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실종 대학생 사건 등 책임 논란 불거져…경찰청장 눈앞에 두고 낙마 다수
그래서일까. 원래는 보통 1년 정도의 임기를 채우면 교체가 된다. 과거에는 경찰청장까지 승진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최근에는 서울경찰청장을 끝으로 경찰복을 벗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럼에도 워낙 중요한 보직이다 보니 경찰 내에서는 ‘경찰대 출신’이 취임하느냐가 주목받는다. 자연스레 경찰대 출신과 간부 후보생 출신이 번갈아 임명되는 게 ‘인사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장에서 서울특별시경찰청장으로
경찰청장 계급인 치안총감 바로 밑에 있는 치안정감은 모두 7명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과 경찰청 차장, 서울·경기남부·부산·인천경찰청장, 경찰대학장이다. 이 가운데 누가 뭐래도 ‘넘버투’는 서울특별시경찰청장이다. 1000만 인구를 관할하는 동시에, 다루는 정보의 양과 질도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서울경찰청 산하 직원만 2만 5000명이 넘는다.
특히 올해 1월 1일 자로 시작된 검경 수사권 조정과 함께 서울지방경찰청장에서 서울특별시경찰청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만큼 힘도 더 막강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초 검찰에서 이뤄졌어야 할 수사 가운데 상당수가 경찰 몫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일선의 경찰들 사이에서는 ‘일이 너무 많아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오지만, 이들을 지휘하는 서울경찰청장 입장에서는 ‘권한’이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욕 먹기도 쉬운 자리다. 한강 실종 대학생 사망 사건이 대표적이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당시 대학생 고 손정민 씨의 실종 신고를 받고도 빠르게 수색 인력을 투입하지 않았다가 ‘늑장 대응’으로 비난을 받았다. 최근에는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뒤 자수한 성범죄 전과자 강 아무개 씨(56)가 도주 전후로 여성 2명을 살해한 과정을 놓고 경찰의 책임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수사 권한이 늘어나면서 정치 사건을 다루게 된 점도 서울경찰청장 입장에서는 ‘늘어난 부담’일 수밖에 없다. 당장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한 시민단체의 고발 건 수사를 위해 서울시청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가 야당으로부터 ‘경찰이 정치적으로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일까. 임기가 비교적 짧아지고 있다. 7명의 치안정감 중 국수본부장은 임기 2년이 보장돼 있지만 서울경찰청장은 1년 안팎의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는 게 최근 추세다. 2020년 8월 취임한 장하연 서울경찰청장은 11개월 만에 최관호 신임 서울경찰청장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경찰청장 눈앞에 두고도 어려워진 승진
넘버투인 만큼 승진이 쉬운 자리였다. 1991년 이인섭 초대 서울경찰청장을 시작으로 현재 최관호 청장까지 모두 37명이 임명됐는데 이 가운데 11명이 경찰청장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이는 전체를 통틀어 봤을 때의 얘기다. 최근에는 오히려 승진이 어렵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2013년 서울경찰청장으로 임명됐던 강신명 전 경찰청장 이후 달라진 흐름이라는 분석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서울경찰청장으로 임명된 그는 정권이 바뀐 2019년 5월 공직선거법 위반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그 후 임명된 구은수 서울경찰청장 역시 청장 재직 시절 터진 문제로 재판을 받아야 했다.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당시 경찰병력의 지휘 및 감독을 소홀히 한 업무상과실치사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 후 임명된 이상원(31대)·김정훈(32대)·이주민(33대)·원경환(34대)·이용표(35대)·장하연(36대) 모두 경찰청장이 되는 데 실패했다.
서울경찰청이 가진 업무적 특성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수도를 관할하는 경찰의 수장은 욕을 먹지 말아야 ‘잘했다’는 평을 받을 수 있는데,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3만 명에 달하는 경찰 전체를 통제하고 지휘하면서 사고가 나지 않을 수가 있겠냐”며 “담당하는 사건들 가운데 정치 관련 사건도 많은데, 이를 고려해 지휘를 하면서 발생 사건을 컨트롤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서울경찰청장을 역임하는 것은 경찰 간부들 사이에서는 ‘꿈’이다. ‘경찰대’ 출신과 ‘비경찰대’ 출신 간에 치열한 경쟁이 붙는 자리다. 지난 2011년 경찰대학 1기인 이강덕 청장이 임명된 이후 김용판(행정고시)-김정석(사법시험 경정특채)-강신명(경찰대 2기)-구은수(간부후보생)-이상원(간부후보생)-김정훈(경찰대 2기)-이주민(경찰대 1기)-원경화(간부후보생)-이용표(경찰대 3기)-장하연(경찰대 5기) 등이 임명됐다.
올해 7월 임명된 최관호 신임 서울경찰청장은 다시 간부후보생 출신. 10년 동안 12명의 서울경찰청장 중 6명이 경찰대 출신, 나머지 6명은 비경찰대 출신이다. 현재 치안정감 7명 가운데 경찰대 출신은 5명인데, 이처럼 경찰 고위 간부 중에 경찰대 출신이 많은데 간부후보생 출신이 서울 치안을 총괄하는 자리에 오른 점은 ‘경찰 내 파벌 싸움으로 비판을 받은 지점을 고려한 인사’라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갈수록 기획통들이 중용되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이번에 임명된 최관호 청장은 서울 서초서장과 전남지방청장, 광주지방청장, 경찰청 기획조정관 등을 역임한 경찰 내 대표적인 기획통이다. 앞선 경찰 관계자는 “관리해야 할 게 워낙 많은 곳이기도 하지만 정보를 잘못 다뤘다가는 정치적 논란이 일 수 있기 때문에 관리에 능한 기획통이 중용되고 있다”며 “서울경찰청장은 예산 확보와 직원 운용 능력이 수사 전문성보다 더 필요한 역량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