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장규정 위반 가혹한 채찍질, 남편 살해 여성 3만 관중 앞 공개총살…발코니도 안돼! 사실상 집안 감금 우울증 호소
과거 집권 당시 이슬람 율법을 과격하게 해석한 탓에 지나친 억압과 통제를 일삼았던 탈레반은 특히 여성에 대한 인권 탄압으로 악명이 높았다. 또한 9·11 테러의 주범인 알카에다를 비롯한 여러 테러 조직을 보호하고 비밀리에 후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제사회로부터 맹비난을 받기도 했다. 비록 탈레반은 “우리는 달라졌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를 마뜩지 않게 여기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은 매일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고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앞으로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통치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후 가진 '로이터' 인터뷰에서 탈레반 고위 인사인 와히둘라 하시미는 이렇게 밝혔다. 최고지도자인 히바툴라 아쿤드자다가 전체 지도자로 추대될 예정이며, 탈레반 지도부회의가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고, 율법 학자 위원회가 정책 결정 기구로 설립될 예정이라고도 말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6년부터 5년 동안 집권했던 탈레반은 지난 2001년 미국이 주도한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권력에서 축출됐다. 그렇다고 완전히 와해된 것은 아니었다. 아프가니스탄이 서방 세계의 지원을 받아온 지난 20년 동안 시골 마을에서 점조직을 운영하면서 숨어 지냈던 탈레반은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군 철수 계획을 발표하고 탈레반에 대한 미국의 군사행동을 제한하는 평화협정에 서명하자 서서히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요컨대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면서 서서히 시골 마을을 점령해나갔다. 그리고 미국이 약속한 완전 철수 기한인 8월 31일이 다가오자 기습 공격을 감행해 크고 작은 도시들을 차례로 접수했고, 마침내 수도인 카불을 장악하면서 아프간 정부를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의 현재 상황이 “끔찍하다”면서도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전쟁을 더는 일으키진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실상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의미였다. 다만 대국민 연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국민을 계속 지원하겠다. 폭력 사태와 불안을 예방하기 위한 외교활동과 관여는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변화를 약속했다. 탈레반 대변인인 자비훌라 무자히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종결됐다”고 선언하면서 “앞으로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정부를 세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먼저 사면령을 선포하고 정부 관리, 정부군, 미국에 부역했던 민간인들을 처벌하거나 그들을 대상으로 어떠한 보복 행위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여성 인권을 보장하고, 이슬람법에 따른 엄격한 규율과 통제 역시 바꾸겠노라고 천명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은 채 “이슬람 율법의 테두리 안에서 여성들에게 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만 말했다. 국제사회를 향해서는 "다른 국가들을 공격하기 위해 결성된 무장 단체를 더 이상 후원하지 않겠다"고도 밝혔다.
이런 우호적인 기자회견에 대해 해외 언론들은 더 이상 탈레반이 국제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지 않고 정상적인 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제스처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국제 사회는 아직까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유럽연합(EU)은 정치 상황이 더 명확해질 때까지 인도주의적 지원은 강화하되, 개발 지원은 중단하겠노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요제프 보렐 EU 외교정책 책임자는 2024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 지원하기로 약속되어 있는 12억 유로(약 1조 6000억 원) 규모의 개발지원금을 수령하기 위해서는 탈레반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과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상황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다.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탈레반의 폭정을 두려워하고 있다. 탈레반이 약속과 달리 미국이나 정부에 부역한 사람들에 대한 보복을 감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 탈레반 부대원들이 정부에 협조한 사람들의 명단을 들고 집집마다 수색한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있다. 또한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하기 위해 공항 주변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을 향해 채찍이나 곤봉을 휘두르거나 칼과 총으로 위협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여성에 대한 탄압도 다시 자행되고 있다. 타크하르주 탈로칸에서는 부르카를 입지 않고 외출했던 여성이 거리에서 총살을 당하는 참변이 일어났으며, 식료품을 사기 위해 잠시 외출했던 다른 여성 역시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제로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일부 지역에서는 남자 보호자와 동행하지 않고 여성들이 홀로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이 내려졌으며, 서부 헤라트에서는 탈레반 무장괴한들이 대학 정문을 지키며 여학생들과 강사들의 캠퍼스 출입을 막기도 했다.
미군이 주둔하던 지난 20년간 사회 각계에 진출했던 여성들은 탈레반이 재장악하자 하나둘 일터에서 쫓겨나고 있다. 아프간 국영TV의 유명 앵커인 카디자 아민은 클럽하우스 대화방을 통해 “탈레반이 나와 다른 동료 여성 직원들을 무기한 정직시켰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아민은 “우리가 20년 동안 이룬 모든 게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탈레반은 탈레반이다.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CNN의 수석 국제 특파원인 클라리사 워드 역시 여성 인권 탄압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데일리비스트’ 인터뷰에서 워드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이후 여성 기자들에 대한 우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노골적으로 여성혐오를 드러내고 여성에게 폭력을 가하기로 악명 높은 탈레반이 여기자들의 생중계 보도 규정 역시 문자 그대로 하룻밤 사이에 바꿔버렸다”고 폭로했다.
거리에서 취재를 할 때면 다시 아바야와 히잡을 착용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에 대해 워드는 “탈레반이 카불을 함락하기 전에도 일반적으로 머리에 두건을 쓰긴 했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었다”면서 “탈레반이 자신들을 위협적이지 않은 단체라고 묘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이는 의도된 홍보 전략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사실 탈레반이 집권하던 5년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는 그야말로 암흑의 시기였다. 이슬람 율법에 대한 가혹한 해석을 통해 여성의 인권을 말살하다시피 했던 탈레반은 픽업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규칙을 따르지 않는 여성들을 공개적으로 모욕하고 채찍질했다. 불륜을 저지른 여성은 길거리에서 돌팔매질로 처형하기도 했다.
