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고된 촬영이었지만 스태프들 배려심도 엄지 척! “예능 복귀? 지금은 계획 없어”
“20~30대 회사원들이 김 대리 역할에 공감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감독님이 얘기해주셨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 또 그분들의 공감을 얻는다면 ‘내가 잘 표현해냈구나’ 라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런 측면에서 연기를 많이 신경 썼던 것 같아요. 까다로웠던 부분은 아무래도 김 대리가 초반엔 참 얄밉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나오다가 싱크홀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 특히 은주 씨(김혜준 분)를 통해 성장하고 변화하잖아요? 그런 모습을 좀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잘 드러나게 표현하고 싶었는데 그게 좀 까다롭더라고요(웃음).”
‘11년 만에 마련한 내 집이 지하 500m 아래 거대한 싱크홀 속으로 빠져 버렸다’는 기상천외한 소재로 눈길을 끈 영화 ‘싱크홀’에서 이광수는 상사의 집들이에 왔다가 함께 싱크홀 속으로 빠져버린 김 대리 역할을 맡았다. 사회생활의 일환으로 챙기지 않아도 될 상사의 경사를 챙겼다가 본의 아니게 재난을 겪게 된 셈이다. 시도 때도 없이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김 대리는 직장에서도, 재난 속에서도 얄밉고 이기적인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도록 영화 속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한다.
“김 대리 대사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 캐릭터가 어떻게 보면 자존감이 참 낮은 인물이거든요. 결혼할 자신도 없고, 내 집 마련도 못할 것 같고…. 그런 대사들을 보면 초반에 김 대리가 왜 이렇게 뾰족하고 또 예민한지, 왜 이렇게 이기적인 사람인지를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김 대리 옷차림을 보면 굉장히 디테일하거든요? 구두 안에 명품을 따라한 발목 양말을 신고 있는데 그 모습이 김 대리의 ‘꼴 보기 싫음’을 극대화 시켜주는 것 같아요. 상의에 체크 남방을 입고 있는 것도 의상 팀에서 그렇게 얄밉게 보이도록 해주신 것 같고(웃음). 영화 보면서도 저렇게 보이는 면에서 (캐릭터 구축을 위한)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극 중 이광수는 싱크홀에 빠진 후 택시에서 추락하는 장면을 연출하며 극 초반의 긴장감을 높여준다. CG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실제처럼 만들어진 세트장에서 촬영된 것이라 다소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았을까 관객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신이기도 하다. 정작 연기한 배우 본인은 “위험한 것보다 오해를 받은 게 더 힘들었다”며 진지한 얼굴로 당시의 해프닝을 설명했다.
“영화에서는 그 신이 되게 위험해 보이잖아요. 그런데 실제론 안전 장치가 있어서 딱히 무섭지 않았어요. 무서움보단 그 택시 안에서 태어나서 처음 맡아보는 냄새가 굉장히 심하게 났는데요, 아무래도 그 택시가 오래되고 폐차를 앞둬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촬영 초반에 들어가 있고 스태프 분들이 나중에 들어오셨는데 그분들은 그 냄새가 저한테 나는 냄새로 많이 오해를 하고 계셨더라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론 위험한 것보다 그게 저한텐 더 힘들었습니다.”
택시 추락 신은 다른 의미로 이광수에게 힘들었지만, 사실 ‘싱크홀’ 자체가 출연한 모든 배우들이 입을 모아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촬영”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스크린에 비친 일부 배우들의 힘든 얼굴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다. 그렇다면 ‘런닝맨’으로 11년간 충분한 체력을 쌓아왔던 이광수에게도 마찬가지였을까. 이 질문에 잠시 생각에 빠졌던 이광수는 “둘 다 힘들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두 현장 모두 힘들긴 했어요(웃음). 그런데 사실 육체적으론 ‘싱크홀’이 더 힘들었던 것 같긴 해요. 경험해 볼 수 없는 재난 상황을 촬영하다 보니 먼지라든지, 그 세트장 안에서의 추위라든지 그런 게 특히 힘들었죠. 다만 그런 상황마다 제작진 분들과 스태프 분들이 워낙 섬세하게 배려해주시고 잘 챙겨주셨어요. 추울 땐 1인용 개인 욕조에 따듯한 물을 받아서 다 세팅해 주시고 눈, 코, 입, 귀 이런 데를 다 세정할 수 있는 약품 같은 것도 있더라고요. 그런 걸 다 준비해주시고 정말 많은 배려를 받으면서 촬영했던 것 같아서 지금 생각하면 힘듦보단 그런 따뜻함과 감사함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의 말대로 힘든 현장이었음에도 배우와 제작진들 간의 케미스트리가 좋았던 데엔 이런 세심한 배려들이 있었다고. 특히 혹시라도 배우들이 추위로 굳은 몸 때문에 부상을 입을까봐 현장엔 스포츠 마사지 전문가도 상주하고 있었다. 배우들 한 명씩 순서에 맞춰 마사지 타임을 가졌는데, 불려가는 배우는 다른 배우들의 선망과 시기의 대상이 돼야 했다. ‘동원’ 역의 김성균이 이광수를 가리켜 “마사지를 받으러 갈 때 좀 얄미웠다”는 농담을 던진 것에 대해 이광수는 “마사지는 성균이 형이 제일 많이 받았다”며 맞서기도 했다.
“성균이 형은 원래 타임보다 더 일찍 와서 받기도 해서 감독님이 ‘촬영을 하러 온 거냐, 마사지를 받으러 온 거냐’ 그랬는데… 저는 좀 억울한 부분이 있네요(웃음). 사실 현장 분위기가 진짜 너무 좋았어요. 다들 합이 좋았지만 분위기 메이커를 꼽자면 차승원 선배님이셨던 것 같아요. 제일 선배님이시고 나이도 가장 많으셨는데 정말 본인을 너무 편하게 대할 수 있게끔 해주셨거든요. 촬영할 때도 훈수 두려 하기보다는 아이디어를 주시고 칭찬도 많이 해 주셔서 ‘나도 나중에 저런 선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서로 공격 같은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케미가 좋았던 배우 이광수의 현장을 보고 있으면, 그의 예능 현장이 문득 그리워지기도 한다. ‘런닝맨’을 떠난 지 얼마 안 돼서 이른 질문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다시 예능에서의 이광수를 볼 수 있지는 않을까. 관련 질문을 많이 받았기 때문인지 이광수는 정중하지만 조금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예능에 더 이상 미련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하기보단, 대중들이 사랑했던 그 캐릭터 이상의 모습을 보여드릴 자신이 없다는 진지한 대답이었다.
“사실 고정적으로 예능을 할 계획은 지금은 없어요. 솔직히 ‘런닝맨’을 통해 처음으로 예능을 시작하게 됐는데, 그 안에서 그 멤버들과 제작진 분들과 11년 동안 만들어진 거잖아요. 저는 그 안에서 (예능을) 배운 경우라서 더 솔직히 말씀 드리면, ‘다른 곳에서 많은 분들이 재미있어 해 주실 만한 무엇인가를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자신이 없다면 없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예능을 너무 좋아하고 그렇지만 일단 지금은 아직 계획이 없습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