ ‘힘겨루기’ 등 온갖 해석이 나돌았다. 윤 후보는 경선준비위원회(경준위)가 개최하는 대선 후보 1차 정책토론회에도 참석 여부를 확정 짓지 않고 있다.
특히 윤석열 후보 측 인사가 다른 후보에게 ‘봉사활동 행사에 안 가면 안 되느냐’고 보이콧을 종용했다는 말까지 나오면서 논란은 증폭됐다. 이준석 대표는 “사전에 상의했어야 한다.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 “갈수록 태산” 등의 표현을 쓰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심지어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이준석 대표 탄핵을 암시하는 발언까지 나왔다. 윤 캠프 정무실장인 신지호 전 의원은 8월 11일 CBS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당 대표 결정에 대한 후보들 간 입장이 엇갈린다’는 질문에 “당 대표의 결정이라도, 아니 대한민국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것은 탄핵도 되고 그런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이를 두고 이준석 대표는 자신의 SNS에 “탄핵 이야기까지 드디어 꺼내는 것을 보니 계속된 보이콧 종용과 패싱 논란, 공격의 목적이 뭐였는지 명확해진다. 대선을 앞두고 당 대표를 지속적으로 흔드는 캠프는 본 적이 없다 했는데 알겠다”고 반발했다.
윤석열 캠프에서는 아직 국민의힘 예비후보 등록 전이기 때문에 당 내 행사에 반드시 참여할 의무는 없다고 반박한다. 실제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경선을 준비하는 기구인 경준위가 정책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월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지난 11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후보 측도 반발하고 최고위원인 나도 반발하고 있는데, 권한이 아니라고 그만큼 이야기해도 막무가내로 이런 일을 벌이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며 “경준위가 출범할 때 (토론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그런 것 하겠다고 보고한 적도 없고, 용인한 적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토론회를 개최해 후보자들에 나오라 하고, 안 나오면 그것을 근거로 (지도부 패싱이라고) 비판을 한다”고 꼬집었다.
이준석 대표와 경준위는 토론회 개최 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신의 주도로 경선을 진행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읽힌다. 국민의힘 한 재선의원은 사석에서 “취임할 때만 해도 신드롬까지 일으켰던 이 대표의 입지가 현재 많이 좁아진 상태다. 구설이 계속되면서 리더십이 흔들렸다. 이 대표로선 가장 큰 이벤트인 경선에서 존재감을 발휘해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경준위가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이 때문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후보의 현 스탠스가 득보단 실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굳이 이준석 대표와 다툴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국민의힘 당헌 제74조에 따르면 대통령 후보자는 선출된 날로부터 대통령선거일까지 선거업무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당무 전반에 관한 모든 권한을 우선으로 가진다. 따라서 오는 11월 9일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최종 대선후보가 선출되면, 그가 이준석 대표보다 앞서 당 전반에 대한 의사를 결정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석열 후보가 현재 지지율을 유지해 국민의힘 최종 대선 후보가 되면 자연스럽게 당 주도권을 쥘 수 있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와 갈등이 부각되면서 지지율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윤 후보 입장에서는 현재 이 대표와 각을 세울 이유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특정 세력이 윤석열 후보를 통해 이준석 대표 ‘흔들기’에 나서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앞의 국민의힘 재선의원의 말이다.
“이준석 대표 체제로는 대선이 힘들다는 공감대가 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이면엔 대선 이후 지방선거 등까지 염두에 둔 치열한 세력 다툼이 깔려 있다. 당내 지원 세력이 전무한 이준석 대표 체제 때 유력 주자인 윤석열을 등에 업고 당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정치에 막 입문한 윤석열 후보로선, 이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기가 상당히 어려울 수 있다.”
실제 이준석 대표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는 윤 후보보다 주변 인사들에게서 나왔다. ‘친윤계’인 5선 정진석 의원은 지난 6일 “멸치, 고등어, 돌고래는 생장 조건이 다르다”며 ‘돌고래’인 윤 후보와 다른 대선주자들을 동급으로 대우해선 안 된다고 요구했다. 정점식 의원을 비롯한 ‘친윤’ 중심의 재선의원 16명은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준석 대표를 향해 “내부를 향해 쏟아내는 말과 글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대선주자 측 모두가 공감하는 중립적이고 공정한 경선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후보는 이준석 대표와 갈등을 수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신 전 의원 발언 논란 이후 윤 후보가 직접 이 대표에 전화를 걸어 “신 부실장을 밖에서 들릴 정도로 많이 혼냈다. 이해해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자신의 SNS엔 이 대표와 손을 잡고 걷는 사진을 올리며 “각자 입장에서 말하는 거 다 담아두고 하면 어떻게 정치하겠나. 억측과 객관적 사실관계가 없는 갈등설은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고 진화에 나섰다.
정치권에서는 이준석 대표가 윤석열 후보 견제에 나선 것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야권의 한 전략통은 “국민의힘 경선에 출마선언을 한 후보가 10여 명이다. 그런데 윤석열 후보에 지지율로 견줄 수 있는 후보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경선이 일방적으로 흐를 수 있다. 윤석열 후보 측에서도 안일하게 대응할 수도 있다”면서 “이를 막기 위해 이준석 대표가 직접 나서 경계에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준석 대표가 ‘킹메이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영입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여기서 비롯된다. 윤석열 캠프의 ‘흔들기’에 대한 응수 차원이다. 김 전 위원장을 앞세워 경선 주도권을 쥐겠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당내엔 여전히 김 전 위원장을 따르는 의원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특정 계파가 없는 이 대표로선 천군만마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더군다나 김 전 위원장은 윤석열 후보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여러 차례 내비치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이 윤석열-이준석 간 파워게임의 키맨으로 꼽히는 이유다.
하지만 이준석 대표의 대선 경선 관리의 공정성 시비가 변수다. 전당대회 때부터 따라다닌 ‘친유승민 꼬리표’를 떼지 못할 경우 이러한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지난 3월 유튜브 채널 ‘매일신문 프레스18’에 출연해 “(주변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서울시장이 되고 윤 전 총장이 대통령이 되면 어떡할 거냐고 물었다. (그러면) 지구를 떠나야지”라고 발언한 게 뒤늦게 알려지며 뭇매를 맞고 있다. 또 “나는 대통령 만들어야 될 사람이 있다니까. 유승민”이라고까지 말해, 이 대표가 유승민 전 의원을 밀어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이 대표가 토론회나 압박면접, 검증단 등을 통해 윤 전 총장을 압박하려 한다는 시선도 비슷한 맥락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의원은 “이준석 대표도 경선 투표를 통해 선출된 당 대표다. 국민의힘 구성원들이 인정해줘야 한다. 또 과거 발언도 윤석열 후보가 당에 입당할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한 말이다. 상황이 달라졌는데 다시 거론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이준석 대표도 자신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대선 경선을 자기 주도로 하고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는 태도를 고칠 필요가 있다. 우리 당의 후보를 당 대표가 깎아내리면 정권교체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