탈레반 정권 하에서 여성들은 취업은커녕 기본적인 교육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여자 어린이들은 8세 이후에는 그 어떤 교육도 받지 못하도록 했으며, 때문에 배우고 싶은 여성들은 비밀스럽게 운영되는 지하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었다. 만일 공부를 하다 발각될 경우에는 사형당할 각오를 해야 했다.
또한 16세 미만 소녀들의 결혼이 허용됐고, 심지어 대대적으로 장려했기 때문에 많은 어린 소녀들이 이른 나이에 강제 결혼을 해야 했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매년 이뤄지는 혼인의 80%가 강제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여성들의 사회활동 역시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라디오, TV 등 모든 종류의 공개 방송에 여성이 출연하는 것은 금지됐으며, 신문이나 책에 여성의 사진을 싣는 것도 불가능했다. ‘우먼스 가든’과 같이 ‘여성’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장소는 ‘스프링 가든’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여성들의 복장 규정 역시 악명 높긴 마찬가지였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외출 시 전신은 물론이요, 얼굴까지 전부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해야 했으며, 굽 높은 구두의 또각거리는 소리가 남자를 흥분시킨다는 이유로 하이힐 착용을 금지했다. 이에 대해 탈레반 대변인은 “여성의 얼굴은 친척이 아닌 다른 남성들에게 타락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낯선 남자들이 여자의 목소리나 웃는 소리를 들을 경우 부정을 탄다는 이유로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말하거나 웃을 수 없었다.
비슷한 이유에서 탈레반은 미용실을 폐쇄했으며, 여성들이 매니큐어를 바르거나 메이크업 등 화장품을 사용하는 것 또한 금지했다. 실제 카불에서는 한 여성이 매니큐어를 칠했다는 이유로 엄지손가락 끝이 잘리는 처벌을 받기도 했다.
외출 규정도 까다롭다. 여성들은 외출할 때는 반드시 남자 친척과 동행해야 하며, 택시나 버스도 남자 친척 없이 혼자 이용할 수 없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는 것은 남자 친척과 함께 탈 경우에도 불허했다. 혼자 거리를 돌아다닌다는 이유로 탈레반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한 한 여성은 “아버지는 전투에서 사망했다. 난 남편도 없고, 오빠도 없고, 아들도 없다. 혼자 못 나가면 난 이제 어떻게 살란 말인가?”라고 하소연했다.
여성들은 집안에서도 거의 감옥에 갇힌 듯한 생활을 해야 했다. 모든 주택의 1, 2층 창문은 페인트를 칠하거나 커튼을 쳐서 여성이 거리에서 보이지 않도록 했으며, 여성들이 아파트나 주택의 발코니에 나오는 것조차 금지됐다. 사정이 이러니 여성들은 집안에 감금된 채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렸으며, 고립감, 우울감에 빠져 피폐한 생활을 했다. 당시 아프간 여성 16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7%가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였고, 71%는 건강 상태가 매우 나빴다.
외출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마당에 의료 서비스 혜택을 받기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남성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는 한 병원에 갈 수 없었으며, 남자 의사에게 치료를 받을 수도 없었다. 이로 인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질병을 앓다가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이에 카불에서는 일부 여의사들이 가족과 이웃을 돌보기 위해 집안에 비밀 진료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의약품 보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해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여성들의 대중목욕탕 출입이 금지됨에 따라 제대로 씻지 못한 여성들이 피부질환을 앓거나 질염을 앓는 등 고통을 겪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규율을 어길 경우 가해지는 처벌은 가혹하기 그지없다. 처벌은 길거리, 광장, 스포츠 경기장 등 공개적인 장소에서 행해졌다. 1996년 12월에는 225명의 카불 여성들이 복장 규정을 위반한 혐의로 체포돼 다리와 등에 채찍을 맞았으며, 1999년 카불의 ‘가지 스포츠 경기장’에서는 7명의 자녀를 둔 여성이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3만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앞에서 총살됐다. 또한 아파트에서 비밀 학교를 운영하다 탈레반의 급습으로 발각된 여교사는 계단 아래로 내동댕이쳐진 후 감금당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니 지난 20년 동안 자유롭게 학교에 다니면서 꿈을 키워왔던 아프간 여성들에게 탈레반의 집권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이는 구시대로의 회귀를 상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3개월 전 인도로 피신한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 운동가인 위다 사가리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 탈레반의 억압에 강력하게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 현재 델리 자택에 여성 운동가들을 대피시키면서 저항 운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우리는 탈레반에 저항한다. 우리는 직장에 가고, 학교에도 가야 한다. 여성들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공포 정치의 부활을 염려하고 있는 대학교수인 알리야 카지미 역시 “나는 20년 전 탈레반이 몰락한 이후 많은 기회를 누렸던 세대다. 학업에 대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고, 1년 동안 대학교수로도 재직했다. 그런데 이제는 미래가 어둡고 불확실해졌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은 이제 막 꿈꾸기 시작한 어린 세대다. 카지미는 암울하게만 느껴지는 아프가니스탄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고 꿈꾸던 세월이 모두 헛수고로 돌아갔다. 이제 막 삶을 시작한 어린 소녀들에게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겠나.”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