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 수준이라 수사팀 실제 적용 드물어…하루 만에 결론 전문성·공정성 비판도
하지만 형식이나 명분 삼기에 그치는 지점은 비판이 계속된다. 수사팀에게 수사 지속 여부나 기소 여부에 대해 의견을 전달하지만 강제성이 없다 보니 무시되는 게 일상이다. 특히 하루 만에 수개월에 걸쳐 진행된 수사 내용을 듣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옳으냐는 비판도 나온다. 법조계가 ‘수사심의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이유다.
#대전지검, 그래도 강행 결정
8월 24일 대전지법 형사11부(재판장 박헌행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관련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배임·업무방해 교사 혐의 재판에서, 대전지검은 백 전 장관에게 배임교사 혐의도 추가 기소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검찰은 “백 전 장관에게 직권남용 혐의가 있다고 보면 배임교사 혐의도 인정된다는 입장”이라고 언급했다.
8월 18일 열린 수사심의위의 판단과 엇갈린 입장이다. 당시 현안위원 15명은 백 전 장관의 배임·업무방해 교사 혐의 추가기소 여부에 대해 9(불기소) 대 6(기소)으로 재판에 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의견을 모아 수사팀에 전달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기본적으로 검찰수사심의위 권고를 존중하나, 수사팀은 (검찰수사심의위) 결정 전이나 후에도 같은 의견”이라면서도 “아직 (공소장 변경 및 추가 기소 여부는) 결정된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대검찰청과 수사팀 사이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수사심의위였지만, 수사팀의 입장은 그대로라는 점을 드러낸 것이다. 그동안 대전지검 수사팀은 백 전 장관에게 배임·업무방해교사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으나 대검찰청 수뇌부와의 견해 차이를 보여 왔다. 결국 김오수 검찰총장은 수사심위위를 소집해 판단을 받았지만 이를 가지고 수사팀을 설득하지는 못한 셈이다.
#사건마다 등장하기 시작
2018년 1월, 문무일 검찰총장이 도입한 수사심의위. 당초 취지는 검찰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법조인뿐 아니라 외부 전문가들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것이었다. 대검찰청 산하로 두되 수사와 기소의 적정성을 심의하는 외부 기구로, 대검이 정한 200여 명의 외부 전문가들 가운데 무작위로 뽑힌 현안 심의위원 15명이 수사를 계속할지, 구속영장을 청구할지, 기소할지 등을 결정한다. 당시 검찰은 “수사가 진행 중이라도 심의위원회가 개입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기소 여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도입 이유를 강조했다.
그 후 언론에 등장하는 사건 때마다 ‘검찰 수사를 믿을 수 없다’는 취지로 소집되기 시작했다. 채널A 검언유착 사건(한동훈 검사장 및 이동재 전 기자 기소와 수사 지속 여부)을 시작으로, 이재용 삼성 부회장 관련 2건의 사건(불법 승계와 부정회계, 프로포폴 불법 투약)과 이성윤 서울고검장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금 개입 의혹(직권남용),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 등 14번 소집됐다. 대부분 굵직한 사건들이었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청와대에 보고가 될 만한 정치적으로도 영향력이 있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수사심의위가 열렸다는 점은 이제 언론에 나올 정도의 큰 사건들은 수사심의위가 하나의 공식 패턴이 되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수사심의위의 판단으로 수사나 기소가 멈추지 않더라도 법원에 ‘억울한 게 있을 수 있겠구나’ 정도의 메시지만 보내더라도 변호인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전략 아니냐”고 설명했다.
#‘억울하다’ 알리는 수준?
앞선 변호사의 지적처럼 ‘전략’으로만 전락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게 법조계의 지배적인 분위기다. 실제 검찰이 수사심의위의 판단을 받아들인 경우가 드물기 때문.
수사심의위는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 한동훈 검사장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불법승계, 부정 회계 등에 대해 수사중단 및 불기소 의견을 결정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프로포폴 불법투약 의혹 관련해서는 수사중단 의견을 받아내기도 했다. 또,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관련 사건 백운규 전 장관의 배임교사 혐의에 대해서도 9 대 6으로 불기소처분 및 15 대 0 만장일치로 수사중단을 결정했다.
하지만 수사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이재용 부회장의 불법승계와 부정회계 의혹은 물론 프로포폴 불법 투약 의혹 모두 기소됐다. 백 전 장관 역시 검찰 수사팀은 ‘기소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수사심의위가 처음 도입 취지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앞선 변호사는 “검찰이 수사 정보를 독점하고 이를 토대로 ‘죄가 있다’라고 심증적으로 밀어붙이는 게 문제가 있어, 이에 대한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도입한 게 수사심의위고 그 과정에서 피고인의 입장도 객관적인 판단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수사팀이 중요하게 참고하라’는 방침이지 않겠느냐”며 “지금 수사심의위는 피고인 측이 언론이나 법원에 ‘억울하다’고 알리는 정도의 목적으로 전락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전문성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앞선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 대한 수사심의위에서는 불기소를 결정하며 “법리적 판단 외에도 코로나19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삼성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주장이 고려됐다.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증거와 이에 대한 피고인의 입장과 종합해 법리적 판단을 고려해 수사권의 남용 여부를 견제하는 게 주된 목적인데 변질됐다는 비판이다.
최근에는 김오수 검찰총장이 소집 결정했던 월성 원전 사건은 수사심의위 멤버가 논란이 됐다.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배우자인 오지원 변호사가 위원으로 참석하자, 수사팀은 정치적 성향을 이유로 기피 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검찰 고위직 관계자는 “수개월 동안의 수사 과정을 외부 전문가가 들어오는 수사심의위에 모두 다 오픈할 수는 없다”며 “외부 전문가의 정치적 성향이 있다면 판단이 당연히 치우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수사팀 역시 더더욱 수사심의위 결정을 납득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하루 만에 결론을 내야 하는 수사심의위도 논란의 대상이다. 자연스레 수사팀은 수사 결과를 요약하거나 피고인 측에 증거가 노출될 것을 우려해 일부의 증거만 공개해 수사심의위에 참석하는데 이를 모두 고려해 ‘하루’ 만에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수사심의위가 과연 옳으냐는 비판이다. 앞선 변호사는 “며칠이 걸리더라도, 배심원을 선정하듯 좀 더 치밀하게 위원을 선정해야 하고, 회의 결론도 신중하게 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