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로 경선 치른 뒤 후보 중심 당 운영 시나리오 친윤 의원들 중심 제기…김종인 다시 등판 가능성
국민의힘 ‘경선 버스’가 출발도 하기 전에 비틀거리고 있다. 이준석 대표를 둘러싼 대선 후보들 간 갈등이 쉽게 가라앉지 않으면서다. 윤석열 예비후보를 중심으로 한 ‘반이준석 세력’은 이 대표 사퇴까지 거론한다. 반면, 윤 후보를 견제하는 주자들은 ‘이준석 지키기’를 외치고 나섰다. 여기엔 윤 후보와 대립각을 세워 존재감을 부각시키겠다는 셈법이 깔렸다. 당 내부에선 대선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파다하다.
국민의힘 내홍에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윤석열 후보 스탠스다. 윤 후보는 이준석 대표와의 녹취록 유출 등 여러 논란에 대해 직접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외부 공개 일정도 소화하지 않고 있다. 검찰총장 사퇴 후의 광폭 행보, 유력 대권주자로서의 위치 등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잠수’ ‘침묵’과 같은 표현을 쓰면서 해석에 분분한 모습이다.
윤석열 캠프 핵심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경선 버스 출발을 앞두고 공약, 현안 등에 대한 스터디에 집중하고 있다. 잠적이라고까지 하던데 전혀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소통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만, 그는 “야권 1위 후보라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고 말했다. ‘1일 1설화’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연이은 말실수가 계속됐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미다.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방들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윤 후보는 현재 중도층과 20~30대 유권자 공략 방안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집토끼’보단 ‘산토끼’를 잡아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박스권에 갇혀 있던 지지율이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이건 이낙연이건 민주당 최종 후보와의 싸움은 중도층 표심에 좌우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동시에 윤석열 캠프는 당 내부에서 윤 후보 입지를 구축하기 위한 구상에도 한창인 모습이다. 이른바 ‘친윤 세력’을 최대한 확보해 향후 경선 등에서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는 경선 판세가 불리하게 바뀔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다. 이준석 대표가 유승민 예비후보를 지원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 당 일부 중진들이 홍준표 원희룡 예비후보를 지지하기로 뜻을 모았다는 소식 등이 알려지면서다. 앞서의 캠프 핵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지율 1위라고는 해도 윤 후보는 ‘정치 신인’이다. 본격적인 경선이 시작되면 기성 정치인들과의 ‘수 싸움’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윤 후보가 흔들리지 않도록 수적인 면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어야 한다. 대세론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캠프에 들어온 의원들이 맨투맨으로 다른 의원들을 접촉하고 있다. 갈수록 캠프에 합류하는 인사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캠프 내부에선 이준석 대표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역력하다. 또 다른 캠프 관계자는 “윤 후보는 당 내에서 호불호가 뚜렷이 갈리는 상황이다. 이준석 대표가 그 불호 세력을 대변한다고 보면 된다”면서 “우리 입장에서는 경선의 공정성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대표의 정치적 편향성이 계속될 것을 대비해 특단의 구상을 하고 있다. 비대위 추진도 그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실제 ‘친윤’으로 꼽히는 국민의힘 몇몇 의원들은 비대위 출범에 필요한 구체적인 실무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을 주도하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실 측은 “특정 후보와 가까운 이준석 체제로는 공정한 경선이 힘들다. 지금 불거지는 소동도 이 때문 아니겠느냐. 경선만 따로 관리할 비대위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윤 후보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윤석열 캠프는 이 대표의 선관위원장 인선 결과를 본 뒤 행동개시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다.
윤석열 캠프는 지금 이대로는 본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비대위 출범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당 내부에서 벌어지는 갈등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본선을 어떻게 치르겠느냐는 논리다. 비대위를 만들어 경선을 치르고, 그 후엔 대선 후보 캠프 중심으로 당을 운영하자는 게 주요 골자다. 그러면서 2012년 ‘박근혜 비대위’의 총선 과반 획득, 2021년 ‘김종인 비대위’의 보궐선거 승리를 예로 든다.
‘친윤’으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한 의원은 “대선에서 국민의힘의 승산이 지극히 낮다는 게 정가의 공통된 전망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힘을 모아도 시원찮을 판에 대표를 중심으로 분란만 벌어지고 있다. 지금 국민의힘은 ‘대위기’다. 윤 후보에게 유리해서가 아니라, 당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비대위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김종인 전 위원장처럼 외부에서 신망 있는 인사를 주축으로 비대위를 꾸리면 대선에서도 긍정적인 효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윤 후보 측이 김종인 전 위원장을 앞세워 비대위를 추진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 대선 후보 캠프 관계자는 “윤 후보 측이 비대위 얘기를 꺼내는 순간 거센 비판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김종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당내 우군이 많고, 선거 전략에 능통한 김 전 위원장을 통해 비대위 비토 기류를 돌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8월 18일 윤 후보와 김 전 위원장 회동이 주목을 받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윤 후보 측 ‘비대위 카드’는 단순히 대선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앞서의 캠프 핵심 관계자는 “윤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떨어진다고 포기할 것 같으냐”고 반문하면서 “사법시험도 9수한 사람이다.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대선 그 후도 보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 그래서 비대위가 중요하다. 대선을 앞두고 출범하는 비대위는 당을 장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래야 설령 대선에서 지더라도 재기를 모색할 수 있다. 윤 후보는 이런 점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수는 이준석 대표다. 이 대표가 결단하지 않는 이상, 비대위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 ‘고립무원’에 가까운 이 대표로선 비대위 출범 시 ‘식물 대표’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를 받아들이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윤 후보 측이 비대위를 밀어붙일 경우 다시 한 번 당은 ‘스톤대전(관련기사 김종인이 키맨? 윤석열-이준석 파워게임 앞과 뒤)’으로 홍역을 치를 전망이다. 윤 후보가 과연 어느 정도의 세를 규합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란 게 정치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