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부부 아닌 커플들 ‘개인 간 거래’ 성행…관련 법 없어 위험부담은 본인 몫
일본인 회사원 여성 A 씨(31)는 SNS를 통해 정자를 제공받아 딸아이를 출산했다. 그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무정자증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의사로부터 ‘제3자 제공 정자를 이용한 인공수정(AID)’과 ‘입양’을 제의받았으나, A 씨 부부는 아이가 아내만이라도 혈연관계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AID 시술을 결심했다.
흔히 ‘난임은 시간과의 싸움’이라고들 한다. A 씨 부부는 병원에서 해당 시술을 받기 위해서는 대기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게다가 지난해 봄,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이마저도 무기한 연기됐다’는 병원 측의 연락을 받았다. 결국 A 씨 부부는 SNS를 통해 정자 제공자를 찾아 나섰고, 남편과 혈액형이 같은 남성과 몇 차례 만남 끝에 정자를 기증받았다. A 씨는 “딸이 자라면 이러한 사실을 알려줘야 할지 고민”이라며 “그래도 정자를 기증받은 덕분에 아이와 만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일본의 경우 정자 제공에 관한 특화된 법률이 아직 없는 상태다. 요컨대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출산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관련 법 규정이 없으므로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위험 또한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비배우자의 정자를 사용한 인공수정은 일본산과부인과학회의 지침에 따라 특정 의료기관에서 ‘불임치료’ 형태로 이뤄져왔다. 1948년 게이오대학병원에서 처음 시작해 지금까지 1만 명이 넘는 아이가 태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학회의 지침은 ‘법적으로 혼인한 부부’로 한정한다. 동성커플이나 비혼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선택적 비혼모’는 대상에서 제외되는 셈이다. 또한 등록된 의료기관에서만 실시한다는 조건이 있으며, 관련 시설은 총 12곳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신문에 의하면 “AID 치료에 사용된 정자는 익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제공한 것으로, 대부분 의대생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몇 년 전 “AID로 태어난 아이가 출생의 경위나 유전상의 부모를 알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자칫 기증자의 신원이 밝혀질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생기자 정자를 제공하겠다는 남성들이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이에 치료를 중단하는 의료기관이 잇따르는 상황이다. AID 시술 건수가 일본 내 1위였던 게이오대학병원마저 2018년 신규 접수를 중단했고, 현재 관련 시술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5곳 내외다.
한편, 만혼화 현상 등으로 불임치료나 검사를 받는 부부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5.5쌍 중 한 쌍은 불임이며, 그 절반은 남성 측에 원인이 있다”는 조사결과도 발표됐다. 동시에 아이를 원하는 동성커플, 비혼 출산을 희망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추세라 기증정자에 대한 수요는 나날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그 틈을 메우고 있는 것이 SNS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개인 간의 정자 거래다. 트위터에서 일본어로 ‘#정자제공’이라고 검색하면 ‘정자를 제공하겠다’는 게시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또한 임신을 원하는 여성과 정자 제공자를 연결하는, 이른바 중개 사이트도 10개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례로 한 중개 사이트에는 정자 기증자의 연령, 혈액형, 학력, 쌍꺼풀 유무 등 프로필 정보들이 노출돼 있다.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감염증 검사를 완료했다’는 기증자도 찾아볼 수 있으나 ‘자기신고’ 형태라 진위는 불분명하다. “아내 몰래 2월에 기증자 등록을 마쳤다”는 자칭 의사라는 남성(48)은 “자신의 피를 이어받는 아이가 많이 존재하면 좋겠다”는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중개 사이트의 흐름은 이렇다. 먼저 정자 기증자는 등록할 때 사이트 측에 3만 엔(약 32만 원)을 지불한다. 이용자는 원하는 조건으로 기증자를 검색할 수 있으며, 메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정자 제공은 정자를 용기로 받아 주사기로 주입하는 ‘시린지법’과 배란기에 맞춰 실제 성관계를 맺는 ‘타이밍법’이 있다고 한다. 보통 교통비와 함께 1만~2만 엔의 사례금을 기증자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AID 치료보다 저렴하고, 대기 시간도 대폭 줄어들기 때문에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다.
반면에 위험 부담도 존재한다. AID 치료라면 정자를 한번 동결 보존해 에이즈 등 감염증을 조사하지만, 개인 간 거래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애초부터 성행위가 목적인 정자 제공자도 있어 말썽이다. 일본 매체 ‘주간여성’에 따르면 “기증자 가운데는 제공 방법을 성관계로만 한정하고 집요하게 요구하는 남성이 적지 않다”고 한다. 또 학력 등 기증자 정보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국립대 졸업생’의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했으나 알고 보니 국적과 학력이 허위였음이 밝혀져 소송을 건 사례도 있다.
2019년에는 세계 최대 정자은행인 덴마크의 ‘크리오스’가 일본에 진출해 화제를 모았다. 크리오스는 감염증이나 유전자질환 같은 검사를 완료한 정자만을 제공한다. 기증자의 인종과 신장, 체중, 눈동자 색깔, 직업 등을 공개하고 있으며, 이용자는 이러한 정보들로부터 기증자를 선택한다. 아울러 태어날 아이가 장래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신원노출 기증자’도 선택할 수 있다. 정자 가격은 0.5㎖당 7000~25만 엔으로 조건에 따라 차이가 크다.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일주일 정도 뒤 전용용기에 담긴 동결 정자가 일본에 도착한다. 기증자의 국적은 대부분 유럽 국가로, 일본인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미 150건 넘게 정자 거래가 이뤄졌다”고 한다. 구입 희망자들은 미혼 여성이 50~60%로 가장 많았고, 불임으로 고민하는 부부, 동성커플 순이었다.
남편이 무정자증인 30대 여성 B 씨는 6개월가량 의료기관에서 익명의 제3자 정자를 이용한 불임치료를 받아오다 올해 3월 크리오스로 바꿨다. 기증자의 정보를 입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B 씨 부부는 “원해서 맞이하는 생명이므로 기증자를 알고, 장래 ‘출생의 경위’를 아이에게 전하고 싶다”며 “아이는 이 선택을 이해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 간의 정자 거래가 확산되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관련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리사와 히토미 준텐도대학교 생명윤리학과 교수는 “불임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증자를 찾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무법상태가 지속된다면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양육이나 상속에 관한 트러블을 피하기 위해 ‘기증자는 법적인 부모가 될 수 없다’고 규정하는 법률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