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부터 ‘응답하라’ 거쳐 첫 코믹 재난 블록버스터 도전…“아이들에게 히어로 아빠 보여주고파”
맨손으로 재난을 헤쳐 나가는 ‘히어로’ 아빠로 아이들의 어깨를 한껏 높여줄 시간이 왔다. 매 작품마다 대중들을 웃기고 울렸던 ‘팔색조’ 배우 김성균(41)이 영화 ‘싱크홀’로 한국형 코믹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에 첫 도전한다. 서울 입성과 함께 11년 만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가 한 순간에 지하 500m 초대형 싱크홀로 집과 함께 빠져 버린 이 시대의 가장 ‘동원’이 그의 새로운 캐릭터다.
“싱크홀이란 게, 영화를 찍기 전까진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죠(웃음). 주변에서 겪어보지도, 들어보지도 못 하고…. 뉴스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재난인데 그전까진 생각도 안 해보다가 촬영에 들어가면서 몇 가지 상상해 본 게 있어요. 땅 속 깊이 더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용암을 조심해야 되지 않을까(웃음)! 또 그런 음모론 있잖아요. 괴생명체, 땅 속 세계 이런 거 떠올리면서 괴물들과 싸우는 상상도 하고(웃음). 상상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소재인 것 같아요.”
이제까지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싱크홀이란 소재에,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간신히 마련한 집이 재난에 휩쓸려 사라졌다는 ‘비현실 속 현실 공포’가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김성균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도 그 소재의 신선함이었다고 했다. 특히 그 재난 속에서 아들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연기해야 한다는 점이 세 아이를 키우는 김성균의 가슴을 뛰게 했다.
“아무래도 부성애 감정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아역 배우와 함께 밥 먹고, 놀이동산 가는 일상적인 장면이 아니라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같이 데리고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실제 아들을 내 품에 안고 기어 올라가는 느낌도 있고, 현장에서 다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챙기는 과정에서 실제 ‘내 새끼’ 같단 느낌이 많이 들더라고요. 내 새끼 같다 보니까 정말로 내 새끼를 대하듯 했던 것 같기도 하고(웃음).”
캐릭터에 말 그대로 ‘완전 몰입’했기 때문일까. 극 중 김성균이 보여주는 연기는 마치 실제 상황처럼 보이는 ‘리얼’ 그 자체였다. 극히 일부분만 세트로 처리하고 나머지는 CG로 뒤덮어 버릴 것이란 예상과 달리 완벽한 세트장이 만들어져 있던 것도 그의 몰입에 한몫했다. 거기다 리얼리티를 추구한 김지훈 감독의 고집 덕에 현장은 물과 진흙, 그리고 먼지들로 늘 아수라장이 돼 있었다. 연기와 실제를 명확하게 구분 짓는다는 건 이 현장에서만큼은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고.
“아들을 구해서 건물을 올라오고, 좁은 공간에서 튀어나오면서 동료들이 저를 발견하고 끌어올려주는 신이 있어요. 제가 만수(차승원 분)한테 기대서 헉헉대는 모습이 찍혔는데, 그거 연기 아니에요. 리얼이에요(웃음). 진짜 힘들어서 선배님 옆에서 그냥 헉헉 대는데 감독님이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이거 보라고, 실제로 이렇게 (물) 뿌리고 하니까 이런 좋은 연기가 나오지 않냐’ 이러면서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배우들끼리도 이렇게 같이 구르고, 같이 빠지고, 같이 고난을 겪으니까 끈끈한 전우애가 생긴 것 같아요.”
‘싱크홀’ 현장은 배우들에게 있어 체력적으로도 매우 고된 현장임이 분명했다. 배우들은 모두 입을 모아 “내 인생 가장 힘들었던 현장”이라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그만큼 힘들면 한 번쯤 쓰러질 법도 했지만 인체의 신비인지, 희한하게도 다음 날 쌩쌩한 모습으로 현장에 나와서 더 힘든 신까지 소화해 낸 것도 그들이었다. 김성균은 이에 대해 “가장 어린 아역배우의 앞에서 엄살을 부릴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아들 수찬 역의 배우 김건우 군에게 공을 돌렸다.
“저는 제가 근육도 없고 체력이 안 좋은 줄 알았어요. 매일 잠자리에 들 때마다 다음날 못 일어나면 어쩌나 했는데 눈이 떠지더라고요(웃음). 이 영화를 찍으면서 체력 단련이 저절로 된 게 아닌가 싶어요. 감독님이 연기 잘한단 칭찬은 잘 안 해주셨는데 체력 좋단 칭찬은 계속 해주시더라고요. 연기보다 체력 좋단 칭찬은 처음인데(웃음). 가끔 쓰러지고 싶은 순간이 있긴 했는데 안 쓰러지더라고요…. 현장에서 우리 아들 수찬이, 수찬이가 진짜 그 힘든 현장을 다 이겨냈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우리가 엄살을 부릴 수가 없죠(웃음).”
아들 뻘인 아역 배우를 보면서도 배울 점을 찾아내는 김성균은 올해로 데뷔 10년차를 맞았다. 연극 무대에서의 활동까지 합한다면 그보다 더 길겠지만, 김성균을 대중들에게 완전히 각인시켰던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그의 첫 시작점으로 삼게 된다. 정말 뒷세계에서 섭외한 게 아니냔 의문을 낳았던 단발머리 조폭에서 이웃집 살인마, 삼천포에서 갓 올라온 삭은 얼굴의 대학 신입생과 공처가 남편, 그리고 모질이 형사까지. 모든 배우들이 그렇다곤 하지만 김성균의 연기 변신에는 전작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더 특별한 남다름이 있다. 출연한다는 것만으로 작품에 호기심을 불어넣는 김성균이 생각하는 이제까지의 자신의 발자취는 어떨까.
“사실 예전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부분이 많아요. 30대 때엔 다급함이 있었거든요. '특별한 걸 보여줘야 해, 그래야 나는 살아남을 수 있어.' 이런 마음이 있었는데 그게 저를 정신적으로 황폐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40대가 된 지금은 ‘만족스럽진 않은데, 뭐 어떡해. 열심히 하는 방법 밖에 없지 뭐!’ 이런 생각이 들어요(웃음). 기대에 못 미쳐도 열심히 하면 되지. 그래서 저는 ‘연기 변신을 잘 한다’하는 칭찬보단 ‘참 열심히 한다’는 말이 더 좋고, 또 듣고 싶어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