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부터 김대중까지 23년 대통령 경호…80여 곡 작곡해 저작권 수입 ‘짭짤’
국내 한 종합일간지가 ‘정원 이외에도 수백 명의 관람객을 무질서하게 입장시켜 장내는 물론 휴게실까지 입추의 여지가 없어 손님들이 크게 불편했다’고 기사로 꼬집을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극장이었다.
“당시 유명 가수들의 리사이틀과 코미디언들의 만담 장소로 유명했는데, 제가 식전 행사의 단골 노래 가수로 불려갔어요. 그러다 보니 젊어서는 자연스레 노래하는 곳이면 무조건 갔어요.”
전문 가수의 길은 일부 유명인들을 제외하곤 예나 지금이나 가정을 제대로 꾸려나가기가 쉽지 않다. 충남 청양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고교 때 태권도 특기 장학생이었던 그는 경기대 무도학과에 입학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복무한 그는 제대 후 대통령 경호실 경호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23년간 경호원으로 근무했다.
“1979년 10·26 전날 박 전 대통령을 수행해 삽교천을 방문하고 당일에는 비번이어서 집에서 쉬다가 비보를 접했어요. 이로 인해 7개월 동안 계엄사 합수부 조사를 받고 해직됐다가 복직됐죠.”
그는 유신헌법 통과 직전 지방에서 6개월간 군수직도 맡았다고 한다. 경호원 생활을 마치고 물류회사로 들어갔다. 그게 인연이 돼 지금까지 택배업에 종사하고 있다. 한동안 잊고 살아온 가수의 기질을 싹트게 한 것은 2013년 한 케이블 방송사가 주최한 60세 이상 노래자랑에 출전해 입상하면서다. 내친김에 장안극장 식전행사 가수 시절부터 친분을 쌓아왔던 이들로부터 곡을 받아 부르다 2017년 자신의 고향을 소재로 작사한 ‘청양아리랑’으로 가수로 데뷔했다.
“(주병선의) ‘칠갑산’이라는 노래를 듣다가 문득 생각나서 ‘청양아리랑’ 가사를 썼어요. 노래 부를 때마다 우리 고향을 소개하는 거잖아요. 자랑스러웠어요.”
트롯 오디션 열풍은 노래 좀 한다는 이들의 맘을 부풀려 놓았다. 그도 도전장을 내밀고 싶었지만, 젊은 세대들의 기세에 눌려 그만뒀다고 한다. 그래도 그가 지금까지 쉬지 않고 발표한 곡은 ‘남은 정’ ‘엄마의 사랑’ ‘내 인생의 건배’ 등 10여 곡에 이르고, 자신이 주변 가수들에게 준 노래까지 합치면 80곡이 넘는다.
“실은 작곡비가 엄청 비쌉니다. 제가 처음 (노래를) 시작할 때는 700만 원에서 3000만 원 사이였어요. 엊그제 받은 노래의 작곡도 3000만 원이 넘었어요. 그런데 무명 가수들에게 그런 돈이 없잖아요. 그래서 작곡료를 250만~300만 원선에서 저렴하게 이끌어줬어요. 물론 제가 준 노래의 작사비는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가 준 노래의 저작권은 그에게 있다. 그러다 보니 저작권료 수입이 매월 250만~300만 원에 이르는 등 짭짤하다. (사)한국가수협회 인천지회장이기도 한 그는 요즘 ‘노을진 인생길’ ‘보고 싶다 친구야’ ‘추억의 호남선’ 등의 신곡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창희 기자 twin92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